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은 통일이다

3 years ago by in 특집

​​​​​​## 이 글은 개벽신문 46호(2015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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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주] 올해 2015년 8월 15일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또한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어느덧 한반도 코리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기상을 잃어버렸고, 허리가 잘린 채 형제끼리 서로 물고 뜯는 중병에 시달린 지 오래다. 이른바 분단병이다. 남과 북은 부와 빈곤, 종남과 종북, 남자와 여자, 개발과 정체, 이성과 야만이라고 하는 이분법으로 손쉽게 환치되며, 따라서 남과 북 어느 국민들도 온전하고 성숙한 세계관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분단병이 너무 오랫동안 깊어서일까. 온전한 통일은 그 누구도 장담하거나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개벽을 꿈꾸며 통일을 소망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개벽이란 온전한 통일 한반도를 통해서 오는 것이므로.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좌담회
통일, 전 지구적 개벽의 비전을 실현하는 출발점
– 개벽과 통일을 위한 적공(積功)이 필요하다


 

일시 : 2015년 7월 13일(월)
장소 : 서울시 경운동 수운회관
사회 : 김용휘__ 철학박사
패널 : 김용우__ 생명평화결사 정책위원장 / 김화순__ 한신대학교 유라시아연구소 /
서보혁__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 유정길__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
이승환__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기록 정리 : 박길수__ 본지 주간 / 임소현__ 본지 편집장

 

김용휘

김용휘

“한반도 통일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는 전환점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개벽을 논함에 있어 통일을 빼고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바람직한 통일 한국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김용휘(사회) : 바쁘신 중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9세기 중엽 동학의 수운 선생이 ‘다시 개벽’을 부르짖은 이후로 동학·천도교는 ‘개벽’을 “삶의 양식의 전면적 전환”으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문명운동적 차원에서 접근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개벽은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거대담론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개벽은 그렇게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개벽은 나의 내면을 평화롭게 바꾸는 것이며, 나의 생활양식을 생태적 공생의 삶으로 바꾸는 것이며,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누구도 차별 없이 존중받는 사회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에서의 삶과 세계 변화가 그동안의 일상을 넘어서는 ‘대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시대 상황과 관련지어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갈등은 분단 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봅니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은 물론, 세대 간 갈등도 일정 부분 분단 체에서 야기된 측면이 있습니다. 정치도 종종 정책 대결보단 이념 대결로 가 버립니다. 심지어 경제적 평등의 주장, 양극화 해소 같은 의제들조차 종북적 사고로 매도되기도 합니다. 분단은 우리의 정신도 반쪽으로 만들어 사고의 경직성을 초래해 왔습니다. 배제와 이분법적 사고를 무의식적으로 강요당함으로써 다양한 상상력, 창의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차단해 왔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1920~30년대의 글들을 많이 보는데요, 분단 전의 지식인들의 사고가 오늘날보다 훨씬 국제적이고 통합적이며 웅혼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상식과 보편적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분단 체를 극복하는 것은 필요불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한반도 냉전 구도의 해체를 통한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아시아평화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독일 통일이 유럽 통합 과정의 일부이었으며, 유럽 역사 발전 과정의 한 부분이었듯이 한국 통일은 아시아 역사 발전 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은 지금의 신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공생하는 신문명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매우 상징적인 세계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통일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는 전환점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개벽을 논함에 있어 통일을 빼고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바람직한 통일 한국을 만드는 것이 바로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통일 자체가 아니라 바람직한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이 단순한 민족성원의 정치적 결합이 아닌 민족 공존공영의 계기가 되어야 하며, 나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 이상적인 사회를 함께 만드는 신문명운동의 한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일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취지에서 이 좌담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통일 논의는 주로 정치적 측면에서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집중되었고, 각자가 자기의 분야에서 너무 협소하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을 통합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균형 있는 통일 한국의 설계도를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각 분야의 통일 논의가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는지 거시적 측면, 통합적 측면, 생명평화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각자의 활동 분야에서 기존의 통일 논의의 문제점과 한계가 무엇인지 먼저 한번 짚어보고 논의를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선 오늘 참석하신 분들이 각자의 영역과 관점에서 통일 운동의 현황을 짚어주시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관점을 제안해 주시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기로 하지요.

 

김용우

김용우

“체제 통일을 고집하면 남북이 통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이 공존하는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는 통일.
제3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 통일 운동의 중요성

김용우 : 기존의 통일 논의는 근대적 의미의 단일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근대화 과정은 단일 국민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이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봉건을 넘어서 근대로 가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겪으면서 통일 국민국가 형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목표가 근대 국민국가, 그것도 단일/통일 국민국가인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이런 의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택할 수 있는 수많은 통일론에 다 반영되어 있어요. 현재의 공식적인 통일론이라고 이야기하는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을 봐도 그렇습니다. 단일 민족국가 건설은 결국 체제 통일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데 체제 통일을 고집하면 남북이 통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를 구성하면서도 복합적인 정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을 통일의 대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났습니다. 기존의 남북연합 논리가 일종의 선이후난(先易後難)이라는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남북이 우선 할 수 있는 것을 잠정적·과도적 형식으로 시도해 보자고 논의됐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민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남북연합은 기능주의적 인식이 아니라 복합적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2지역 체제론이라는 것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2지역 체제론은 북한의 급속한 붕괴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기존 통일 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체제를 유지하면서 과도적 기간 동안 2지역 체제로 유지해 나간다는 논의를 부가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식의 통일 방안은 시장의 통일을 목표로 해서 잠정적으로 2지역 체제를 일정 기간 동안 유지한다는 것인데, 아까 말씀드린 단일 국민국가의 문제의식이 발전한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체제 통일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과 관련된 논의는 기존의 진보와 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환 : 시민사회 진영의 통일 운동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오랫동안 통일 문제에 대한 관점은 남북의 양 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통일 문제는 국가 안보와 동일한 차원의 문제, 그러니까 국가 안보를 포함하는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전유물이나 독점물처럼 여겨졌던 것이죠. 하지만 1980년대부터 시민사회가 적극적인 주체로서 통일에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과 움직임이 한반도, 특히 남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직접 방북하시면서 민간 통일 운동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을 하게 된 거죠. 그 이후 시민사회의 통일 운동은 남한 시민사회를 남북의 권력과 구별되는 통일 운동의 제3당사자로 규정지으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전 지구적 생명·문화 위기 해결의 출발점

