전염병 그리고 건강한 삶 그리고 공동체적 주체

3 years ago by in Thought, 특집

김용우| 생명평화결사 정책위원장

메르스 사태가 주는 성찰적 교훈

메르스(MERS)라는 중동독감이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을 당시, 모든 사회적 이슈들은 메르스에 먹혀 사라졌다. 근대문명의 발전과 평균수명의 연장에는, 근대과학과 산업이 이루어낸 물질문명과 과학의 발달, 경제성장에 따른 충분한 영양의 공급, 위생학과 공중보건의 발달, 서양식 의료 체계의 발달 등이 한몫 하였다. 특히 과학에 근거한 서양 의학과 의료 체계의 발달과, 국가의 부국강병 정책의 일환으로 영양과 식품위생, 국민 의료보험 체계 등의 국민건강정책을 운영하면서, 평균수명은 급속도로 늘어나 100세를 운운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기실 우리의 이런 육체적 복락이 행복한 것이고 정당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지점이 많이 있다.

근대문명 체계는 절대폭력의 지배체제인 근대국가와 무한 욕망 추구의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대 이원론 철학과 가치체계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문명이다. 또한 이 기계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폭력적 대결구도 하에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물신주의에 기초해 있으며 인간의식과 삶을 분열시켜 인간 생명의 본질인 신령스러움과 공동체성을 앗아가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근대국가의 속민으로서 국민을 전염병이나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근대국가의 책무가 얼마나 허황된지 보여주었고, 근대 의료 체계의 독점과 자본화가 건강을 담보로 한 영리 추구의 한 부분에 불과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냉철히 생각하면 작금의 이 사태가 단순히 국가권력의 정책을 바꾸거나 자본에 법적 제도적 압박을 가한다고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민(民)을 중심으로 한 근대문명에 대한 성찰과 대안의 모색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꾸면서 국가와 자본을 개혁하거나 압박하지 않는 한 난망한 일이다.

민초의 입장에서는, 상황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생명의 몸을 입고 나온 신령한 주인공으로서 이 문제를 살피고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공생진화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전염병이나 질병에 대한 시선을 성찰해 보고 근대적 주체와 사회를 넘어, 탈 근대적 ‘뫔(몸과 맘)’의 주인공으로서 신령한 진화와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열린 공동체들의 네트워크 사회로서의 공진화(共進化)적 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세균과 인간의 생명적 교호관계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다른 생명과 교호하면서 살아왔다. 인간이 공동체적 존재이자 공동체적 삶을 살게 된 데에는 질병이라고 상징되는 작은 생명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뫔과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우리 몸 안의 생명과 우리 몸 밖의 생명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겪었다. 몸 밖의 생명들 중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들은 집단으로 방어했고, 붙잡아 길들이기 쉬운 생명은 길들여 우리 생활의 필요에 충당했다. 물론 위협적이지도 않고 필요도가 덜했던 생명들과는 공생의 삶을 영위하였다.

전염병이라고 알려진 바이러스나 세균의 감염은 흑사병처럼 인류 공동체에 치명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과 전염병은 인간이 부적응 상태와 위기인식과 대응을 거친 후에는 대체로 적응과 공생의 시기로 전환되거나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로 격리되는 과정이었다. 사실 인간의 몸은 100조 개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이루어진 복합적 유기체이자 진화적 존재이다. 그리고 그 복합적 유기체 안에 약 1,000여 종의 미생물들이 함께 사는 종합적 생명체이다. 간단하게는 몸 안에 대장균이나 유산균(비피더스), 우리 피부에 붙어 사는 미생물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 몸 안의 대장균은 소화를 돕고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영향을 준다. 대장균수가 급격히 많아지거나 급격히 작아지면 소화기관에도 문제가 생기고 신진대사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 외에도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사는 삶이다. 우리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죽은 세포(생명)를 먹고 사는 작은 균들이나 벌레들도 있으며, 우리가 먹는 발효식품들, 우리의 농업 활동과 함께 하는 곤충들, 동물들 모두 우리와 함께하는 생명들이다. 사람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먹고사는 존재이자 생명에 의지해 존재하는 공생적 존재인(以天食天) 것이다.

전염병 중 상당수는 동물들에게서 인간으로 숙주를 옮긴 세균들의 변형과 진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최근의 에이즈(AIDS)의 경우 아프리카 야생 원숭이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진화한 것이며, 홍역의 경우도 소에 있는 우역(牛疫)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실 질병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세균들의 자기 생존 노력과 진화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인류자체의 개체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가 있듯이, 이에 동반된 동물들의 가축화와 진화, 그리고 동물들과 함께해 온 세균과 바이러스의 인간 몸(숙주)으로의 이전과 변형 및 진화 과정이 있다. 즉 세균과 바이러스들도 다른 생명들과 똑같이 한 생명으로서 진화하는 것이다.

