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았습니다 – “즐겁운 마음으로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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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운 마음으로 싸웁니다”

– 에너지 넘치는 평화운동가 고은광순, 여성동학다큐소설에서 무기 없는 세상까지

 

이 글은 개벽신문 제 49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고은광순 씨는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그을리고 헬쑥해진 모습이었다. 미국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짐작된다.

10월 9일 한의사이며, 활발한 반전운동가, 여성운동가인 고은광순 씨를 만났다. 그녀는 최근 한 달 가량 미국에 머물며 반전 시위를 벌였고, 각 지역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13편의 소설 출간 프로젝트, 여성동학다큐소설의 실질적인 대표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평소 청산에 머무는 고은광순 씨와 인터뷰 일정을 맞추다 보니 한글날이 되고 말았다. 금토일로 이어지는 황금 연휴가 오히려 그녀에게는 인터뷰 같은 곁가지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짬인 듯했다.

근황을 물었다.

 

“청산편 쓰고 나서 공동작업한 경상도편 뒷손질,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미국에서 평화운동을 했고, 돌아와서는 광화문에서 하는 평화어머니 집회 계속 하는 중이에요. 평화어머니 집회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열립니다. 현재 10여 명이 본인이 할 수 있는 날을 정해서 한 달 정도 시간표를 미리 짜놓고 진행합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위에 참여하고요. 그것 말고도 긴급조치 관련 시위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고 있고, 또 둥글이 박성수라고 대통령 비판 전단지 뿌리고 조사하던 경찰서에 개사료 보낸 사람 구속됐잖아요? 박성수 씨 석방 운동 1인 시위도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고. 그러니까 한 달에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시위를 세 탕을 하고 가죠.”

 

그녀는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았고 약 36년만인 2013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3년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1년 만에 스스로 뒤집고 긴급조치에 의한 기소와 재판이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놓자 다시 전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환자 보는 틈틈이 오카리나 같은 취미 활동도 하고 있어요. 환자들이 많이 있지는 않은데, 적게 벌고 적게 쓰려는 생각으로 청산에 내려간 것이니까요. 때때로 강연하고 있고요. 요즘은 주로 여성단체 쪽에서 명상 치유 한의사라는 이름으로 명상 관련 강의를 하고 있어요.”

 

그녀는 과거 서울에 거주하며 활동하다가 몇 년 전 충남 옥천군 청산면에 내려가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명상 치유 한의사가 기존의 한의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제가 호주제 폐지 운동을 벌이게 된 것도 이것만 먹으면 아들 낳는다는 식의 아들을 바라는 심리를 이용해서 약장사를 하는 것 때문이거든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다른 분야의 의사가 다 팽개치고 성형외과 의사로 돌아서서 돈을 벌려고 하고, 머리가 돈 버는 데로만 작동하는 것이 지금의 세태입니다. 한의원도 사실 약을 팔아야 돈이 되고 그런 식으로 약을 팔려고 하는 노력들이 많이 있죠. 그런 게 싫었어요. 돈을 안 들이고 마음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서 병 뿐만 아니아 일상의 삶,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최근에는 그런 쪽의 강의를 많이 하고 있어요.”

 

 

당신의 돈은 피로부터 나온다(Your money comes from blood)

 

 

최근 평화어머니 자격으로 미국에서 반무기 시위를 벌였던 이야기를 꺼냈다. 평화어머니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의외로 최근 작업 중인 동학 소설이라고 했다. 소설을 쓰면서 얻은 결론은 무기가 사라져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라고.

“일본은 이미 1888년에 무기를 만들고, 20만분의 1 조선 반도 정밀 지도를 다 만들어 놨어요. 일본 국내의 문제를 침략으로 해소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일본의 개입은 어쩔 수 없는 시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일본이 들어와서 초기 두 달 사이에 3만에서 5만 명을 죽였다고 하잖아요? 그게 최초의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이라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시발이 되어서 1945년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2천만 명을 죽였다고 해요. 저는 그것이 무기 때문이라고 봐요. 무기에 대한 자신감과 탐욕이 결합하여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된 거죠. 그게 지금까지도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이나 전 세계의 무기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평화 시대가 올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무기 공장, 무기 자본가들 때문이에요.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무기 장사꾼들이 무기를 만들어 내고 정치가들을 통해서, 분쟁을 조작해서라도 일으켜 내고 무기 제고품을 소진하는 거죠. 그런 악순환의 계속되는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녀는 5월에 있었던 Women Cross DMZ 행사에서 오히려 남측의 승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북측의 승인은 쉽게 얻었지만 정작 남측에서 행사의 최종 승인은 한국 정부가 아닌 UN이었고, 행정 부서 간 책임과 이해 관계 같은 것들이 얽히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남쪽이야말로 주체도 없이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여자들이 아무 이해 관계 없이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사건이 터지고 알음알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6월 25일부터 돌아가며 평화어머니라는 이름을 걸고 미국 대사관 앞에서라도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미국 원정이 계획되어 여성동학다큐소설 작가이자 총무인 리산은숙과 함께 미국 원정 시위길에 올랐다.

