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탄지심 두지말고 차차차차 지냈어라

3 years ago by in Society

​​​​​​## 이 글은 개벽신문 46호(2015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개탄지심 두지말고 차차차차 지냈어라

심국보| 천도교 진주시교구

 메르스 사태로 온 나라가 큰 홍역을 치렀다. 이번 일로 우리는 ‘감염병’ 문제가 19세기에 ㅈ오결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오래된 미래임을 뼈아픈 희생을 겪으며 절감하고 있다.
전염병의 경우 제대로 된 정보와 초기 대응으로 환자를 격리·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스는 독감 같은 것으로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하지만, 메르스의 치료법이 딱히 알려져 있지 않았고 정부에서 메르스 발병 초기 단계에 이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다 보니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을 제대로 격리 차단하지 못하여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자 혼란이 가중되었다.

메르스로 시끄럽기 얼마 전의 일이다. 조니뎁이라는 미국 배우가 애완견을 데리고 호주를 방문한 뉴스가 화젯거리가 되었다. 조니댑의 애완견이 전염병 검사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호주 검역 당국에서는 난리를 쳤다. 개를 추방하거나 안락사시키든지, 아니면 조니뎁이 법정에 서야 하는데, “법정에 간다면 조니뎁은 34만 달러 혹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고 엄포를 놓는다. 개 한 마리 때문에 3억, 4억의 벌금! 징역 10년! 겁주는 소리고 그냥 해 보는 소리일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개 한 마리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호주라는 나라가 심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호주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조니뎁의 애완견이 이후 어찌 되었는지 나는 전혀 관심도 없지만, 호주 장관의 줏대 있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탁월한 영화배우이고,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에 두 번이나 뽑힌 스타라 해도  호주에 왔으면 호주 법을 따라야죠.”
축구화에 묻은 흙만큼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탄저균

메르스도 메르스지만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게 있다. 탄저균! 치명적인 대량살상 무기인 탄저균이 주한미군에 의해 불법 반입돼 논란이 되고 있지만, 묘하게도 메르스 확산과 겹치며 탄저균에 대한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국회가 열리면서 논란이 되긴 되었다. 100킬로그램이면 수백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미군의 탄저균을 두고 총리라는 분이 하는 말씀이 참 가관이었다. 탄저균 소동을 일으킨 미군을 고소하라는 여론에 대해 “동맹관계라서 제약”이 있다고 차마 못할 소리를 한다. 소파(SOFA,한미행정협정) 개정해서 우리나라가 사전허락 해야 미군이 뭘 가져올 수 있게 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먼저라며 엉뚱한 소리다. 진상 규명이라도 제대로 하면 다행일지 모르지만 그냥 입 발린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메르스처럼 탄저균으로 국민들이 죽어 가면 그때서야 쉬쉬하면서 여론에 밀려 움직이는 척은 할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또 호주에서의 이야기다. 10여 년 전 한국의 올림픽축구 국가대표팀이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곤욕을 치렀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호주의 검역 당국이 선수들의 축구화에 흙이 묻었다며 이를 검사하겠다고 가방을 열 것을 명령한다. 세균 감염 위험이 있는 동식물을 몰래 반입한 것도 아닌데도 선수단 전원의 운동화에 묻은 흙까지 모두 검사를 받았고, 한 달 동안 입을 팬티까지 속속들이 들춰내야 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2시간여를 시드니국제공항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다려야 했다. 축구화에 묻은 흙만큼도 쟁점이 되지 못하는 탄저균 사건을 보면 대한민국은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도 한참 비정상이다. 하긴 명색이 주권국가인데도 전시의 군사작전권도 미국이 틀어쥐고 있으니 미군이 무엇을 반입하든 말든 찍소리 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자위하면 그만이지만.