전염병이나 유행병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세균과 바이러스는 자신을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며 그 과정이 인간의 질병 증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고열이나 기침과 재채기, 설사, 구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전파와 진화를 생각하면 숙주를 죽이는 일은 불리한 일이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해 놓고 숙주(사람이나 동물)와 세균 간의 균형이 회복되면–물론 그 과정에서 숙주의 일부 희생이 있을 수 있지만 집단적 멸종은 드물다–공생의 길로 가거나 변형을 위해(적응을 위한) 오랜 잠복기간(안정화)으로 전환된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그 기간에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한번 접함으로서 항체를 형성하고, 그에 대한 면역력과 대응력을 확보(예방접종이 원리이다)하기도 한다. 인간의 방역 노력과 면역력 증대에 대응하여 어떤 균들은 분자구조(항원)를 변형하여 살아남아 자신이 확산(생존 번식 할)될 새로운 조건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인간과 공생하며 진화 변형하는 존재라는 점, 다시 말해 인간 삶에서 전염병과 유행병은 근원적 박멸이 불가능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또한 인간이라는 개체생명이 사회적인 또는 우주적인 시선이 아니더라도 미시적인 수준에서도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려준다. 따라서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은 그것을 적대적 타자로 보는 시선으로는 근원적으로 조정·통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감염성 질병들의 의학적 대책이나 방역 수단 대부분이 치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방과 말 그대로 방역에 있고, 치료의 경우에도 대체로 증상에 대한 대처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오히려 인간이 생명체와 상호작용을 할 때 서로는 안전하다.

예컨대, 대장균은 인간의 몸속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번식함으로써 인간의 소화 활동을 돕고 자신도 산다. 벌의 경우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한 적절한 번식을 하면서 인간에게 꿀을 제공한다. 우리 몸 안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번식하고자 숙주로 삼는 방향으로 진화한 세균들은 감염 피해자로부터 다른 몸으로 옮겨가도록 되어 있고, 이 과정이 ‘질병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 증상들은 인간의 몸이 쇠약하거나 다른 질환들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생명의 위협으로 작동하지만 순수한 사망률은 낮다. 또한 세균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작은 생명들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도 자연 상태에서 우리의 돌아감을 돕는 역할도 한다.

결국 우리가 미생물이라고 말하는 생명들은 인간과 끊임없이 교호하면서 진화 공생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미생물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적절한 긴장을 포함하는 공생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건강의 의료화와 건강 주체의 상실과 회복

근대문명의 세계화 과정은 다양하게 전승되어 오던 세계 여러 지역과 공동체의 의료 방식을 서양의료에 획일화하는 방향으로 편입시켰다. 각 지역과 공동체에 전승되던 민간요법과 건강지식, 의료지식이 미신과 비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폐기되고, 의료는 서양의학 교육 체계를 마친 사람 이외에는 취급할 수 없게 하였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민초들은 농촌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시절에 익숙하게 알고 있던 다양한 약초와 민간요법에 대한 지식을 박탈하고 건강문제에 관한 한 서양의학과 의료체계에 일방적으로 편입을 강요당했다.

또한 이는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고 근대적인 개인화(자유로운 개인, 국가 앞에서 평등한 개인)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이고, 생명의 지속을 위한 근대경제로의 노동 편입과 이에 따른 전문지식의 습득 과정–이것은 전일적 인식 주체,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적 주체의 상실 과정이다–을 거쳐 자기 분야의 지식 외에는 잘 모를 뿐 아니라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서 파편화된 것이다. 특히 근대의학과 병원 체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의학 지식과 세분화 과정을 거쳐 평범한 사람은 접할 수 없는 의료 지식을 독점하면서 근대사회의 권위자로 자리매김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근대 의료 체계의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대인들을 건강 지식과 의료로부터 객체화시키고, 건강의 주인공으로서 자기 몸과 이웃에 대한 접근과 실천을 제약하였다. 특히 근대국가의 존재 근거인 부국강병에 의한 국민 보호(?)의 논리는 의료 서비스의 자본화와 질병의 국가 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민초들은 건강과 질병에 관한 한 의료 자본과 국가에 의한 전일적 지배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약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근대사회는 건강을 위협받는 상태나 질병에 대하여 국가 의료복지나 자본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하는 상황을 강요당해 왔다. 그것은 근대적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료인이나 병원, 혹은 국가의 특정한 지침이 없이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질병에 대한 피동적 공포 상황을 맞이하게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 확산은 역시 사막 생활인들의 가축인 단봉낙타를 숙주로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과 변종이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그동안 압축적인 성장 속에서 도시화율이 급속히 증대되고 수도권의 경우는 메가폴리스(Megapolis) 수준의 집중적인 거주와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변하였다. 이로 인해 전염병의 경우 초기 통제에 실패하면 급속하게 전파될 수 있는 사회임이 드러났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 중심과 자본 중심의 질병 통제 원리가 맞는가 하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사회는 급속한 근대화 과정이 공동체를 해체하는 과정이자 개인화하는 과정이었고, 국가 중심의 사회로서 민의 자율적인 공동체와 공동체들 간의 네트워크가 활성화한 국가는 아니다.

