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치는 한반도, 혈로를 뚫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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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벽신문 46호(2015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소용돌이 치는 한반도, 혈로를 뚫어야 한다

박길수| 본지 주간

오는 7월 29일은 카쓰라-테프트 밀약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내각 총리대신 카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통치를 지지하며, 미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령으로 통치하는 것을 용인/지지한다는 각서를 교환한 날이다. 그리고 그해 11월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을사조약 체결을 강요하였고, 미국은 이를 묵인하였다.

카쓰라 태프트 밀약은 명치유신(1866)에서 패망(1945)년에 이르는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화와 대외 침략 80년사의 한복판에 위치하면서, 일본이 침략 전쟁을 전후하여 어떠한 외교적인 조치를 취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그 이전의 영일동맹(1902), 시모노세키조약(1895) 등에서도 일본은 한반도에 뻗친 주변 강대국들의 손길을 털어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하였고, 그 이후로도 유사한 조약을 거듭 체결하는 수십 년간의 노력의 결실(?)로 마침내(!) 한일병탄(1910)을 이루어 냈다.

110년 전의 일을 새삼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그때와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일본 아베 내각은 지난 7월 15일 집단자위권 행사를 중심으로 한 안보 관련법을 중의원에서 통과시키고, 참의원 통과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안보 관련법 개정 움직임은 전후 70년 동안 헌법 제9조, 일명 ‘평화헌법’의 정신에 따라 일본 본토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위협에 대한 방어적 대응만을 용인했던 태도를 완전히 뒤집는 결정을 ‘법률’로서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이 위헌적인 법률이라고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데도 아베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일본의 헌법 제9조는 다음과 같다; “(1)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에 의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으로 인한 위협 도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과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일본은 ‘군대’ 대신 ‘자위대’를 보유할 뿐이며, 일체의 대외 교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의 해석이었고, 실제 일본의 정책 기조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베는 이미 집권 이전부터 헌법의 개정 내지 새로운 해석과 이를 토대로 한 ‘보통국가=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목표로 한 행보를 보여 왔고, 그 결실이 ‘집단자위권’ 관련 법안이다. 집단자위권이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일본과 관계된 제3국에 대한 공격 역시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반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말의 성찬을 걷어 내면, 한마디로, 필요한 때에 어디서든 상대방을 공격하는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태도이다. 아베 정권이 이러한 ‘무리수’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배경에는 바로 미국의 용인 내지 부추김이 자리 잡고 있다. 11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일본을 고리로 하여 중국을 필두로 하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견제와 통제를 시도하고, 나아가 러시아에 대한 견제까지를 시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큰 틀에서 이는 지난 1세기 이상 변하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사실보다는 동아시아에서 자국을 위협하는 중국이나 북한을 견제하고 타격할 수 있는 앞잡이로서의 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반도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사실 미국과 일본의 태도나 정책이 아니다. 저들로서는 자국에 유리한 최선의 행로를 찾아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적어도 일본, 나아가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끊임없이 분쟁을 ‘제압’하는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의 안위란 동아시아 전체의 정국의 하위변수/종속변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건 바로 우리들이다. 국가 사이에서 ‘정의’란 구두선에 불과하고, 영원한 적국도 영원한 동맹도 없다는 것이 지난 1세기 세계사가 보여준 진리이고,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피의 희생을 치르며 그 진리의 일단을 확인한 바 있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집단자위권 법안 관련 논의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반대시위가 일어나고 그동안 숨죽였던 ‘반전 세력’들이 결집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민중들이 가진 ‘전쟁’에 대한 생래적인 공포감의 발로이면서, ‘전쟁 없는 평화 세상’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110년 전 카쓰라 태프트 밀약을 전후로 한 시기 대한제국의 조야는 국제정세에 깜깜이인 채 조정에서는 외세를 불러들여 자국의 혁명군(동학농민혁명)을 제압하려 들거나 주변 강대국에 이리저리 의탁하기에 급급하고, 외세에 의존한 개혁(갑신, 갑오개혁)을 시도하는 등으로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잃고, 오랜 식민 통치를 겪은 후에, 나라가 동강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 우리가 취해야 태도는 무엇인가? 역시 역사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우리를 상위에 올려놓고 주변 강대국끼리 돌아가는 협상의 고리를 차단해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나라와도 적대적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신뢰하거나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외세 의존적이거나 국론 분열과 한반도 내의 대립을 조장하는 분열적, 반통일적인 정책을 즉시 폐기하고, 남과 북의 시민/인민의 의지를 총결집하여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역량을 비축하여야 한다.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사방으로부터 포위되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정세이다. 이 사지에서 혈로를 뚫어나갈 방향은 사실 남과 북 사이에 관계를 개선뿐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나라 안팎의 무리들을 설득시키거나, 강제(선거)로 비켜서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평화로운 한반도 공동체, 정의로운 통일조국을 꿈꾸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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