유정길 : 남북 관련 문제, 통일 문제는 현 시점에서 가장 큰 사회적 과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통일 문제를 남북문제로만 국한해서 봤습니다. 전 지구적인 위기, 문명적 전환 같은 것들이 과거엔 몇몇 사람들의 문제였지만, 가면 갈수록 전 지구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북문제와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삶의 위기를 해결하는 전환 문제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통일되어야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의 통일 문제를 전 지구적 위기와 결합시킨다는 시각이 한국 내에서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평화재단 있을 때 내부에 계신 분들을 보면 정세 분석과 평가를 하는 분들은 많았지만 통일을 놓고 남북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이 전 지구적 위기를 해결하는 단초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을 갖지 못한 듯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국내 과제로서만 한정하지 말고 전 지구적인 위기로서 통합시키는 관점으로 확장되어야만 통일이 한국/한반도의 미래가 아니라 전 인류의 비전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현재의 통일 운동은 소위 뉴턴식 운동이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입자와 입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역학이죠. 하지만 지금은 뉴턴의 역학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고 양자역학의 시대입니다.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에너지장이거든요. 실제로 물리학에서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고 에너지장이 실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통일 운동은 아직도 뉴턴식 역학 운동으로 가고 있어요. 남과 북의 체제 통합만을 통일로 보는 것도 그런 시각의 범주라 할 수 있죠. 역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해결이 난망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양자역학적인 에너지장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양한 것들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특히 물질중심적인 가치에서 영성이나 정신적 가치들이 전 세계적인 사상 면에서 통합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정신적인 진화 이야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지금의 통일 논의가 너무 정치적인 것에만 국한해서 생각한 나머지 정신적 통합 같은 이야기는 거의 안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문제입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는 이것까지도 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포워드 스케줄이라는 것이 있어요. 앞으로 3년 뒤 5년 뒤에는 뭘 하자라는 관점입니다. 이와 반대로 백워드 스케줄이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가 50년 뒤에 이르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것이라고 규정해 놓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뭘 준비하자고 거꾸로 설계해 나가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미래 사회를 결정해 놓고, 그걸 위해서 무엇을 준비할 것이냐를 생각한다면 통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주도할 수 있으리라고 보여지는데 상대적으로 주변의 변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논리에 굉장히 많이 규정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의 전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에 치우친 통일 논의 극복, 냉전적 사고의 극복,
대결과 전쟁에서 평화적 수단으로의 진화

서보혁 : 첫 번째, 민족안보론과 민족주의가 기존 통일 논의를 지배해 왔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남북한의 양상은 달랐으나 남북한 주민들, 해외동포를 포함한 민족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과 여건, 희망을 담아 내지 못한 것은 물론, 오히려 그것을 은폐시키고, 권력이 민족을 이용해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지배적인 정치적 담론으로 행세해 왔습니다. 민족주의는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약점도 있습니다. 물론 민족 자주, 민족 대단결의 차원에서 통일 논의는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빚어진 정치적 문제도 분명 있었습니다. 민족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민족주의의 시대착오적인 면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냉전적 사고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한반도에는 냉전적 사고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념 중심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남북 간 체제 대결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수단이 비평화적이었다는 것이죠. 전쟁도 해 봤고, 전쟁 준비도 하고 있고, 전쟁을 안 하면서도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기술들을 많이 개발해 왔습니다. 경제적인 압박과 제재 같은 것들도 그런 예입니다. 통일 운동에서 수단의 다양성 역시 많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대화하거나 만나거나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주거나 하는 유연성과 넉넉함이 없죠.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십위권의 경제대국인데, 북한과 통일 문제만 이야기하면 넉넉함이 사라지는 기묘한 현상에 빠져요. 비평화성에 대해서 좀 더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과 중심적인 시각입니다. 시민사회에서 통일은 ‘과정’이라는 담론이나 의식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국민 여론이나 남북의 권력도 그렇고, 한반도 문제를 보는 주변 국가들의 시각도 북한 붕괴나 통일 한국의 권력 구조 같은 결과론적인 논의가 지배해 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만들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누가 참여하고, 누구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균형을 맞춰 나갈 것인가 하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담론 형성은 어려운 것이죠.

 

김화순

김화순

“북한의 모든 체제를 싹 쓸어내고 먹고 살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근본 인식에 깔리게 된 거죠. 거기에 정작 사람은 없습니다.”

시민이 주체로 나서서.
통일은 경제·정치 이전에 사람의 통일

김화순 : 저는 2003년부터 탈북자 연구를 해 왔으며 통일논의가 제 전공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탈북자의 정착을 통한 지난 15년간의 경험이 통일의 구체적인 예비 실험이며 사람의 통합의 선행 사례이기에 그 속에서 얻은 작은 지혜나 성과가 통일논의에 시사점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사람의 통일로서 접근해야 할 탈북자 정착문제 해결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물질적·경제적으로만 먹고 살게 해 주면 된다고 인식하는 오류입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는 주는 자로서의 오만한 모습을 가진 남한 사람들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체계는 한마디로 승자와 패자입니다. 이 구도 속에서 탈북자들은 열등감에 찌들어 있고, 주체가 되지 못하고 계속 달라고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승자와 패자라는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구도를 어떻게 깨고 전환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차별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도를 잘 만들어서 정착을 성공시킨다는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주로 무언가를 주는 제도를 많이 만들었던 것이죠. 그 과정에서 시민은 객이 되었습니다. 정부 주도의 정책은 호화스럽고, 찬란하고, 다양하고, 많은 연구도 하지만 정작 시민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정보가 철저히 비대칭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남북한 시민이 주체가 되어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지는 통일이 아니라 통일은 물질의 문제가 되고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라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북한의 모든 체제를 싹 쓸어내고 먹고 살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근본 인식에 깔리게 된 거죠. 거기에 정작 사람은 없습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두 체제의 실험장이었던 한반도 100년사
근대 이후를 전망하며 통일 운동 나서야

