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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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한 | 시골학교 여행살이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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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상품이다.” 물론 여성은 상품이 아니다. 다만 당신의 반발심을 자극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여성이 상품이라는 말을 모독으로 느끼기를 기대하고 하는 말이다. 극단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가 남성도 물론이지만 여성을 더욱 극단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가장 유행에 민감하고 감각이 예민한 곳이 어디일까? 예상하다시피 한국이다. 얼마나 예민하냐면 우리는 신경이 터질 정도로 예민하다. 유행과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은 주체가 자기 원리로 살아가기보다 사회 원리에 강박적으로 복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유행과 감각의 과도한 예민함은 사회적으로 유포된 생존 불안과 왕따 불안과 맥락을 같이한다. 어디든 세속사회의 지배적 관습이 존재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생존불안과 소비강박이 과도하게 지배하는 사회라면 그야말로 분열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모순 속에 여성의 상품화 문제는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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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우리의 머리를 스치는 몇 가지 기사들이 있다. 외국의 유명 패션회사나 화장품 회사는 물론 가전제품 회사들도 신상품을 개발해 상품화하기 전에 한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뒤 그것을 반영해 상품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소비자들이 신상품의 리트머스지가 된 셈이다. 한국여성이 유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제품의 질을 꼼꼼히 따지는 깐깐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민한 소비자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여성 거의가 성형수술을 받는 걸로 알 정도다. 언론에서도 성형수술 병원의 수출과 성형수술 관광수입을 애국심과 뒤섞어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아름답고 싶은 것이 여자의 욕망이라지만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여자들의 미적 기준은 엄청 세밀하고 높다. 당연히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녀 차별을 넘어서 힘들고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K-POP의 걸그룹은 어떨까? 그들의 공연은 얼마나 섹시하고 화려한가? 그들의 화장과 패션 그리고 섹스어필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춤동작은 이미 세계 대중의 상업문화를 선도할 정도다. 그렇다. 한국의 걸그룹이야말로 한국의 화장품, 액세서리, 패션, 성형, 섹스의 첨단을 달리는 유행상품들이 결집된 결정판이다. 그들의 몸은 한국 소비사회와 상업문화의 결정체인 것이다.

