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사과의 맛을 아시나요?

2 years ago by in Society

​​​​​​## 이 글은 개벽신문 46호(2015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동학 사과의 맛을 아시나요?
– 영남에 부는 생명 바람

김성순| 한국포도회 명예회장

바보 주막과 순도비 이야기
지난 6월 19일 저녁, 대구광역시 중구 약령길 25-1 협동조합 다문(바보주막) 마당에서 벽화 제막식과 박맹수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메르스 바람이 이 지역에도 불어서 가족들이 팔십 노인의 외출을 말렸으나 마스크를 준비하고 참가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 가깝고 그의 맏형이며 상해임시정부에도 참여한 이상정 장군이 거처하던 유서깊은 한옥마당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짚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펼침막이 걸리고 김효주 씨의 살풀이 춤과 곽도경 시인의 시낭송에 이어,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의 저자 박맹수 교수가 열강했다. 통일 신라의 정신적 지주 원효스님의 고향이요, 대구에서 순도한, 구한말의 선각자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의 생명사상은 오늘날 혼란에 빠진 세계에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일본의 명문 교토대학에서 오는 11월 동학 세미나가 준비되고 있다 하였다.
나는 12년 전인 2003년 봄 서울 교보문고에서 산 한 권의 책이 인연이 되어,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선생을 알게 되고, 2006년 이후 매년 가을에 5박 6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동학 여행에 참여, 2013년 김천·대구·경주를 순례하는 과정에서 수운 선생 순도비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2013년 초부터, 순도비 건립에 대한 뜻을 세우고, 천도교 대구시교구에 추진위를 구성하고, 지방 여론과 대구시 당국, 특별위원회의 협의 끝에 마침내 반월당 현대백화점 앞 시유지 일부에 건립하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비문에 있어 천도교중앙총부의 안인 ‘동학 천도교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가운데, ‘천도교’ 석 자를 빼달라는 위원회 의견으로 난관에 봉착하였다. 궁을 문양과 <천도교 대구교구>의 문구는 그 밑에 있으니, 현지의 여러 실정을 고려하여 용시용활의 지혜로 모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 지역의 관심을 저버리는 일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경북대, 영남대 동학 세미나와 한울연대 수련 등에 참여하면서 대구 동학연구회, 동학공부방 등을 통해 활발히 움직이고, ‘동학의 뿌리는 대구·경북이다’ 다짐하며 이 지역의 뿌리 깊은 보수·진보의 대립, 남남 갈등을 근본적으로 풀어보고자 꿈꾸고 있다. 중앙의 높은 자리에서 보지 말고 현지에 내려와서 실상을 살펴보길 바라며 ‘무신론자라도 양심의 법에 따라 살면 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언이 많은 공감을 얻는 시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성장할 수 없다 하였다. 대구 지형이 큰 거북이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며 지하철 1, 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 거리를 수운광장으로 하자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고[心和氣和]
2007년 6월 3일, 단성사 앞 도로변에서 열린 해월 선생 추도식에 참석하고, 2009년 2월 25일 용담정과 묘소를 찾았을 때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전택원 씨는 271자 도선비결을 풀다가 “아들이 있는 장수가 어느 고을에 한가롭게 누워 있다[有子之將 閑卧一州]”는 대목에 막혀 고민하다가 표영삼 『동학』에 실린 사진을 보고 묘소를 찾아 도선비결의 주인공이 수운 최제우였음을 확인하고 울부짖었다 한다(『천년의 만남』, 흐름출판).
그날 나는 66년 만에 모교인 현곡초등학교를 찾아 옛 학적부의 소위 창씨개명한 이름을 정정하였다.
4·19가 나던 1960년 봄. 하천 부지 모래땅에 포도를 심고 유달영 선생의 ‘소심록’, ‘인간 발견’, ‘유토피아의 원시림’ 등을 읽으며 비로소 내 발이 대지를 밟게 되었고, 유신체제 아래서도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와 ‘씨의 소리’를 읽으며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을 거쳐 농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80년 한국포도회를 만들고, 정농회 유기농업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생명평화운동에도 뒤늦게 참여하였으나 2008년 촛불시위가 계속되던 해부터 동학 공부를 하던 중 천부경을 만나게 되었다.