김용우 : 한반도 120년 역사 속에서, 근대 체제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 전체속에서 문제를 봐야 합니다. 냉정하게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역사에서 한반도 위의 사람들은 세계사적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의 근대 체제를 실험한 것입니다. 바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죠. 이 실험에 대해서 냉정한 성찰적 평가를 해야 합니다.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은 왜 문제가 있는가? 양자를 포함한 근대문명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을 냉정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근대적 국가 개념 안에서의 하나의 단일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국가 통일론적인 시선은 이미 폐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말입니다. 또 근대국가와 근대 경제체제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사실 성찰적으로 보면 양쪽 체제에서 근대 인민을 근대 경제의 주체로 세워주지 않았어요. 남한에서는 소수 자본에게 근대 경제를 완전히 맡겨 버린 꼴이었고, 북한에서는 국가가 완전히 경제의 주체가 되었죠. 양쪽에서 민(民)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객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반도에서 민이 새로운 경제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가가 새로운 미래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통일 시대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민의 구성과 관계 있습니다. 새로운 민을 세우려고 하는 아무런 비전과 희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한의 시민 통일론이 있습니다만 남한의 시민은 매우 빈약한 시민으로 통일 주체로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욕망의 시민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남북 간의 불균형·비대칭의 상태에서 소통이 이루어질 경우, 약간의 틈이 열리게 되면 억압적 개인, 착취하는 개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 논의는 근대국가, 근대 경제체제, 근대 철학과 가치 체계를 넘어야 합니다. 북한사회를 끌고 온 철학이나 남한의 철학 모두 근대철학의 이원구조라는 점에서 거의 비슷합니다. 차이라면 북한 주체철학의 단일성(주체사상 하나 밖에 없는 이원론), 남한의 다양성(철학은 다양하지만 지배적인 근대 주체철학 )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유, 평등, 우애(fraternity)라고 하는 근대 가치 체계를 성찰을 통해서 넘어가야만 새로운 통일론과 새로운 주체, 새로운 사회와 비전이 성립될 것입니다. 자유는 개인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근대사회에서의 개인은 욕망하는 개인으로 길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율적인 개인, 자율적인 민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등 개념도 형평의 개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근대적인 가치 체계에 대한 전복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우애도, 처음에는 계급적 우애였습니다. 우애는 사회적 약자들의 우애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근대 체제에서 노동자 계급이 노농 연대로 발전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이 연대는 자본과 국가에 대한 적대적 연대로부터 출발했고 여전히 적대에 기반한 연대입니다. 이제 비적대적 연대, 평화적 연대로의 전환을 위한 가치 개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어느 쪽도 새로운 희망을 주는 체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근대문명 자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전망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연합의 가능성

통일은 일대일이 아니라 국가, 기업, 시민단체, 개인 등
다차원적 주체가 진행하는 것

김용휘 : 이승환 선생님은 1국가 체제를 전제로 하는 통일 논의가 문제라고 지적해 주셨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기하신 남북연합을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통일론, 이와 함께 시민 참여형 통일, 남북 정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복합 정치 공동체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이승환 : 남북연합을 기능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복합적인 정치 공동체로 바라보고, 그런 측면에서 남북연합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지점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우선 시민의 문제, 북한은 아직 시민사회가 발전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현재로서는 남한에서 시민을 강조하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와 달리 남북문제에 관여하는 요소들이 확장되고 다양해졌습니다.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 민간단체, 그리고 단체가 아닌 개인과 집단이 북한과 관계 맺고 있습니다. 매우 복합적·다층적 남북 관계가 출현하고 성장·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획일적인 문제로 묶어서 정치체제화하는 시도야말로 전형적인 위에서 내리 누르는 형태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정착·구성적인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남북 관계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들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기존 통일 방안의 이름을 굳이 빌리자면 남북연합이라는 명칭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과 함께 문명사적 전환이나 남북 관계를 정신적인 문제로 보는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좀더 진전되고 보안되어야 할 점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이 서로에게 치명적인 약점이고 위협인 현 시점에 남북이 어떻게 해야 서로 공존하면서 평화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 나가지 않고는 남북 관계에 넘어 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공존 원칙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여러 차례 얘기해 왔지만,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 남과 북 정권의 이해 관계 등이 영향을 미쳐 왔고, 김대중 정부 때에도 남북 관계에 수많은 곡절과 문제가 있어 왔거든요. 전반적인 남북 간의 관계 맺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개입되지 않으면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풀어나가는 데 문제점이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연합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 권력을 연성화시키지 않고 분단 체제를 완화하고 평화와 문명사적 전환을 이루어 나가는 길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의 연성화는 여러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안보 문제나 안보로 상징되는 것들이 국가 주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시민 주도는커녕 시민 참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 참여, 시민 감시, 시민 행동 등에 의해 국가권력이 점점 연성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지금 제의하신 여러 가지 방안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왜, 그리고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용휘 : 시민사회가 통일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승환 : 시민 사회가 통일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체라는 측면에서 말하면 매우 미미합니다. 하지만 좀더 포괄적인 측면에서 얘기하면, 엄청나게 변화했습니다. 남북 관계를 국가만이 주도하던 상황에서, 지금도 외형적으로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구체적 내용에서 보면 사회·정치·경제·문화 여러 분야에 걸쳐서 관계와 관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민간단체의 영향력만 가지고 남북 관계의 비중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휘 : 현재 통일 운동에서 민간 단체가 몇 개 정도 될까요?
이승환 : 파악된 자료가 없진 않지만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굉장히 여러 분야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파악이 어렵습니다.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진 단체부터, 남북 관계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평화운동하는 단체, 평화운동에서도 평화 문화적인 것에서부터 공정무역이나 여행 같은 일상의 평화를 다루는 단체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단체들이 이런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민협, 민화협이나 이와 비슷한 단체가 많으면 300~400개, 적으면 100여 개 정도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고요, 일부 중복되어 있기 때문에 숫자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김용휘 : 생명운동의 관점에서의 통일 논의가 추상적이고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시죠.

 

유정길

유정길

“통일 문제를 동아시아적 관점, 전 지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동아시아·전 지구적 관점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구상과 아이디어가 출발했으면 합니다.”

현재의 남북 교착 상태는 바람직한 통일 공부·준비·실천을 위한 절호의 기회
통일의 지평을 동아시아·전 지구적으로 넓혀 보면 생명과 영성적 관점은 필수