 

 

고은광순1

백안관 앞 관광객들 사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은광순(왼쪽)과 동행한 동학언니들의 리산은숙.
여러 피켓들을 늘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바꿔가며 시위를 벌였다.

 

“미국에서 백악관, 펜타곤, 보잉사, 록히드마틴 등에서 시위를 했어요. 보잉사는 바로 펜타곤 인근에 있고, 록히드마틴은 워싱턴에 인접한 북쪽에 메릴랜드에 있어요. 펜타곤하고 보잉사는 자주 갔고, 록히드마틴은 몇 차례 갔었죠. 백악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틀 빼고 다 갔고요. 그 빠진 이틀은 뉴욕의 UN에 가서 했고요. 우리나라는 현재 휴전 상태인데, 미국이 정전, 평화협정에 사인을 안 하고 있어요. 김대중 정부 때도 추진했지만 미국이 움직이지 않아서 못했죠. ‘피스트리티 나우(Peace Treaty Now)’라는 구호와 ‘무기는 마약과 같다’였어요. 무기는 마약과 같아서 끝없이 소비해야 하고, 비싸고, 결국 미국 생명을 망가뜨린다는 것이죠. ‘비싼 전쟁 준비하지 말고, 싼 평화 협상하자(No expensive war, But yes cheap peace)’, ‘양쪽 군사 모두 어머니 자식(Every soldier is some mom’s child)’ 같은 구호도 내걸었고, 무기 회사 앞에 가서는 ‘당신의 돈은 피로부터 나온다(Your money comes from blood)’, ‘70년 분단이면 충분하다, 우방인 줄 알았더니 무기 장사꾼이다’ 같은 구호를 걸고 시위를 했죠.”

왜 백악관인지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곳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악관 앞 시위는 25인 이하면 신고 없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했다.

“통일이 되면 스스로 사회를 끌고 갈 민주주의적 역량이 있는지, 북한의 독재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있는지를 묻는 미국인들이 많이 있어요.”

 

 

고은광순2

고은광순 씨가 백악관 앞 시위 중 격려차 방문한 여성반전평화단체 코드 핑크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은광순 씨는 시위 중에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과 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런 오해는 비단 미국인만의 생각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는 한국 내에서 여전히 씨알이 먹힌다. 그녀는 남과 북의 문제는 자유로운 소통 속에서 해결될 문제라는 입장이다.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남과 북이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 질 거예요. 그런 것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예요. 그런데 분단 자체가 남쪽도 북쪽도 괴물처럼 만들어 왔잖아요. 분단이 사라지면 빨주노초파남보 중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그 시대의 주인공들이 결정할 문제예요. 하지만 거짓된 권력의 힘으로 분단을 고착시키고 있죠. 분단을 이용하고 분단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분단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어요. 평화어머니의 활동은 이런 것들을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깨어난 어머니들, 깨어난 모성으로 고착된 상태에서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싸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세계의 어머니들과 함께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겠죠.”

예전에도 TV 뉴스에서 백악관 앞 소규모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주장이 우리와 별 상관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저 이런 사람도 있다는 식의 단신으로 처리되었고, 별 관심을 갖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개인의 입장에선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것인데 과연 고은광순 씨의 활동은 성과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고은광순3

캠핑공원에서 피켓을 제작하고 있다. “70년 분단은 너무 길다. 미국은 평화협정에 당장 사인하라!”
필요한 피켓은 그때그때 제작했다고 한다.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은 다르지 않다

 

“여성운동의 대모라고 하는 이이효재 교수가 주관하는 여성 평화 천 명 선언이 10월 14일에 있어요. 10월 12일에는 YWCA 강당에서 여성들이 제안하는 평화통일 사회 협약이란 주제로 포럼을 해요. 그리고 미국에 다녀온 후로 여성단체들에게 옆구리를 많이 찌르고 있죠. 평화운동할 때야. 모든 것의 뿌리에 분단이 있다. 거기에 같이 매진하자고 옆구리를 찌르고 있죠. 내년 5월 Women Cross DMZ는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기획 중이라고 들었어요.”