이토록 예민하고 세련된 소비문화 풍토가 아니라면 K-POP 걸그룹 같은 것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소위 잘 나가는 대형기획사 소속 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차근차근 수련을 받으며 십여 년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인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업에 의해 인간이 제품처럼 생산되다니, 그야말로 개성을 말살하는 인권 유린으로 보였다. 자본주의가 탄생하고 보편화시킨 생산을 위한 임노동제 기반의 산업자본주의를 떠나, 인간 자체를 총체적 상품으로 생산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본주의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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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잘 팔리는 문화상품이 되도록 노골적으로 제조하는 것도 전율할 만한 사실이지만, 소비대중의 취향과 흐름을 완전히 분석하고 거기에 맞추어 총체적 소비상품을 구현한 문화상품의 영웅인 아이돌을 창출해 내는 것은 자본의 완벽한 승리를 보여준다. 이것이 소비시대의 신화다. 생산과 소비는 물론 무의식과 규칙까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걸그룹의 꽃 중의 꽃이다. 정말 인간을 쥐어짜낼 수 있는 한 다 짜내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한국의 대중음악 수준은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 아니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상품인 것이다-이쯤에서 문화라는 말을 떼자. 그러고 보면 이러한 쥐어짜내기를 통해 길러진 무수한 스포츠맨과 예술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한국이 아닌가? 한국은 정말 자본의 신화와 주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의 중독성 있는 음악과 비주얼의 세련됨은 금방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곧 쾌락에 빠져 도덕적 질문을 망각하게 되었다. 요즘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장악해 버린 서바이벌 가요프로그램들을 보라. 우리는 인간을 착취하며 생산한 자본의 문화상품에 매료되어 자본과 시스템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인간상품이 새로운 문화영웅으로 등극하고, 새로운 성공신화가 써지고 있다. 이제 더이상 최적자 생존 논리의 경쟁시스템과, 인간과 삶의 상품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본의 생산공정과 유통 시스템이 인간 내면을 완전히 흡수했다는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그들의 공연은 유혹적이다. 팜므파탈의 수준이 아니다. 부위별 화장, 악세 사리, 의상, 포즈 등 세련된 매혹 자체이다. 섹시함은 단순한 섹시함을 벗어나 성적 도발과 자극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토록 깐깐하게 굴던 공연윤리심의회 같은 것이 한국에 언제 있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나는 매력 넘치는 그들을 보며 그들의 현란하고 자극적인 춤과 세련된 패션과 화장 속에 터질 듯한 신경의 긴장을 느낀다. 그들의 피부와 신경이 너무나 위태위태해 보인다. 수십 수백 가지 집적된 상품 속에 인간이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물론 그러한 위험과 위태조차 소비대중에 대한 성적 자극으로 계산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런 시스템과 긴장감 속에 사람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성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품화되는 마당에 신석기 시대 이래의 유물인 성매매는 왜 합법화시키지 않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사실 매매춘 행위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오랜 성상품이 아닌가? 아니 그것은 누군가에겐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생계이며 인권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는 문제가 아닌가? 성상품화를 이 정도로 내면화한 사회에서 매매춘을 불법화해 그늘 시장에 묶어 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권력이 성을 통치수단화하여 이원적으로 지배하는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금지할 때 국가의 권능은 발휘되고, 금지에 의해 지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성상품화는 노골적으로 진행된 것이며 그것을 막을 수단은 지금으로서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직 인권 차원의 개입과 꾸준한 문제제기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장 잘 또 많이 영화로 다룬 감독이 바로 김기덕 감독이다. 김기덕 감독은 <시간>에서 성형수술로 파괴되는 주체의 문제를 거울 이미지와 분열자로 그려냈다. 그는 영화에서 대상화되고 상품화된 성과 소외의 과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데, 결국 영화 속 주인공은 자아상실과 분열에 다다르게 된다. 이 영화도 그렇지만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잔혹은 신경을 찢으며 마비된 감각을 자극한다. 마비는 인간의 마비이며, 비인간적 사회의 구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신경을 찢는 잔혹은 역설적으로 삶의 환기이자 욕구이며 자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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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마비사회로 부른다면 인간의 마비는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바로 파시즘적 국가와 자본이다. 국가와 자본의 파시즘적 지배에 의한 마비에 대한 폭로로 그는 폭력을 사용한다. 때문에 그가 성과 폭력을 결부시킬 때 그것은 파시즘적 위계사회에 나타나는 사도마조히즘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폭력이 자해와 테러를 왕복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의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영화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고 비판했지만 사실 그의 영화는 파시즘적 사도마조히즘의 맥락에서 해석될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모든 맥락 안에서 <시간>은 성상품화를 내면화한 인간의 비극을 드러낸다.

성상품화는 일종의 물신주의인 페티시즘을 유발한다. 즉 여성을 둘러싼 각종 화장품, 악세사리, 패션 의류와 포즈는 여성 스스로를 상품으로 치장하여 점점 상품과 동일하게 만든다. <시간> 속 여주인공의 위기가 바로 이러한 위기이다. 상품에 의해 안도하고, 상품을 질투하고, 상품을 닮고자 욕구한다. 결국 김기덕의 영화 속 여주인공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상품의 완전한 승리가 아닌가.

이러한 상품의 내면화는 한국여성을 상품 수준에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하는 일에 매달리게 한다. 과거 가부장제에 의해 조장된 성착취가 현대에는 자본의 노골적 성상품화로 성욕을 생산하고 성상품과 구매행위로 이어지도록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성적 자유는 물론 성정체성까지 왜곡되고 있다. 여성의 실존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아니 자기가 자기를 소외시키고 상품으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유사 이래로 겪어보지 못한 소외현상이다.

성이 해방되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성이 부분적으로 해방되긴 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더 많이 억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더 많이 왜곡
하고, 노골적으로는 완전히 상품화하였다. 상품의 원리를 꿰뚫고 거스르지 않는다면 부위별 성형수술처럼 인간 자체의 상품화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 모두를 고쳐 상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최대한의 모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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