유정길 : 남북 관계가 현재와 같이 교착 상태에 있는 것이 오히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가고 길게 갈 수 있는 호흡을 만드는 기회입니다. 남북 관계에서 민의 참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분단 70년 동안 민의 구체적인 참여가 있었던 것은 북한의 대량 아사 이후 최근 10~15년이 정점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량 아사 이후 북한 시각도 바뀌었고, 개인의 참가와 방문이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바뀐 것인 최근 15년입니다. 그 전은 구호로서의 통일이었다면 1990년 이후 민이 참여했던 역사는 굉장한 경험입니다. 이것이 에너지로 전환될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통일 논의는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통일을 주장하는 것이 북한을 불편하게 만들고, 북한의 흡수통일을 국론으로 정함에 있어서 평화를 강조했던 측면들이 상대적으로 통일을 이슈화시키는 데 실패한 요인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활발했던 민의 참여 경험을 어떻게 하면 승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서 장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장이라는 것은 기나 풍 같은 것들이죠. 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문제를 정치권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인 자발성에 기대어 논의 구조와 양상을 다양화하는 것입니다.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아이디어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유래 없던 15년간의 시민 참여 경험을 중요한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탈북자 문제입니다. 탈북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남북문제를 훈련하기 위한 아주 좋은 과제입니다. 탈북자들을 원만하게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통일된 이후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남북문제는 아직 교착 상태이기 때문에 탈북자와의 관계를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것은 통일을 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저는 통일 문제를 아예 동아시아적 관점, 전 지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전 지구적 관점이라는 것은 물질과 정신성, 영성이 통합되는 방향입니다.통일 문제에 대한 구상과 아이디어가 그런 측면에서 출발했으면 합니다.
김용휘 : 아까 말씀하신 50년 이후의 이상적 사회를 상정해 놓고 그 50년을 어떻게 준비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유정길 : 남북 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마음의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정신적인 문명적 전환을 통일 문제에 어떻게 장착시킬 것인가, 물질적 변화나 영성적 각성을 통일이라고 하는 정치적 과제에 어떻게 장착시킬 것인가? 저는 이런 통일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김용휘 :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통일은 남북이 원한다고만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적극적 동의는 아니라도 적어도 반대를 잘 극복하면서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우리 정부는 지나치게 미국 의존적이 되면서 남북 당사자 간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봐도, 어느 나라도 강력한 독일을 바라지 않았지만 지혜로운 정책을 통해서 결국 주변국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수용해서 우리의 통일 문제에 적용할 것인지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보혁 선생님의 ‘평화통일에서 통일평화로’라는 글을 참신하게 읽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서보혁

서보혁

“기존의 평화통일론을 뒤집어 통일평화 담론을 제기해 봅니다,
전통적인 북한 통일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국한되지 않지만 한반도 문제를 평화주의적 시각에서 재구성해 보자는 문제의식입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세력 균형과 이동, 흐름을 살펴야 통일 여지 찾아낼 수 있어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고 지속 가능한 한반도 공동체 위한 틀이 통일평화 개념

서보혁 :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서 전 세계 국방비 추세를 분석한 것을 보면 1990년 동아시아의 군사비가 1,110억 달러였는데 2010년대에는 3,290억 달러,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유럽은 6,210억 달러에서 지금은 3,910억 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 2014년에 이르러서 동아시아와 유럽의 군사비 지출이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나온 것이 두 개의 전쟁 능력, 즉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둘 다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미국도 이런 트렌드에 따라서 군사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그것에 비해서 각 지역의 외환 보유고를 보면 2000년대 아시아는 2,430억 달러였던 것이 2015년 1월부터 4월까지의 보고서를 보면 3조 3천억 달러에 이릅니다. 12배 정도가 성장한 것이죠. 유럽은 2000년 760억 달러이던 것이 지금은 4,800억 달러입니다. 증가세나 전체 보유량에서 아시아가 유럽을 넘어섰습니다. 경제적인 비중은 아시아가 유럽을 넘어섰고, 전략적으로도 아시아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히 중국이고요.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 문제에서 의존해야 할 대상이 비대칭적이라고 말한 것이죠. 아시아 지역이 무역이나 군사비 면에서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했다는 것입니다. 국제정치학에서 상호의존이라는 개념을 두 가지 모순되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그중 하나가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서로 교류나 접촉이 넓어지면 평화가 온다는 식의 자유주의 시각이 있습니다. 그와 달리 현실주의의 시각은 접촉이나 교류가 증대해도 그 사이에서 상호 이해가 불균등하게, 심지어는 한 쪽이 다른 쪽에 종속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냉전 해체 이후 20여 년 동안 동아시아는 상호의존이 급속하게 높아졌습니다. 이것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과 비전이 달라집니다. 냉전시대에는 전략적 비중이 미국, 소련 불문하고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유럽 내 국가들이 냉전의 경계를 넘어서 공동으로 안보를 추구해 나갔는데 그것이 이른바 헬싱키 프로세스(Helsinki Process)입니다. 이것을 아시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의견이 분분합니다.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조건 하에서는 서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추구해 나갑니다. 세력균형의 조건 하에서 이해 당사자 간에 이익균형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죠. 거기에 경제가 있고, 인도주의가 있고, 환경이 있고, 인권 같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1975년 8월 채택된 헬싱키 협정에 반영되었습니다. 협정의 바스켓 I에서는 참여국들 간 관계를 규율하는 10대 원칙(Decalogue)이 제시되었는데 거기에는 전통적인 국제 관계 원칙인 국가주권 평등, 내정 불간섭,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같은 원칙과 함께, 인도주의와 인권 보호와 같이 주권의 경계를 넘는 보편 가치를 추구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냉전은 국가주권 원리에 기초했지만 그런 틀 속에서도 국가주권을 넘는 규범이 확산돼 나갔고, 그것을 냉전 붕괴의 원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틀을 아시아에 적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습니다. 첫 번째, 현재 세력 균형이 깨졌어요. 미국의 위상이 냉전시대 미소 체제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상태에서 지역 내 이해 당사국들 간에 지역 안보협력체제가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죠. 이런 시대사적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떤 비전과 원칙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국은 민주시민교육, 평화교육 같은 것에 녹아들어 가야 하는 것이죠. 여기서 기존의 평화통일론을 뒤집어 통일평화 담론을 제기해보는데요, 전통적인 북한 통일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국한되지 않지만 한반도 문제를 평화주의적 시각에서 재구성해 보자는 문제의식입니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이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전제조건입니다. 어떤 진보 진영에서는 그럴 바에야 평화공존을 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가 오려면 아무래도 통일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통일 자체가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수단적 의미이고 한반도 평화를 과정론적으로 보고 통일을 통과한 평화공동체를 상상할 때 ‘통일평화’라는 담론이 적절해 보입니다. 민족 문제, 한반도 문제, 그리고 한반도의 국제적인 성격을 평화주의적으로 이해하고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통일이나 평화가 동아시아의 지역 안보 협력과도 연계성을 띨 수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 시민사회 같은 비정부의 역할, 또 국가 차원에서 하는 일과 지역 차원에서 하는 일 등이 정치·경제·문화 부문에서 정교하게 상호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야 유럽처럼 평화공존과 지역 통합을 내다볼 수 있을 겁니다. 애초에 서독은 통일을 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추진하지도 않았어요. 원죄 때문에. 그런데 지역 통합을 하려는 것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그것이 독일 통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잖아요? 우리가 당장 서독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서독 관계와 지난날 남북 관계를 성찰할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 통일과 지역통합에 참여할 조건과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서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제재와 국제공조에 치중해오면서 남북 관계는 완전히 동면상태가 되어 버린 거예요. 남북 관계는 북한을 다루는 수단 정도으로 전락되었을 뿐, 통일과 역내 평화를 향한 우리의 영향을 늘리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탈북민의 실상을 통일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 내부에서 진행 중
행복한 통일을 위한 많은 준비 필요

