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킹혼, 큰 그림을 그리다- 서평 『과학으로 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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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벽신문 46호(2015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폴킹혼, 큰 그림을 그리다
– 서평  『과학으로 신학하기』

이정배|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폴킹혼이 성공회 사제가 된 후 내놓은 책들은 대부분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집중되어 왔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아주 정력적인 저술활동을 통해서 30여권에 이르는 책들을 쏟아냈지요. 그렇다고 이 책들이 모두 독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과학과 신학이 가진 각각의 설명 구조가 서로 가족유사성을 갖으며 진리를 찾는 데 있어 서로를 불가결하게 보충한다는 이른바 공명론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자신의 논거를 이 책 저 책에 중복해서 사용하곤 합니다. 게다가 그의 신학은 몰트만류의 신학에 경도되어 있어서 자신만의 신학적 깊이를 확보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변명하며, 동시에 항변하고 있습니다.

“… 내 분야를 벗어나 신학에 입문했을 때 … 나 또한 하나의 학문분야에 일생을 건 학자적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전문성의 부족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 삼위일체신학의 전통적 언어 자체가 불명료하다. 하지만 학제 간 작업이 실행되어야 할 필요성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우리는 이로 인한 지적인 모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조금의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고서 더 멀리 볼 수 있기를 바랄 수는 없다. 어떤 위험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지식의 폭을 갖추고서 학제 간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학제 간 상호작용은 신학적 탐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본질적이다. 신은 모든 존재의 토대이므로, 실재에 대한 인간의 모든 합리적 탐구는 신학적 사유 … 에 무언가 기여를 하게 됨에 틀림없다. 실재를 합리적으로 탐사하는 모든 방식에는 캐내어야 할 보물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44-45쪽)

실제로 그의 책들 중에서 과학적 개념을 신학 논의에 연결하여 새로운 신학적 해석의 길을 시도한 ‘지적인 모험’들을 꽤나 꼽을 수 있습니다. 평자에게는 그중에서도 <과학시대의 신론>Belief in God in an Age of Science(1998년), < 희망의 하느님과 세계의 종말>God of Hope and the End of the World(2002년), 그리고 이 책 <과학으로 신학하기>Theology in the Context of Science(2008년)의 세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학시대의 신론>에서 그는 “활성 정보(active information)”라는 개념을 통해서 성령을 현대과학에 입각해 재해석하는 방식을 멋지게 보여주었고, <희망의 하느님과 세계의 종말>에서는 우주의 지평에서 종말론을 재해석할 수 있는 방식을 ‘정보’ 개념과 ‘위상공간’ 개념을 활용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학의 특정 영역을 과학적 이해와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에는 “실재에 대한 인간의 모든 합리적 탐구는 신학적 사유 … 에 무언가 기여를 하게 됨에 틀림없다.”(45쪽)는 신념이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과학으로 신학하기>는 이 두 권의 책들이나 이 책 이전에 나온 그의 다른 책들과 전혀 다른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지요.

“지금 나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이 대화라는 것의 성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논의 과정에서 특정한 문제 또한 다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논의될 몇몇 특정한 개념들은 나의 저술들에서 논의된 것들을 포함하여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과학과 종교를 다룬 문헌들 어딘가에서 이미 상세하게 다루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자료들이 구성되고 소개되는 방식은 다른 저술 형태와 상당히 다른데, 한편으로는 일반화된 통찰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통찰들과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18쪽)

실로 이 책은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맥락 속에서 신학이 어떻게 일관성을 잃지 않고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겠는가를 논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어떻게 과학과 접목하여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논의를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찾으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실망할 겁니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맥락에서 신학적 사유를 어떻게 전개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 그리기입니다.

평자는 이러한 그의 시도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맥락에서 신학을 재구성하려는 기획을 통해 신학적 이슈들을 과학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던 기존의 변증신학적 접근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몸부림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요. 사실, 과학의 맥락에서 신학을 재구성한다는 이야기는 신학을 ‘과학적으로’ ― 과학의 진리는 절대적·객관적 진리라는 생각을 포기하고, 이 진리 또한 잠정적이며 신념의 영향을 받는다는 현대과학의 자기 이해를 간과하지 않는 한에서 ― 재구성한다는 말에서 멀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른 맥락신학들, 예컨대 ‘정치적으로’, 또는 ‘토착문화의 차원에서’, 아니면 ‘사회구조적으로’ 신학을 재구성하는 작업들과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가의 문제가 대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과 우주, 본성과 사실, 즉 퓌시스를 다루는 작업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 법과 당위, 즉 노모스를 다루는 작업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오랜 논쟁에서 폴킹혼의 전체적인 밑그림 그리기 기획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의 밑그림에 놓인 우주론적 종말론이 어떻게 정치적 함의를 갖는 운동으로서의 종말론과 만날 수 있겠는가는 상당히 문제적이지요. “죽음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하는 새로운 창조”(240쪽)가 우주의 존재론적 종말과 연계되는 한, 지금 여기에서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종말론적 열망에 충분히 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킹혼의 과학신학은 맹목적 믿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간절히 필요한 균형감각을 제공하는 맥락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신학은 “진리 물음에 치열하지 못하고 그것을 사적영역에서만 구하고 있는 한국교회에게 물리세계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이정배, <기독교 자연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5, 136쪽)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쉽지 않은 이 책을 번역하느라 수고한 역자 신익상 박사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신학자로서 신익상 박사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본 책이 이 땅의 과학자들의 세계는 물론 한국 신학계에 두루 읽혀지고 교회현실에까지 파급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과학으로 신학하기

과학으로 신학하기 존 폴킹혼 저 / 신익상 역 2015년 7월 25일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140x210mm / 304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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