 

전염병 유포로 원주민 대량학살

호주의 검역당국이 엄격하게 세균 감염의 위험이 있는 동식물을 조사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호주는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신대륙이었다. 18세기 후반 쿡 선장이 호주를 탐험한 이후 호주는 동부의 시드니를 중심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이주민들과 같이 신대륙에 들어온 매독, 천연두, 인플루엔자, 홍역과 같은 전염병 때문에 호주의 원주민들은 많은 피해를 입는다. 영국인들에 묻혀 들어온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없던 원주민은 전염병으로 당시 전체 인구의 90%가 감소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영국인 이주 정책으로 호주의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한 것도 원주민 인구 감소의 커다란 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사람 세균이었던 셈이다. 호주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북아메리카에서의 사정도 비슷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의 상황을 『총균쇠』1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의 우월성만으로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선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한 유럽 고유의 전염병들은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들을 몰살시킴으로써 유럽인들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1520년 잉카족에 대한 스페인인들의 첫 번째 공격이 실패로 끝난 후 천연두가 유행하는 바람에 아스텍의 황제가 죽고 유럽인들이 가져온 각종 질병은 남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유럽인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각 부족으로 퍼져 나가며 인디언들을 초토화시켰다. 그렇게 죽어간 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는 콜럼버스 이전 인구의 95% 수준으로 추정된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인구도 많고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던 원주민 사회는 미시시피의 인디언 사회들이었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아직 미시시강 유역에서 첫 번째 정착촌을 세우지도 못했을 1492~1600년대 말에 그런 식으로 사라져 갔다.”

‘유럽의 잔혹한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 유럽인들이 옮긴 잔혹한 세균에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하는 이러한 주장은 반은 옳고 반은 틀린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면역성이 없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무수히 죽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대한 유럽인들의 대대적인 학살 역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면 유럽의 백인들이 남북아메리카에 옮긴 전염병은 ‘우연’이었고 원주민에게는 ‘비극’, 백인들에게는 ‘축복’이었을까? 원주민 학살을 위해 고의적으로 전염병을 확산시켰다는 증거들2을 살펴본다. 한마디로 유럽 백인 침략자들이 남북 아메리카와 그 중간 카리브해의 원주민들을 잔인하게 집단 학살하였으며, 특히 이름도 가지가지의 전염병 병원에서 나온 이불과 목도리까지 선물하여 거의 멸종 수준에 이를 정도로 학살했다.

1520년부터 1890년까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속에 무려 41차례나 천연두 전염병 및 풍토병이 유행되었다. 이에 더해 홍역, 백일해, 결핵, 선(線)페스트,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콜레라, 디프테리아, 성홍열, 늑막염, 유행성 이하선염, 성병 그리고 일반 감기 등 수십 가지 치명적인 질병이 퍼졌다. 이런 질병에 의한 토착민 감소는 흔히 비극으로, 전적으로 유럽인과 토착민의 접촉에 따른 우연하고도 고의가 아닌 부산물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원주민 부족들이 영국인들과 벌인 최대의 전투라고 하는 1675~76년의 소위 ‘킹필립전쟁’은, 천연두를 유럽인들이 고의적으로 퍼뜨렸다는 것에서 촉발되었고, 이후 유럽인들은 실제로 전염병을 일부러 퍼뜨리는 세균전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암허스트는 1763년에 휘하의 부케트 대령에게 내린 명령서에서 ‘천연두 병균에 오염된 담요 등-이들 형편없는 종족을 절멸시킬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폰티액의 원주민 연합군 대원들을 감염시키라고 지시했다. 며칠 후 암허스트는 ‘천연두 병원에서 나온 담요 두 장과 목도리 한 장을 그들에게 주었다. 바람직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성과는 있었다. 암허스트의 생물학전에 의한 전염병으로 최소한 10만 명의 인디언이 죽었다. 1836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미군은 미주리 강 만단족에게 고의로 천연두 병균으로 오염된 담요를 배급했으며, 그 결과 전염병이 퍼져 토착민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미경으로 바라본 탄저균

현미경으로 바라본 탄저균 “Bacillus anthracis 2” by push0k (@https://www.filckr.com/photos/27582631@N08/12584148114)

 

 아투에이(Hatuey)3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이라고 도착한 곳은 쿠바 옆에 있는 지금의 아이티 섬이다. 콜롬버스 일행은 원주민인 타이노족의 환영을 받는다. 콜럼버스 일행은 어쩌면 에덴동산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숲은 우거졌고 자연은 아름답고 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낙원 에덴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옷도 별로 입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뛰어난 농경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작물을 동시에 함께 심었다. 그렇게 하면 관리를 하거나 손댈 필요가 거의 없다. 밭에서는 일주일 중 몇 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바다로 들어가면 곧장 얻을 수 있고, 그것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음악이 중요하였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시간,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이 많다.”

