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예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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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은 36년 동안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았다

 

각자위심의 삶에 물음을 던지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우리 사회에 화두고 되고 있는 ‘어울려 살기’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근원을 동학으로 소급해 보는 일은 즐거운 상상력을 제공한다. 동학은 서양 제국주의(자본주의)가 이 땅으로 몰려들던 1860년대에 창도되어, 그 이후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외세에 의해 서서히 매몰되어 가는 세월을 겪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해 온 사상이요, 철학’이기 때문이다.

 

동학은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궁극적으로 삶(생명)을 나누고 단절시키며 그 속에서 ‘나’만을 우선시하는 그릇된 삶의 행태(=각자위심)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은 우리 삶(생명)의 본래 모습이 한울님이라는 본체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서로 어울려 있는 그 실상(=동귀일체)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 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포덕문)

 

각자위심이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내 몸을 중심으로, 내 몸에 한정하여 생각하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드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생명(나)의 실상이 동귀일체임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 당장의 내(내 기업, 내 나라) 삶은 풍요로워지는 듯 보이지만, 전체로서의 우리 생명(공동체, 지구환경)은 동귀일체(同歸一體)란 “이 세상 만물이 (같은 근원=한울님으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과 만물을 이루어 살다가) 다시 함께(同) 그 근원(體)로 돌아가(歸) 하나(一)가 된다”는 말이다.

 

마치 한 나무에서 가지가 갈라져 그 끝에 나뭇잎이 돋아났다가 가을이면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나무의 자양분으로 나무의 일부가 되는 것과 같다; “언젠가 땅속에 묻힐 모든 세상사람은 한울님의 조화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은덕에 감사하기는 고사하고 근본(동귀일체)조차 잊을소냐. 가련한 세상사람 각자위심 하단 말가, 한울님을 공경하고 천리에 순응하라. 효박한 이 세상에 근본을 잊지 말아라.”(권학가)

 

한울님과 사람의 어울려 살기

 

동학에서 ‘더불어 삶’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동학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한울님(하늘, 神 )과 땅과 사람의 더불어 삶을 이야기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찍이 천부경에서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人中天地一)”고 설파한 것처럼, 이 세상 만물이 본래 하나로부터 나와 여럿으로 살다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임은 역대 성인들이 누누이 가르쳐 온 바이다. 그러나 인지의 발달이 미흡하고, 사회 제도나 관습이 그로부터 멀어지는 바람에,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밝은 가르침과 지혜가 가리어져서 오랫동안 잠복해 버렸던 그 가르침이, 동학으로 되살아났다. 동학은 한울님과 수운 선생의 만남에서 창도되었다.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守心正氣)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吾心卽汝心)’…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논학문)

 

이 말씀은 정황상 한울님과 수운 선생이 처음으로 만나는 때, 다시 말하면, 한울님이 수운 선생에게 동학의 가르침을 내리는 처음 장면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내(한울님) 마음이 곧 네(수운, 사람) 마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씀은 사실상 동학사상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생각한다. 수운(사람)의 마음이 한울님(神)의 마음과 일치하는 순간에 곧 다시 개벽이 시작되고 또 완성되는 것이며, 만사지(萬事知)가 실현되는 것이다(만사지는 동학의 21자 주문의 마지막 세 글자, 동학의 궁극적인 경지). 동학경전의 모든 문장은 이 ‘오심즉여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혹은 부연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결정적인 장면에 한울님은 “너를 만나서 비로소 성공했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한울(님)이 사람과 만남으로써, 지금의 논의로 하자면 어울림으로써 각자가 서로를 완성해 간다는 뜻이다; “한울님의 은혜가 끝없이 넓고 커서 경신년(1860) 4월 5일에 … 꿈인 듯 생시인 듯 처음으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얻었다(得道). … 한울님 하신 말씀 ‘개벽 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 이후 애써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다가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하고 너도 마침내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뜻을 이루게 되니 너희 집안 운수로다.’ 이 말씀 들은 후에 마음 깊은 곳에서 홀로 기쁘기 그지없었네.”(용담가)
수운 선생 역시 한울과 사람의 ‘더불어’ 존재/활동/완성함을 이야기하였다. 수운 선생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동학의 핵심은 21자 주문으로 귀결된다. 그 주문을 수운 선생이 직접 풀이하셨는데, 그중 시천주(侍天主)에서 주(主)-‘님’이라고 하는 것은 “(한울님을) 높여서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는 것(尊而與父母同事者)”이라고 풀이하였다. 주목할 대목은 한울님을 부모님처럼(如父母)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더불어(與父母) 섬긴다는 표현이다.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는 것처럼 하라(事人如天, 해월)는 말씀도 있지만, 본디 수운의 표현은 한울님을 부모님(=사람)과 더불어 함께 섬기는 데 있다. 더불음(與)은 어울림의 출발점이요 귀결점이다.