<천도교창건사>(이돈화 지음)를 보면 1870년대 포항과 영해를 중심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자 동학인은 해월에게 전염병의 대처 방안을 묻는다. 당시 해월은 동학 공동체에 몇 가지 지침과 부적을 써주는데, 그 지침의 말씀이 <해월신사법설> ‘내수도문’에 다음과 같이 축약되어 나온다.

“가신 물이나 아무 물이나 땅에 부을 때는 멀리 뿌리지 말며, 가래침을 뱉지 말며, 코를 멀리 풀지 말며, 침과 코가 땅에 떨어지거든 닦아 없이 하고, 또한 침을 멀리 뱉고 코를 멀리 풀고 물을 멀리뿌리면 곧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니 부디 그리 아시고 조심 하옵소서. … 먹던 밥 새 밥에 섞지 말고, 먹던 국 새 국에 섞지 말고, 먹던 침채 새 침채에 섞지 말고, 먹던 반찬 새 반찬에 섞지 말고, 먹던 밥과 국과 침채와 장과 반찬등절은 따로 두었다가 시장하거든 먹되, 고하지 말고 그저 ‘먹습니다’ 하옵소서.”

동학은 한반도 민족의 주체적이고 공동체적인 근대화 열망의 결실이었고, 인간의 신령한 진화와 공생의 진화를 모색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수직적 국가운동이 아니고 민초공동체들의 수평적 연대로 이루어지는 나라 세우기 운동이었다.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고 깊이 있게 하는데 신령스러움과 공동체적 위생이 강조되었다. 그 중심에 생명모성의 여성이 있었다. 해월의 가르침과 동학도들의 실천으로 전염병의 확산이 멈추었다고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내린 국민지침은 선진국이나 공동체가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공동체생활인들이 공유하는 일반 교양수준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그 만큼 그들 나라나 공동체에서는 전염병 발병여부와 상관없는 일상의 건강 위생의 상식이 생활 속에 뿌리내렸다는 상징이다.

인간의 삶이 홀로 사는 삶이 아니듯 홀로 건강 역시 존재 할 수 없다. 자신에 신령한 생명성에 대한 각성 없이 근대적 개인이나 피동적 국민으로는 질병체계에 대응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반일리히(Ivan Illich)는 일찍이 현대 의학과 체계가 질병의 극복과 인류의 성숙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저술을 통하여 비판하였다. 일리히는 특히 서양의학의 중심인 병원을 중심으로 한 건강관리체계는 의료를 병원이 독점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건강과 의료로 부터 객체화 시키며, 국가 보건의료예산을 증대시켜 예산의 의료화를 촉진하며 사회전체를 의료화 한다고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일리히의 지적은 현실화 되어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보건복지예산과 의료보험예산,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 병원이용의 급속한 증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병원이 관리하는 체계에 우리의 삶은 포섭되어 있다. 보통사람은 의료와 건강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아프면 겉으로만 비영리를 내세우며 의료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국가중심의 건강관리체계에 종속되어 국가보건기관의 끊임없는 캠페인과 관리방침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뫔에 대해 주인이면서도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식민화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삶과 건강에 대해 과도한 국가의존주의나 의료에의 의존은 ‘건강의 주인됨’의 상실로 귀결되고 그것은 인간의 자발성과 자율성의 발현을 제한하거 억제하는 것이자 인간성숙과 진화를 막는 행위이다.

건강한 사회의 실현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의학과 과학의 권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주의 신령스러운 우두머리들인 사람이 능동적인 건강공동체의 주인공이 되어야 이들이 질병예방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이를 발판으로 공동체들의 공생방역과 ‘공동체적 돌봄 문화’가 공유된 뒤에 1차 의료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질병관리체계가 결합되어야 실현되는 것이다.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