김화순 : 저는 탈북민 연구를 해 왔는데, 지난 십수 년간의 탈북민 상대의 연구 결과들이 오늘 우리의 논의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국가 권력의 독점적 폐해가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이 탈북민 문제입니다. 시민사회 자체적으로 통일 운동을 할 수 있는 힘을 빼 가는 현상이 보이는 부문이 바로 이 부문입니다. 탈북민 논의에서는 남북한 주민의 통합이라는 관점이 빠져 있습니다. 문제를 시장경제 논리로만 풀다 보니 주민 통합이라는 관점은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이루어지는 남북한 주민의 접촉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1만 4천 명 정도의 탈북주민이 매일같이 직장에 출근해서 수십만 명의 남한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현재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이동통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남북한 간에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데 이같은 상호작용이 너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탈북주민들은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라는 것을 북한에 끊임없이 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은 남한의 소식을 듣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이 시장경제에 대한 일방적인 선망이나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남한에서 일하는 가족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시장경제 하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드는 거구나 알게 되는 거지요. 이같은 고민을 미리 한다는 것은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남북한이 함께 사는 미래가 무엇인가에 대해 상상하고 미리 그려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적 변화와 혁명, 그것이 오늘 우리 좌담회가 거시적인 주제로 말하는 개벽과 같은데, 바로 그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노동 상황을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분열이 심하고 노동의 연대가 깨졌습니다. 남한 사람들끼리도 단지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임금은 물론 심한 인간적인 차별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현재 남북한의 이질성 수준을 봤을 때는 통일전후 남북한 주민 간의 차별이 빚어내는 갈등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접촉가설’에서는 접촉하면 할수록 만나는 사람간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기도 했지만 그 반대로 나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종합하자면 남북한 사람들이 많이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행복한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경제와 민의 역할

김용휘 : 앞서 말씀해 주신 여러 미시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경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 문제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도저히 해결이 안 되지만 좀 더 큰 단위에서 고민할 때 미시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김용우 선생님이 말씀을 해 주시죠.

 

남북한 간 급격한 체제 통일은 비극
민이 진정한 경제의 주체로 설 때 남북 양체제의 원만한 통일 기대 가능

김용우 : 남북의 급격한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어떠한 경우든 매우 위험합니다. 남과 북은 상당한 국방비를 써 가면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국가권력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만 해도 유엔에 정식 가입한 이후에 벌써 163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어요. 또한 국방력이라는 것 자체가 만만하지 않거든요. 또 하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체제가 그렇습니다. 통일을 쉽게 용인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1국가 통일이 급격하게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제일 먼저 취해야 할 방안은 남북 2국가 평화 체제가 1단계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평화 체제의 2국가 체제를 영구적으로 고착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평화 체제가 먼저 와야 그다음에 통일의 주체 형성이라는 측면, 통일 주체의 경제라는 측면, 통일 사회학의 측면, 그리하여 새로운 나라가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느 한쪽 붕괴론에 근거한 통일론이 득세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 경우는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한반도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로 가기 위한 1단계의 2국가 평화 체제라고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그랬을 때 과연 통일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북한의 국유화 경제 외에도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유경제가 약간 있습니다. 사유경제를 1956년 이후 계속 국유화 경제로 넘겨 가면서도 80~85% 정도가 국유 산업이고 약 10% 내외가 협동농장 소유 경제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남북이 평화 체제를 하려고 할 때 합의해야 하는 것은 정상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시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경제 주체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급격하게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에요. 북한에 특구도 설정이 되어 있지만 1994년경 외국인 투자와 시장경제 주체를 위해 합작경영법과 중국의 초기 개혁 개방 때와 비슷한 토지임대법도 만들었습니다. 사유 경제, 그러니까, 시장경제의 일부분을 도입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중국과 같이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시장으로의 연착륙이죠. 통일의 첫출발은 남북 양대 국가의 연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 측면을 받아칠 수 있는 민의 영역은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가 경제적 측면에서 공동체 경제라고 봅니다. 저는 민 자율 경제라고 이름 붙이는데, 시민 소유 기업이라든지 협동조합이라든지, 사회적 기업 같은 형태의 민 소유 경제가 얼마만큼의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가, 또 한국 사회의 경우 얼마만큼 훈련되어서 통일 내지 평화 체제를 맞을 수 있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죠.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도 통일 이전에 협동조합이나 민간 사회적 경제 개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7%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는 0.01%도 안 됩니다. 원주를 예로 들게요. 원주의 협동조합 소유 경제는 원주 지역 GDP의 약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합원은 원주 인구의 10%가 넘어요. 비중에 비해서 시민들이 참여해서 얻는 트레이닝이나 훈련 효과는 엄청나게 큰 거예요. 남북 평화 체제가 구축되었을 때 자본과 국가가 노리는 측면―북한을 개발하고 북한을 근대적 경제체제로 만들려고 하는 측면―과 대응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하나의 체제는 공동체 경제를 남북에서 활성화시키면서 민을 확실하게 경제 주체로 세우는 거예요. 민을 경제 주인공으로 세우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개벽 체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민이 새로운 시대의 경제와 자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 시대는 여러 가지 개념이 있겠죠. 지속 가능한 경제, 환경을 생각하는 경제 등등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민(民) 자립경제 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일정하게 국유 경제와 사유 시장경제와 공동체 경제가 적정한 비율로 배분된 경제체제로 전환되어 가는 과도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지속 가능한 경제체제로서의 개념도 들어 있어야 합니다. 이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남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민사회에서 훨씬 더 풍부한 지역 단위 중심의 공동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노동 문제에서도 새로운 개념을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적 노동, 자본에 고용된 노동이 아니라 셀프 임플로이드(self-employed)라고 하는 자기 고용 노동이거든요. 자기 가치에 맞춰서 가치 충족적 노동 구조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노동과 경제 구조를 가지고 북한의 인민들, 북한의 협동농장이나 협동기업들,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 남한의 협동 시민 경제가 직접 개입해 들어가 직접 만나 줘야 합니다. 예전에 한살림에 가서 만약 남북 교류가 활성화된다면 문만 조금 열려도 한살림에서 해주 지역의 협동농장하고 농산물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유기농 농법과 자재들을 제공하고 생산되는 농산물 전량을 수매하는 것이죠. 북의 경제 주체들이 협동농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경제적 부를 축적해 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북한에는 통일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국가에 의해 식민화된 인민만 있는 것이잖아요. 사람에 의한 통일이고 사람의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 물적 토대가 공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2국가 평화 체제 이후에 모색해야 할 지점은 국유 경제가 30%, 사유 경제가 20~30%, 공동체 경제가 30~40%로 배분된 경제체제를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한반도 평화 경제체제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시민이 아니라 공민(公民)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은 자본주의 안에서 개인화된 소비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적 주체성이라는 것이 상당히 약화되어 있고 자본과 국가의 물적 공세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경제의 주체는 자신이 공동체 경제에 참여하기 때문에 자립성이나 자발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배려하는 것도 훨씬 높습니다. 최근 들어 통계적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시민사회 활동보다 자발적 협동 활동의 비중이나 참여도가 훨씬 높습니다.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경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이미 공민으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공민은 영적 각성을 전제로 합니다. 법 같은 외재율이 아니라 영적 각성과 내면의 성찰 같은 내재율에 의해서 돌아가는 삶의 주체로서의, 경제 주체로서의 공민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민이 주체가 되는 경제 체제 논의 위해서는 상당한 과도기 필요