 

사람과 땅의 어울려 살기

 

해월은 수운의 말을 받아 한걸음 더 나아간다. 한울(님)과 사람의 어울림뿐만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과 땅의 어울림을 말하는 것이다. 어울려서 존재하기, 살기, 완성하기의 근본은 바로 하늘-땅-사람의 어울려 살기이다; “어찌 홀로 사람만이 입고 사람만이 먹겠는가. 해도 역시 입고 입고 달도 역시 먹고 먹느니라. 사람은 한울을 떠날 수 없고 한울은 사람을 떠날 수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의 한 호흡, 한 동정, 한 의식도 이는 서로 화하는 기틀이니라.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느니라.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그 생성을 돕고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그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니라. 사람의 호흡과 동정과 굴신과 의식은 다 한울님 조화의 힘이니, 한울님과 사람이 서로 화하는 기틀은 잠깐이라도 떨어지지 못할 것이니라.”(해월, 천지부모)
의암 손병희는 이를 좀더 친절히 부연하면서 ‘천지인 삼재’의 어우러짐을 확실히 매듭지어 말한다; “(제자가 의암 선생에게) 묻기를 ‘높은 것은 한울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두터운 것은 땅보다 더 두터운 것이 없고, 비천한 것은 사람보다 더 비천한 것이 없거늘, 사람이 한울을 모셨다 하는 것은 어찌 된 것입니까?’(의암 선생이) 대답하시기를 ‘만물은 다 성품이 있고 마음이 있으니 이 성품과 이 마음은 한울에서 나온 것이라. 그러므로 한울을 모셨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묻기를 ‘그러면 높은 것이 한울이 아니요, 두터운 것이 땅이 아니란 것입니까?’ 대답하시기를 ‘높은 것은 두터운 것에 의지하고 두터운 것은 높은 것에 의지하였으니, 비천한 것은 그 사이에 있어 위로는 높고 밝은 덕을 입었고 아래로는 넓고 두터운 은혜를 실은 것이니라. 이러하므로 천·지·인 삼재란 것은 도무지 한 기운뿐이니라.’”(의암, 각세진경)

 

귀신과의 어울려 삶을 말하다

 

