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년 전 동학농민군은 생명을 살리는 살림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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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세상 열기 위해 맨 몸 아랑곳 않고 일어난 ‘한울님’들이었네!



조정미| (주)진농씨 이사



『개벽의 꿈』이 나를 깨우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동학농민군의 격전지였던 우금치에 간 적이 있다. 그곳 지형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동학농민군이 몰살당하는 환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모두들 전율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진상을 알려는 노력도 없이 그릇된 생각과 불편한 심정을 앞세워 관심을 끊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불편한 심정이란 잘못된 걸 바로잡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된다는 패배의식이었다. 


1980년대 내나라 군대가 국민을 죽이는 말도 안 되는 흉악한 군부독재를 ‘타도하자! 타도하자!’ 크게 외칠수록 두려움이 커져가던 그때. 나는 우금치에 서서 동학농민군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왜 죽창을 들고 총을 든 일본군과 싸워야 했나? 1894년 순식간에 일어나 엄청난 시련을 남기고 쓸쓸히 사라진 실패한 혁명! 봉건적 질서에 반대했지만, 반봉건으로부터 일어난 근대라는 갑옷을 두른 일본 제국주의에 처참하게 짓밟힌 저항운동! 국가로부터 배반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80년 광주항쟁과 닮아있는 동학농민군! 속 시원히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죽어간 이 사람들의 저항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칼든 강도 앞에 맨몸으로 그들을 쫓아내겠다고 나선 무모한 동학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과연 추앙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농민군들의  피맺힌 한이 후손인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건넨다는 말인가? 동학은 근대라는 시대에 휩쓸려간 실패한 혁명일 뿐이다.

2013년 늦가을 옥천 청산에 귀촌한 한의사라고 소개받은 고은광순 선생에게서 한 권의 책을 받았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빌려준 『개벽의 꿈』이라는 두툼한 책, 지난 30년간 발로 전국을 누비며 동학을 연구한 분이 쓰신 거라 했다. 


‘개벽이라~ 꿈이라~!’ 역사책에 붙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용어(?)라서 언뜻 의구심마저 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러나 처음 만난 나를 믿고, 우리 여성들이 각 지역의 동학을 공부하고 소설로 써서,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동학의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리자며 진정성 있게 말하는 고은선생의 제안에 가만히 고개를 드는 부채의식이 있었다. ‘내가 전에 외면했던, 바로 그 동학에 대해 제대로 알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내게 있었던 거였다.

 

나는 ‘개벽’이라는 말은 증산도에서 말하는 ‘선천개벽 후천개벽’ 하는, 한 종교의 용어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참으로 무지몽매한 수준이었다. 어려서부터 대단히 독실한 편은 아니지만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 중·고등학교도 개신교 학교를 나온지라 살면서 어떤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성경에 나온 말씀들에 비춰보곤 했던 터였다. 


타 종교에 대하여 존중하지만 관심이 없었기에 ‘개벽’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난감한(?) 솔직히 거부감이 들었다. 무슨 내용일까? 차례를 들여다보니 저널리스트들이 무엇인가 탐구하여 쓴 책 같이 되어있었지만 분명 역사책이었다. 

동학혁명의 진상과 의미를 알게 되다


옛 어른들 말씀에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개벽의 꿈』을 읽고 내가 그 말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 편 보기에 불과하면서 세상을 다 본 듯 우기는 사람처럼 부족한 생각으로 동학을 알고 싶어 했다는 말이다.


박맹수 선생님은 독자가 차마 손을 놓을 수 없도록 동학에 대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을 조목 조목 들이대며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봉건체제에 종지부를 찍음은 물론 우리 민족 민중 운동의 정점을 이루는 운동이며, 19세기 동아시아를 깨운 최고 최대의 민중 대혁명이라고 선포하고 있었다. 


동학이 서학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남접의 전봉준과 북접의 해월이 서로 대립한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서로 도모하고 함께하였으며, 혁명의 마지막 순간에 일본군이 조선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자의적으로 개입하여 무자비하게 학살을 자행하는데 이는 일본제국주의의 야심에서 비롯된 계획적이고 의도된 사건이라는 점, 동학도가 ‘교조신원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여나갈 만큼 체계 를 갖춘 조직이라는 점,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배경이었던 동학사상에 대한 상세한 소개까지….


전에는 갑오년에 조선의 인구가 1,052만 명. 그 중에 200-300만 명이 혁명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전 인구의 1/3이 참여하여 목숨을 잃은 무모한 혁명인줄 알았다. 그래서 내심 부끄럽고 부담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다. 게다가 여전히 유교적 질서에 사로잡혀 답답하게도 조선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근대적 정권을 세우려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동학사상과 동학농민군의 <무장포고문>을 보고, ‘4대명의’와 ‘12개조 기율’을 살펴보니 너무나 분명한 동학농민군의 봉건질서의 굴레를 타파하고자하는 현실인식과  보국안민이라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발상을 전환하여 생각해보면 그 많은 참여자가 체제에 봉기하였고, 물불 안 가리는 무지한 대중이 아니라는 점은 놀랍다.


봉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생존이 위협당해도, 국가의 운영에 아무런 의견을 낼 수 없었던 조선의  백성들이  새로운 개벽 세상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수심정기(修心正氣)를 몸소 실천했다는 사실, 도덕성을 잘 갖추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생명을 잃을 위기에서도 ‘나’를 바로알고 수련했다는 점은 현실인식 박약이나 순진함, 무지함과 연결 지어서는 안 된다. 동학도인들이 고난의 순간에도 자신이 ‘한울님’임을 알고 실천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자기완성의 길이며 , 개벽세상이 열린 것이다. 

근대를 넘어선 동학사상, 돈의 아바타 되어버린 인간에 희망이 되다


근대가 추구했던 물질적 가치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음이 증명된 지금, 근대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살림을 꿈꾸었던 동학농민군의 정신세계는 자랑할 만하다. 봉건적 질서와 팽창하는 제국주의 그리고 세기말적 백변의 시기에 삼중고로 고통 받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발현된 평등·평화·살림의 개벽사상으로서의 동학은 국수적 민족주의도 아니고 탐욕에 젖은 근대를 닮아있지도 않다는 점이 신선하다. 


근대로 지칭되는 그 물질주의, 합리주의의 후유증으로서, 영혼 없는 ‘돈의 아바타’가 되어버린 인간을 살리는 길! 동학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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