김화순 : 국유 경제와 사유 경제, 공동체 경제가 3:3:3이 되면 이게 현실적으로 잘 맞겠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북한 인텔리 중에서도 북한의 협동조합이 유망하다고 생각하고 구상하여 활동하는 분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실제로 탈북자가 직접 공동체 경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했던 사례들을 보면 결론적으로 다 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도 원래 공동체 경제의 전형이라고 볼 수는 없는데 북한 사람들 중에서 지원받아서 20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도해 온 흐름이 있었어요. 지금은 거의 문을 닫은 상황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끌고 가는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이죠. 체제 이완기에 나타나는 모럴 헤저드 문제가 북한에서 상상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이제까지의 사례들을 보면 북한 사회에서 내재화된 윤리를 가지고 한국으로 탈북해 왔을 때, 사회적 기업을 눈먼 돈을 쉽게 받는 방편으로 알지 주체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시도할 수 있는 인식이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 주민이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의 체제 이질성, 문화 이질성인데, 한국의 노동 현장과 북한의 노동 조직은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 권위주의성, 1인 중심의 조직 형태 같은 것들이 상당히 비슷하죠. 형태로서의 3:3:3은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문제는 어떤 식으로 시장이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죠.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북한 사회에서 윤리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차별의 문제, 인간적 모욕과 멸시와 천대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차별 대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같은 구조에서는 통일되었을 때 그쪽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남쪽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라는 것이죠.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자정 능력을 갖추고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통일이 될 것입니다. 현재 북한은 전체적으로 노동의 보수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기에 부패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김용휘 : 그런 면에서 종교의 역할, 영성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고, 북한의 경우는 협동조합이 있다고 해도 거의 국가에 편입된 것으로 민 자율성을 가진 공동체의 영역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자본 주도, 국가 주도에서 민 자율 공동체가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야 할 길이라고 보고요,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과제와 한계들을 간과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용우 선생님에게 새로운 주체 개념, 공민의 개념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시민을 대체하는 공민의 개념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근대적 안보국가의 해체/연성화와 공민의 형성은 상호 의존적 과제

김용우 : 저는 주로 두 측면에서 시민과 관련된 문제를 고민하는데, 하나는 근대적 안보 국가를 어떻게 해체시키거나 연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와 행동 없이는 안보 국가의 연성화는 불가능합니다. 행동하는 시민이 어떻게 주체로서 성장하고 등장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시민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소위 정당이라든가, 단체처럼 기획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웠지만, 정보가 확산되고 정보화 시대가 진전되면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됐고, 단체나 정당 같은 기구를 통하지 않아도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표출해 내는 생태계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태계 기반이란 것은 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 같은 일종의 지방자치제와 이른바 풀뿌리 단체들이 뒤엉켜 있는 공동체 생태계가 될 텐데, 저는 협동 경제 내지는 민 자율 경제 같은 부분들이 현재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결사 없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 단위나 풀뿌리 단위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공동체를 지향하며 나아가는 움직임이 있지만, 거기에는 아까 지적해 주신 모럴 헤저드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끌고 나갈 훨씬 더 준비되고 자각된 활동가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돈 버느라 바쁘고 전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참여하는 사람들이 결사만 가지고 안 되고 서로 공동체적 의존과 의지를 가지고 성숙해 가야 합니다. 이런 준비와 사람들, 그리고 협동적인 경제를 만들어 가는 노력들이 전제되어야만 민 자율 경제가 발전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시민에서 공민으로의 전환과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민 자율 경제는 불가피하게 결합되어 같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민 경제 같은 관점을 넘어서서 실제로 지역에서의 다양성을 갖춘 경제 생태계 속에 공동체적 지속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그것은 기존의 진보- 보수 구분에 따른 정치와 다른 시민들의 공동체적 열망과 지속 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지역민들의 통합과 열망을 공동체적 자치로 표출해 내는 노력들이 결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시민사회와 공동체 경제 생태계가 형성되어서 그 속에서 공민의 개념이 살아나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을 더 고민해야 합니다.
김용휘 : 유정길 선생님은 3분 역할론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시는 거잖아요? 더 좋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또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또 다른 양식이나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 유정길 선생님이 보완해서 말씀해 주세요.

 

지속 가능한 사회, 생태적 가치, 순환적 관계, 성숙 사회, 협력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개벽적 관점의 통일