물론 고은광순 씨가 미국 활동을 하며 기획 기사로 엮어 그녀가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오마이뉴스에 몇 회에 걸쳐 연재했던 일과, 몇몇 언론사에서 그녀의 활동을 기사로 게재했던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은광순 씨의 대답은 지금 보이는 것보다 미국 활동을 동력으로 계속 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들렸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길고 긴 평화운동 여정의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가장 큰 여성단체인 여성단체연합 회장에게 통일운동에 매진하라고 했더니 ‘요즘 젊은 실무자들의 관심은 여성노동문제, 여성혐오문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현안, 성매매방지법과 동성애, 이성애 같은 섹슈얼리티에 관심이 많고 통일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성단체의 이런 경향은 예상했던 바다. 여성단체만 그런 게 아니다. 대학가의 주요 현안도,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는 기사를 보아도 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거시적인 사안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인터뷰 도중 고은광순의 전화가 울렸다. 오가는 대화가 아마 앞서 언급했던 박성수 씨 석방운동 관련인 듯하다. 통화 중 고은광순 씨의 당부 한마디가 인상 깊게 박혔다. “증오로 싸우지 말고 자유를 위해 싸워라.” 증오와 분노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싸우라고. 통화를 마친 고은광순 씨가 통일 운동이 필요한 시기라는 말을 이어나갔다.

“통일에 대해서 민간 차원에서 법륜스님이 제일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고 계시는데 저는 상당히 잘 되고 있다고 봐요. 법륜스님 말씀 자체가 사통팔달하잖아요. 모든 소통에 능하시고. 그래서 통일의병 조직하고 하잖아요. 이제야말로 시민 각자가 통일운동에 대해 각성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자발적 움직임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여성들만 해도 몇 혀 전만 해도 호주제니 하는 제도를 바꾸는 일에 매달렸지만, 비민주적인 정권들이 들어서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들이 쉽게 뒤집어져 버리고, 우리의 민주주의 뿌리가 너무 약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잖아요. 그것 역시 분단이 원인인 것이죠. 분단 때문에 정치가들은 무기 사는 것에 휘둘려야 하고, 종북 논리 때문에 통일의 문제가 가로막히고, 진보적인 시도나 견해가 종북으로 몰리는 것이죠. 이제 다시 통일이다, 다시 평화다, 그게 싸게 먹히고(웃음). 국민들 사이에 통일 문제가 다시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한 사람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어느 하나가 변해서 모두가 변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녀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무기가 생산되고, 생산한 무기를 소진하기 위해 분쟁을 야기하고, 분쟁이 일어나니까 다시 무기가 만들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은 한 군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도 변해야 하지만 한국도 변해야 하고, 변하기 위해서는 평화운동이든, 노조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어떤 것도 다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어머니의 구성원들은 동학언니들(여성동학다큐소설 작가 모임), 이화민주동호회에서 몇 명, 긴급조치 규탄 활동가와 둥글이(박성수) 석방운동 활동가 몇 명 등 10여 명이다. 고은광순 씨의 표현으로는 ‘어머니들 중에서 조금 더 깨인 어머니들’이다. 평화어머니의 저변을 더 확대해 가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평화어머니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냥 계속하는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일주일에 두 번, 개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여하는 것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몇 차례 서 봤는데, 이제 출퇴근하는 대사관 직원을 알겠어요. 그 사람들 표정을 보면 굉장히 어두워요. 나는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생각해요. 미국 대사관에 근무한다면 최고의 자부심과 최고의 직장으로 생각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미국의 행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더구나 그 사람들이 평범한 어머니들이라는 사실은 큰 부담이 될 거예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과격 진보 세력이라면 그들은 방어하면서 저것들은 종북이야, 빨갱이야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평화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가서 ‘이제 무기 장사할 생각하지 마’, ‘이제 진짜 평화를 준비하자’는 피켓을 들고 있으면 그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할 거예요. 마음이 불편해져야 관행, 관성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미국 입장에서도 이게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되고 있으면 어머니들이란 존재가 얼마나 강인하고 질긴 존재들인지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한다면, 평화어머니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민단체가 되지 않을까요?”

 

 

여성 투사, 그리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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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 씨는 위키백과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자 중 하나로 기술하고 있다. 그녀가 벌이고 있는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은 그동안 해왔던 여성운동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활동인 것처럼 보였고, 여성주의자가 평화운동에 발벗고 나서는 이유가 궁금했다. 페미니즘과 통일운동의 상관관계에 대해 물었다.