해월은 일찍이 벽을 향하여 제사지내는 그때까지의 제사 방식을 혁파하면서 ‘나를 향하여 제사상을 차리는 향아설위’의 제사법을 주창하였다. 이것은 동학이 선천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벽하는 운수를 말하고 실천하는 가르침임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다; “나의 부모는 첫 조상으로부터 몇 만 대에 이르도록 혈기를 계승하여 나에게 이른 것이요, 또 부모의 심령은 한울님으로부터 몇 만 대를 이어 나에게 이른 것이니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하고,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교훈과 남기신 사업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향아설위)
향아설위의 제사법에 이르면, 동학에서 어울려 삶의 범위는 하늘과 사람과 땅(자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까지 이르러 귀신과도 어울려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말을 오해 없이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찍이 동학의 한울님은 “귀신이라는 것도 나(한울님, 鬼神者吾也)”라고 자처했던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우리는 귀신과도 어울려 살고 있음을 의암은 아래와 같이 설파하였다; “무릇 성현의 덕은 화하는 것이 초목에까지 미쳐서 간섭치 않음이 없고, 덕은 푸른 하늘과 같아서 만방이 다 같이 힘을 입느니라. 그러므로 천추만대에 한울같이 받들며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니, 주고받는 것이 불 본 듯이 밝은 것이니라. 성인의 가르침과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성인의 마음과 신의 밝음이 내 마음을 비치나니, 그 주고받는 것을 말할 적에 벽에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에게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과 더불어 주고받는 것이 황연히 의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보면 향아설위가 어찌 옳지 않겠는가.”(의암, 수수명실록)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 만물은 본래 한 몸(동귀일체)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나와 한 몸(=한울님)에서 나온 형제요(人吾同胞), 이 세상 만물도 나와 한 몸(=한울님)에서 나온 형제(物吾同胞)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해월이 하늘과 사람과 땅이 어우러져 사는 이치를 말한 결을 따라, 의암은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살고, 그렇게 도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변화가 무궁하고,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만사를 행하는지라, 어찌 도를 멀리 구하며 능히 근본을 깨달아 지키지 아니하리오. 모름지기 사람마다 신령한 마음이 있어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수족이 있어 능히 동정함으로써 만사를 능히 다하여, 마시고 먹고 입는 바는 도시 다른 바 없건마는 그 근본을 알아 지키는 것이 적으므로, 한울을 등져서 영대가 혼미하고 진실로 한울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지라. 군자는 이것을 능히 알고 순히 지켜서 잠시라도 떠남이 없으므로, 영대가 한울같이 신령하고 그 밝음이 일월 같고 그 앎이 귀신같아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귀신으로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할지라.”(의암, 권도문)

 

어울려 살지 않으면? 죽는다

 

다시, 오늘날 우리, 우리 사회가 어울려 살기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을 돌이켜보자. 이대로는 더 이상 인류의 행복과 공리공영 추구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생명공동체, 지구공동체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모색되는 것이 바로 어울려 살기라고 했다. 어울려 살기가 우리 모두(!)의 방주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어울려 살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동학에서는 어울려 살기를 더 이상 미루다 보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고까지 경고한다; “이 몸은 선천이기(先天理氣)로 화생함이요 이 마음은 후천이기(後天理氣)로 받음이라, 이런고로 세상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지 아니함이 아니건마는, 후천 운수를 알아 지키지 아니하면(이것이 각자위심의 삶이다-인용자 주)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는 바,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면 오직 사람의 중함으로도 놀다가도 죽고, 자다가도 죽고, 섰다가도 죽고, 앉았다가도 죽을지라. 이와 같이 죽음이 무상한 것은 그 간섭치 아니함을 반드시 알지라. 만일 지키는 사람도 이 운수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설령 정성이 지극할지라도 한울이 간섭치 아니할 터이니 깨닫고 생각하라.”(의암, 권도문)

 

오늘날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정도가 심해지는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각종 재난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 자연적인 현상이 인간의 무분별한 성장 중심 경제와 그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고 보는 점에서는 인재(人災)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일이니 인간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는 좋게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한계이다. 신(한울님)에 예속되는 길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신을 온전히 내 안에 받아들이는 자기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허함이 필요하다; “사람은 다 모신 한울님의 영기로 사는 것이니, 사람의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마음이요, 먹고 싶은 기운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기운이요, 사람이 맛나게 먹는 것이 이것이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정이요, 사람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한울님이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니라. 사람이 모신 한울님의 영기가 있으면 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은 것이니라.”(해월, 향아설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나눈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여 세상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기(布德) 시작하자, 그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학문공동체로 시작한 동학도들의 모임은 금세 ‘생활, 생명 공동체’로 진화해 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삶의 원리가 실천되었다.