유정길 : 지속 가능한 생태적 순환 협력 사회라는 코드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전환을 위한 것이거든요. 지금 사회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지금 사회는 순환적 사회가 아니라 직선적 사회입니다. 굳이 다윈의 진화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끊임 없는 대립과 경쟁은 현대 사회의 기본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협력과 협동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 과정이 지속 불가능한 사회를 지속 가능한 사회로 바꾸는 것, 그리고 경제적 가치가 아닌 생태적 가치로 전환되어 직선적 관계가 아니라 순환적 관계, 성장 사회가 아니라 성숙 사회, 경쟁 사회가 아니라 협력 사회가 되는 것이 통일 문제에서 매우 중요하고 이것이 개벽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그때가 아니라 지금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모든 새로운 사회의 주체는 한때 변방이었던 것이죠. 통일 사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통일 사회의 모델을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의 씨앗을 심고 증식시키고 물을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국가에서 주도하는 통일 모델의 경우 너무 과도하게 국민 국가 중심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는 분권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자치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나름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사회, 에너지와 물질, 사람의 순환이 일어나는 사회 말입니다. 통일을 통해 강성대국이 된다는 이미지는 근대적인 비전입니다. 성장 사회가 아니라 성숙 사회가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고 있습니다. 통일 대박론이 대표적인데 소위 성장 사회가 되는 것이죠. 대박이란 말 자체가 순환 사회가 아니라 직선적 사회 관념의 총화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역마다 풀뿌리 자치에 기반하는 다양한 국가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생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래 지향의 전환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지금의 통일 운동은 통합된 그 어느 때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시점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통일의 대안과 비전을 만드는 무수히 많은 씨앗을 뿌리고 물 주는 행위 자체가 무수히 많은 통일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휘 : 자본주의가 더 잘 작동하기 위해 양극화 같은 체제의 모순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세금 혁명이라든지 금융정책을 서민 중심으로 바꾸는 등의 복지 정책이 있습니다. 또 근본적인 차원에서 자본과 국가가 8:2 정도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민 자율적인 경제, 공동체 영역을 20~30%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를 완화시키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영역인데, 저는 전혀 다른 부분이 아니라 연계고리 내지는 접촉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3분 역할론이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점진적으로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자치, 자립적 경제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영역이 유독 좁은데, 그 원인에 대해 김용우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세요.

 

‘자치’와 ‘공동체 경제’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개벽시키는 사고의 확장과 전환 숙에서 통일을 바라봐야

김용우 : 이 문제를 사유하는 데 있어서 이탈리아, 밀라노, 토론토 등 상당히 훌륭한 사례들은 많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민 자율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토론토는 60%, 밀라노는 30%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곳은 지역주민들의 삶과 자치는 국가와 자본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우리와는 노동 구조가 달라요. 퀘벡, 몬드라곤 등도 그렇고요. 사회적 협동조합의 고용이 10만 명이 넘으니까 이미 도시 전체가 달라지는 것이잖아요? 그런 사례들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해서 발표된 많은 논문들이 있으니까 여기서 더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자치입니다. 근대국가가 있기 때문에 정치가 있는 것인데 근대국가의 연성화 전략에 대한 저항을 받아칠 수 있는 것이 자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치가 정치를 견제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때 자치는 공동체적 자치입니다. 셀프거버넌스(self-governance)라는 것이죠. 공동체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자연환경, 시간에 대해서 자율적으로 자치하는 것을 공동체적 자치, 셀프거버넌스라고 하는 것이죠. 공동체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역의 가장 적절한 단위를 2~3천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자치 단위들이 지역을 다양하게 구성했을 때 그 자치는 정치를 대체할 수도 있고 견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국가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해체될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먼저 세계 정부적 해체로, 지역 통합정부를 거쳐서 세계 정부로 상승적 해체가 하나 있을 것이고, 하강적 해체로는 공동체적 자치의 네트워킹, 즉 나라 개념이죠. 나라는 원래 수직적 국가가 아니거든요. 나라는 수평적 네트워크입니다. 우리가 남북 국가의 시대를 맞이한다는 것은 그런 공동체적 자치들의 네트워킹, 다양하게 쪼개진 공동체의 자치로 연결되는 개념과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역 정당, 공동체 정당을 가지고, 중앙 정치를 견제하는 형태로 가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치에 뛰어들어서 또다른 시민 권력을 만들어내는 식의 권력을 재창출하고 재생산해 내고 지배를 만들어 내는 구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제하고 연성화시키는 부분을 자치로 받아내고 그러면서 하나의 새로운 사회로 나가는 틀로서의 구상을 해야 할 때입니다. 또 이 부분에서 동아시아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시아라는 틀의 개념은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차이나를 기반으로 하는 아세안(ASEAN) 텐(10) 국가들의 경제적 접촉 면이 넓어져 가는데, 이 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인구가 26억입니다. 남북이 만약 자유 교역, 혹은 평화적 2국가 체제가 되면, 서울에서 자동차를 몰고 방콕까지 갈 수 있거든요. 아세안 지역 고속철도 계획, 중국이 주도하는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계획 같은 것이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 자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이 계획하는 것은 아시아 전체를 거미줄망처럼 엮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한반도는 평화공동체의 발신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반도 자체에 대한 경제 구상, 캄보디아, 리비아, 라오스 미얀마 등의 국가,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국가는 대 중국에 견주어서 자신들의 자립 경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첫 번째로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 신용협동조합 같은 것을 배우려고 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신용협동조합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배우고자 하는 것이 일반 협동조합, 기업이에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 새로운 탈근대적인 경제 공동체 문명을 펼쳐 가는 전략이 없으면 한반도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단순히 국가주의적 사고에서 한반도의 외교적인 수사로 살아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사람 전체가 공동체 경제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그것이 개벽이고 이것이 동아시아 전체를 개벽시키는 프로세스로 가는 하나의 큰 문명 전환의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은 형식이고 그 내은 인류 보편의 가치.
그 차원에서 사고하고 함께 비전을 찾아가는 것이 통일에 도움될 것

김용휘 : 통일 한국의 구상이 동아시아, 더 나아가 유라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미국 중심의 신 냉전체제의 세계 질서를 극복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 대해 서보혁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서보혁 : 전쟁 경제를 어떻게 축소하고 민간 경제로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미국의 군사비는 2000년에 3,010억 달러, 2014년 6,090억 달러였습니다. 중국은 2000년 220억 달러에서 2014년 2,160억 달러, 약 10배가 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중국 위협론이 나올 만하죠. 한국은 2000년에 140억 달러에서 2014년 366억 달러로 3배 정도 늘었습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전쟁 경제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지구화, 정보화가 군사화와 같이 간다고 말을 합니다.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이 북으로 소를 몰고 가기 전에 이미 북한 출신의 미국에서 농경제학 교수였던 재미동포의 부인이 북한에서 공동으로 농장을 해서 이익을 셋으로 나누어 운영해왔는데, 3분의 1은 본인, 3분의 1은 북한측, 나머지 3분의 1은 투자비로 저축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미국과 쿠바가 관계정상화를 했잖아요. 우리도 쿠바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붐이 일어날 거예요. 지구화 시대, 정보화 시대에 이런 것들도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체제 이행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에는 위계 구조가 심해지는데 군사 안보적으로도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소련이 해체될 때에도 핵무기의 처리 문제, 그리고 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 군인들의 민간인 전환, 그 가족들의 생계 같은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도 안보 문제 외에도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 집단들이 크고 견고해 쉽게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행기 경제, 즉 군수 경제에서 평화 경제로 넘어가는 것이 산업 전환인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과 민이 해야 할 일, 당사자가 해야 할 일, 지역이 해야 할 일이 골고루 자기 역할을 잘 잡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 인권 문제를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코리아 인권』이란 책도 썼습니다만, 말하자면 인권 같은 보편 가치를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평화주의적인 방식으로 꽃피우자는 것으로 통일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도식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통일은 형식이고 내용은 보편 가치들인 것이죠. 그런데 보편가치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권이 최우선이고, 평화는 나중이라는 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가치들 사이에서의 상호보완성을 인정하고 포괄적으로 접근하자는 겁니다. 여기에 인권 내에서 각 영역 사이의 상호의존성, 이 둘을 합쳐 저는 ‘이중적 상호의존성’이라고 합니다. 인권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아는 인권, 선호하는 인권만 가려보는 것은 선택주의라는 편향을 낳습니다. 오늘날 국제분쟁의 성격이 복잡해지면서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인권, 평화, 개발 등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평화 구축의 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추세를 한반도의 여건에 알맞게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뽐내고 남을 미워하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통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김용휘 : 참관하시는 분들 중에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선(참관) : 남과 북의 청년 세대 통일관의 현황이 부저적인데 그 대안이 궁금합니다.