“우주의 본질은 생명이다. 천·지·인 혼원일기에서 나와서 다시 거기로 돌아간다.” “인간의 근본 마음자리는 우주의 근본인 태양과도 같이 광명한 것이어서 이렇게 환하게 마음을 밝히면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가 되어 천지인 삼신일체를 체득하게 된다[本心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
그동안 머물고 있던 기독교적 세계관이 순간에 날아가는 태풍과도 같았다.
“작은 정성은 하늘을 의심하고[下誠疑天] 보통 정성은 하늘을 믿고[中誠信天] 큰 정성은 하늘을 믿고 의지한다[大誠恃天].”
그런데 수운 선생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시천(侍天)” 내 마음에 ‘한울님’을 부모님처럼 모신다고 하니, 한 차원 높으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기독교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문장을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땅에 있는 나와는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다. 동학에서는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천지, 천지 부모는 일체니라.”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잠시라도 모앙함을 늦추지 마라.” “수심정기 동귀일체” “흐린 기운을 쓸어버리고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를 말한다. 하늘과 내가 둘이 아니다.
어느덧 80대 후반 보청기를 몇 번 갈아도 가족들은 답답해 하고, 인터넷 세상에 남은 시간을 생각해 보다가 스승님 첫 문답의 장면을 펴 본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 너는 무궁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사람을 가르치고 덕을 펴라. 너를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스승님은 불출산외의 맹세를 하고 피나는 정진 끝에 이 말씀을 듣고도 1년 넘게 실험 검토하신 후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않음’을 깨닫고 포덕에 임하셨다. 오늘날 나 자신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 생각한다면 어떻게 이해할까?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받아들이자면 마지막 문제, 생사관, 사후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도통의 경지에 들어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승님께서는 4년 만에 누명을 쓰고 참수되었다. 여기서 다시 성령출세설의 말씀을 상기한다. “사람의 영과 육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사람의 영은 곧 우주의 정신이며 조상과 선사의 정령은 후손과 후학의 정령과 융합하여 영원히 세상에 나타나서 활동한다.
나카츠카 선생의 동학을 통한 한일 교류가 올해 10년차를 맞이하였는데 정부와의 소통이 거의 단절된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조협회(日朝協會) 고문 요시다(吉田博德) 씨는 2013년 만난, 일제강점기 경성사범 출신 90대 노인인데 일본의 종교평화협의회에서 동학 천도교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 하여 자료를 보냈다. 마에다 겐지(前田憲次) 감독은 동학농민혁명을 테마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한편 15인의 여성들이 동학다큐소설을 집필 중인데, 금년 내 13권이 발행 예정이라 한다. 눈물과 한숨에 젖은 수많은 조상님들의 영혼의 하소연을 듣고 제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창조력과 역동성이 과연 어디서 오는가?
동학혁명은 엄청난 희생을 초래한 실패한 운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3·1독립선언문에 명시된 것과 같이 약육강식과 폭력의 시대를 거부하고 각자위심의 시대를 벗어나 해원, 상생, 협동의 시대로 한 단계 발전하려는 인류 역사의 시대적 표현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영광스러운 과제가 아닌가 한다.
김구 선생은 1947년 12월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다.” 하셨다.
분단 70년을 맞이한 오늘 어두움 속에서 울리는 북소리 징소리… 내가 진정 한울님을 모시고 한 마리 어리석은 거북이가 되어 하루에 꽃 한 송이 이틀에 두 송이 심화 기화 노래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조금씩 밝아질 것이다. 동학 사과의 맛이 과연 어떠한가? 여러분이 다투어 증언해 주실 날이 올 것이다.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