 

앞서 말한 하늘과 사람과 대지가 함께 어우러지는 삶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는 바로 유무상자(有無相資), 즉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나눈다’는 것이다. 돈이 있고 재산이 있고 학식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이 그것들이 없는 사람들과 ‘서로’ 나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상호 호혜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있는 사람이 내놓는 것을 없는 사람이 가져다 쓰지만,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인정과 감사와 보답을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호혜’의 경제는 ‘상품 경제’를 대체한다. 이미 150년 전의 동학 공동체에서 구현된 원리이지만, 지금의 자본주의 상품경제 전성시대를 지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주류로 자리 잡아가야 할 ‘오래된 미래’의 경제 체제이다. 단순한 희망이나 전망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공유경제’나 ‘나눔경제’ ‘돌봄경제’와 같은 용어들은 그저 현학적인 수사나 학자의 머리에서 나온 관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새로운 ‘유무상자경제’의 텃밭들이다.

 

이러한 유무상자경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성취(자본주의, 과학물질문명의 성과를 포함한)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바탕 위에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를 온전히 받아 안고 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차원으로 전개될 것이다.

 

또한 유무상자경제는 단순히 물질적인 나눔의 원리나 경제 체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문제이며, 사회적 체제의 문제이다. 수운은 동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접(接)이라는 조직을 구성한다. 대개 50호 정도를 기본 단위로 하는 이 접 조직은 학문과 수련을 함께하는 한편으로 어울려 살기의 모범적인 이상향을 구현한다; “귀천이 같고 등위에 차별이 없으니 백정과 술장사들이 모이고, 남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유박(帷薄; 포교소)을 세우니 과부와 홀아비들이 모여 들며, 재물과 돈을 좋아하여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서로 도우니(有無相資) 가난한 자들이 기뻐한다.”(「동학배척통문」, 1863) 이 구절은 당초 동학의 새로운 생활양식이 당시의 유교 중심의 생활윤리와 어긋남을 비판하는 경상도 지역 유생들의 통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유생들 입장에서는 양반 사회가 그어 놓은 삶의 결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어울려 살기’의 삶이 확장될 경우 자신들의 기득권이 와해된다는 위기의식에서 이를 막아 나서며 비판적으로 서술한 관찰 결과이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의 원초적인 씨앗들을 모두 담고 있는 공동체였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수운 시대의 공동체 윤리는 수운을 이은 해월 최시형 시대에 더욱 활발하고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무릇 우리 동학 사람들은 같은 연원(최제우)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땅히 형제와 같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형은 굶고 있는데 동생만 배부를 수 있을 것이며, 동생은 따뜻하면서 형은 추위에 떨어서야 되겠는가. (중략) 간절히 바라건대 모든 군자(동학신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접안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끼리 각각 서로 힘을 합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는 마음을 면하도록 하시오.”(『해월문집』, 1888)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이치이니 지금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이치가 더욱 크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환난을 서로 구제하고 빈궁을 서로 보살피는 것 또한 선현들의 향약에 들어 있는 것인데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정의가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우리 동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약속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서 규약에 어김이 없도록 하시오.”(『해월문집』, 1892)

 

해월 시대 동학 조직의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해월의 이러한 가르침과 더불어 해월 스스로 그들 속에서 ‘더불어 삶’을 실천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해월은 수운의 순도(1864)년 이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를 오가며 산골짜기마다 깃들어 사는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일하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가르치고, 밤과 농한기를 이용하여 학문공동체를 개설(開接)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동학의 가르침을 구현해 나갔다. 한마디로 해월의 동학 교조 생활 36년은 세상 사람과 이 세상 만물과 더불어, 어울려 사는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그동안 해월이 관의 탄압과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는 시각을 벗어나 해월이 하늘-사람-만물과 어울려 사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의 시각의 전환은 김용우 님의 견해에서 배웠다).

 

해월이 가는 곳마다 과일나무를 심고, 한 시도 쉬지 않고 노끈을 꼬거나 농구를 만들거나 밭을 일구었다는 사실들은 그 안에 해월만을 놓고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해월과 함께, 더불어 일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해월 홀로일 때조차 하늘과 땅이 더불어 함께했음을) 옳게 보아야만 동학 공부의 한 고비를 넘어섰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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