통일은 국가나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통일 나에게 이익되는 통일로 느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알려 나가야
서보혁 : 제가 속해 있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과 갤럽에서 조사한 국민들의 통일의식 조사결과가 있는데요. 지난 몇 년 사이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19세에서 29세까지의 세대들은 통일의 필요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저는 이해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 가정에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또 다른 응답도 흥미로웠는데요,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국가나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인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응답자도 그랬지만, 특히 젊은 세대들은 대체로 나에게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국가나 사회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통일의 과정에서 젊은 세대가 어떻게 참여하고 주체로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를 기성세대들과 정치권에서 생각을 해 볼 문제입니다.
김화순 : 통일의 이익을 얻는 층과 부담해야 하는 층이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젊은 층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은 통일을 통해 경제적으로 나아진다는 차원에서 통일을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세대별로 초점을 맞춰 연구한 결과로는 정치 의식이 청년층의 정치의식이 중장년층보다 높지 않습니다.
유정길 : 기성세대보다 청년들이 통일 사회를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자기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통일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희망이고 비전이라는 생각이 중요하죠.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것을 감내해야 하는지 같이 해 나가면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 차원의 계몽이 필요합니다.
김용휘 : 사회주의적 담론을 꺼내는 것만으로 종북으로 몰리는 상황들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정신 세계가 좁아졌습니다.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철학적 측면에서도 협소화되었습니다. 제가 1920~1930년대 지식인들을 연구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상당한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만주와 상해를 생각하는 것이 저희가 부산을 생각하는 것처럼 지리적 감각이 넓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가 반쪽으로 분단되고 나니까 반쪽이 잘렸다는 사고, 대륙을 잃어버렸다는 사고가 배어나옵니다. 사고의 협소성과 자체 검열 같은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 바람직한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다양성을 포용하고 새로운 문명적 비전, 생태적 비전과 영성적 측면까지 고려해서,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적인 측면을 아울러서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개벽이라고 하는 것이고 “개벽이 통일이다”라는 화두를 던진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 새로운 문명적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양극화, 이분법, 물질주의 같은 것을 잘 극복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가의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전반적인 생각과 소감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중 차원의 동아시아 연대와 평화 의식 요구

김용우 : 분단이 길어지다 보면, 섬나라 의식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대륙적 사고가 부족해 지는 것이죠. 해외에 나가려면 비행기를 타야지 걸어가거나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은 상상을 못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집니다. 이런 구조들이 한반도 남단에서는 고착화되었습니다. 통일 시대가 앞당겨지면 좋겠는데 지금의 미중 관계, 대결 구도가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 속에서 한반도 민초들이 살아나갈 길이 섬나라(분단고착화)의식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통일은 중요합니다. 그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식은 동아시아 연대와 평화 의식입니다. 특히 동아시아 연대와 평화라는 것이 국가 차원이 아니라 민중과 민초 차원에서 경제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일 시대 준비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는 청년 차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는 노동자 교육만 시켜요. 청소년들에게 동아시아 사회 속에서 공동체기업이나 민 자율활동, 동아시아적 시선과 지역 공동체 활동, 소통과 네트워크 능력 교육 등 동아시아의 공민(共民)으로서 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별하지 않는 심성을 길러야

김화순 : 가장 큰 문제가 차별의 문제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문제가 차별의 연쇄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관계의 통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상대방, 외국인, 북한을 인정해 줄 수 있고 차별하지 않는 우리의 심성, 마음을 길러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보혁 : 일단, 우리 모두가 욕심을 줄여야 합니다. 오늘 얘기도 그런 점에서 욕심스런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남북 협력의 제도화, 동아시아 협력 이것이 같이 가야 합니다. 우리, 남한의 시민사회는 남북 대립, 지역 군비경쟁 상황에서 평화 스폰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화해 협력해 통일과 지역 평화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승환

이승환

“통일과 개벽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고, 이것이 되려면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는 속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이 자신의 힘을 기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기르고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 시대의 비전을 크게 열어 주어야

유정길 : 1960~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압축성장을 이루었고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대국민적인 비전, 어려움을 감내하게 하는 에너지, 통합적 비전이 있었던 거죠. 사회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희망과 비전이 권장되거나 부각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적인 비전과 꿈이 합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냥 통일이 아니라, 통일이 전세계적인 개벽의 비전이라고 하는 이념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환 : 개벽은 혁명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고, Being을 의미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Becoming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적공이 있어야 오는 것입니다. 개벽은 지속적인 노력, 공부와 적공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서 개벽이 온다는 점에서 개벽과 적공은 쌍생적입니다. 남북 관계로 보면, 남북 사이의 적공은 교류와 협력하는 것, 이런 기본적인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국가 권력과 싸우는 것도 적공의 한 방식입니다. 시민적인 토대와 생태계를 넓혀 나가서 근본적으로 안보 국가와 다른 비전을 만들어 내는 것도 적공입니다. 통일과 개벽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고, 이것이 되려면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면 달라지는 속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이 자신의 힘을 기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기르고 것이 필요합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Becoming의 관점에서 적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관점을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휘 : 네, 적공은 별도로 자리를 갖고 논의를 해 보면 좋겠네요. 이 좌담회는 기존 통일 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생명 평화적 관점에서 생명의 전일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행복과 평화를 정신적 측면, 영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문명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민이 자율성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합의는 어느 정도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중요한 말씀들이 집중되었는데요, 앞으로도 현안 주제를 가지고 만남과 논의의 장이 더욱 다양하게, 자주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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