 

“예전 가부장제 속의 여성은 현모양처를 강요받고, 이문열의 표현을 빌자면 ‘아들을 통해서 영원히 사는 신령스러운 암컷’이었어요. 가부장제가 여성의 인격, 자존감을 워낙 무너뜨려 왔으니까 페미니즘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던 거죠. 지금의 어머니들은 교육받았고 옛날처럼 육아에 평생을 매달리지 않고, 경제력도 조금 나아졌어요. 그게 페미니즘의 효과죠. 이제 여성들이 자기 나름대로 문제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남자들이 전쟁 일으켰지. 여자들이, 엄마들이 평화 만들어 나갈 거야. 그래서 페미니스트 현경 씨가 조직해서 노벨상 받은 여성들하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Women Cross DMZ 퍼포먼스를 벌인 거죠.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요. 세계 유일하게 수십 년간 분단된 나라, 군사적으로 강한 긴장이 대치되어 있는 나라를 여성들의 힘으로 뚫겠다는 것이잖아요. 제가 동학 소설을 쓰면서 우리가 따뜻한 송곳이 되어서 남북 간의 얼음을 깨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니즘은 인권 의식에 기반해서 억압은 옳지 않은 거야라고 하면서 일어서는 것이잖아요. 많은 한국의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잘난 년들이 잘난 척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요. 그러나 페미니즘은 못나지 않은 여자들인데 못났다고 억압하는 시스템이 옳지 않다고 일어난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 장애인 운동, 성적 소수자 운동, 소수 민족 운동 등 모든 차별과 억업에 반대되는 인권 운동하고 쉽게 연결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페미니즘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평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죠.”

 

인터뷰 중 자주 언급되는 동학. 그녀는 천도교나 동학을 모태로 하는 종교의 신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생각과 활동에 동학이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동학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까지 하고 있다. 동학의 어떤 면에 매료된 것일까?

 

“제가 호주제 폐지운동을 할 때 남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왜 이렇게 남자들이 찌질한가, 대한민국 남자들 유전자에 찌질한 유전자가 들어있는가 고민할 정도로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 원인을 파면서 일제 시대에 족보가 엄청나게 가짜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죠. 김 씨, 이 씨, 박 씨가 45%를 차지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잖아요. 일제 시대에 거짓 양반 문화, 양반 놀이 흉내 문화가 생겼어요. 그러면 그 전에는 어땠을까? 거기에 동학이 있었죠. 동학에 진짜 상남자, 상여자가 있었구나. 그런데 그들이 다 전멸되고 난 후에 비굴한 대중이, 비겁한 대중이 선택한 것이 양반 놀이 흉내 문화라는 것이죠. 그래서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봤을 때 동학은 찌질한 양반 문화와 정말 달랐죠. 차별을 정당화하고 차별 가운데 자신은 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하부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것, 그것이 가부장 문화고 양반 문화거든요. 그 수직적 위계 질서를 깨서 수평 문화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 동학이죠. 동학은 페미니스트이든, 인권운동가이든,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성숙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화고 철학이었죠. 그것을 소설을 통해 알리고 싶었어요. 소설을 통해서 얻는 수입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기금이 만들어지면 동학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뜻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하나를 시작하는 것이지만 하나는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하나가 다른 하나의 기적을 만들고, 다시 그것이 또다른 기적을 만들죠. 어떻게 보면 기적의 씨앗,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알멩이, 이런 것을 우리가 또 하나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현재 홀로 청산에 거주하면서 서울을 오가며 외부 활동을 하고 있고, 남편과 두 아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한다. 큰 아들은 내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로서의 고은광순이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고은광순에 대해 물었다.

 

“나는 아이들하고 싸워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도 부모를 향해서 대들지 않고요. 어렸을 때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불러서 존댓말을 가르치면 저는 아이들을 따로 불러서 존댓말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말 잘 듣는 아이들보다 말이 잘 통하는 아이들을 원했어요. 그리고 자주 싸우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싸울 때, 한참 사춘기 때 아이들이 사우면 저는 카메라를 가져와서 들이댔죠. 그러면 아이들이 안 싸워요. 물론 저도 많은 깨인 부모들의 멘트들, 정보들을 수집해서 많이 적용했죠. 도(道) 중에 가장 높은 도가 ‘냅도’(냅둬)라고 하잖아요. 간섭하려고 하지도, 끌고 가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지켜보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너무 가까이 있지 않으면서 그래도 항상 관심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들을 서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거죠. 결혼도 그리 큰일로 생각하지 않아요. 지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청산에 있는 엄마 집에 와서 해도 좋다고 하니까 아들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냥 꽃이나 마당에다 좀 심어 놓고, 조촐하지만 감동 있는 결혼식을 올리면 좋겠다고 생가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스스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옆의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고, 낙천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후 사무실 인근의 운현궁으로 장소를 옮겨 몇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어느 감나무에선가 떨어진 감을 주워 챙겨주며 환하게 웃는 그녀는 투사보다는 호탕한 어머니의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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