유럽인들은 노예제를 만들고, 플랜테이션(단작) 농업을 한다. 울창했던 숲이 베어지고 지금은 1%도 남아 있지 않다. 타이노족을 섹스 노예로 삼았고 유럽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았다. 콜럼버스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당시 중개상들은 어린 소녀, 특히 9살에서 10살 정도의 소녀들을 선호했다. 콜럼버스는 타이노족을 총으로 죽이는 것은 물론, 사냥개들을 풀어 물어뜯게 하고, 항문에서 입까지 쇠꼬챙이를 찔러 넣기도 했다. 타이노족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100명이 집단으로 자살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의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 콜럼버스 일행은 타이노족을 섬에서 몽땅 쓸어버린다.1492년 콜럼버스 일행이 도착하기 전 아이티 섬의 인구는 800만이었는데 1496년 110만, 1516년에는 12,000명에 불과했다. 1555년에 타이노족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절하게 된다.

여기서 타이노족 추장 아투에이를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타이노족은 유럽인들에게 결코 순종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땅과 숲과 아이들을 빼앗긴 데 항의하며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지만 부족은 전멸하게 되고 아투에이는 수백 명의 남은 타이노족 사람들과 함께 쿠바로 피신한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스페인 정복자들과 전쟁을 벌이게 되고 1512년 2월 결국 그는 사로잡혀 화형을 당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그는 스페인 가톨릭 신부로부터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천국으로 갈 것”을 제의받는다.

잠시 생각한 후에 아투에이는 되묻는다. “여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람들,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는 나의 가족을 겁탈하고 그리고 나의 온 재산을 빼앗고 가축들을 탈취해 간 이 사람들도 천국을 가는가?” 신부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투에이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산 채로 화형을 당한다: “나는 스페인 사람이 있는 천당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 나는 그런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그들이 없는 지옥이 바로 천국이다.”

쿠바에서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한 최초의 인물로 기억되고 이가 아투에이다. 아투에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등장한다. 소설 속의 소년이 노인에게 건내는 맥주가 ‘아투에이맥주(Cerveza Hatuey)였다: “맥주도 두 병 주셨어요.” “난 캔 맥주가 제일 좋던데.” “알아요. 하지만 이건 병에 든 아투에이 맥주에요. 병은 제가 다시 가져다줄 거예요.” “참 고맙구나.”

남미에서 해방신학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인물이 ‘아투에이’였다고 하니 참 난감했다. 즉 아투에이의 “천국과 구원에 대한 이해를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첫 번째 신학적 해석 행위”로  간주한다는 글4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한때 해방신학의 논리가 대단했다고 여겼던 적도 있었다. 해방신학? 한마디로 참 별꼴이고 같잖았다. 해방신학의 뿌리 옅음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유럽인들이 학살한 수많은 사람들 – 근거 자료에 따른 것만 하면 카리브해에서 1500여만 명, 북아메리카에서 1500여만 명 등 3000여만 명, 실제로는 1억 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유럽인들이 학살하여 거의 절멸시켰다는 주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들이 가는 천국을 한사코 거부한 아투에이를 해방신학의 근거로 이용하는 것은 아투에이를 비롯한 학살당한 영혼을 조롱하고 두 번 죽이는 행위일 게다. 어쨌거나 참 별꼴이고 같잖은 게 또 있다. 총리라는 분이 미국과 우리나라는 ‘동맹관계’라서 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을 고소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다고 한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이지만 이렇게 쏘아 붙이고 싶었다.

“동맹관계? 미국은 대한민국의 상전이며 솔직히 ‘괴뢰’에 불과한 우리는 미국을 기소할 수 없다고 하라.”

수운께서 노래하셨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 태평성세 다시정해 국태민안 할것이니 개탄지심 두지말고 차차차차 지냈어라.”
또 노래하셨다: “동산이 밝고 밝아 오르고자 함이여, 서봉은 무슨 일로 길을 막고 막는고.(東山欲登明明兮 西峯何事遮遮路)”

 

1 이글에서는『총균쇠』제3장, 11장을 주로 참고함
2 『그들이 온 이후』를 주로 참고. 이 책은 미국원주민 출신의 학자가 지은 책으로  ‘토착민이 쓴 인디언 절멸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3 아투에이 관련하여서는 『자본주의를 넘어』(한살림),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등을 참고.
4 http://m.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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