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와 구엘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가우디와 구엘


 



윤영숙| 연극인·교사



 


문화, 예술, 운동등 어떤 부문에서건 천재가 탄생한다는 것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천재가 자신의 능력을 한껏 뽐낼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조금의 능력이라도 칭찬해 주기 보다는, 단점을 찾아서 비난하는 것에 더 익숙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재능을 펼쳐나가지 못하고 주저 앉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천재를 알아보고, 인정해주고, 그 능력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 해주는 후원자가 있다는 것, 더군다나 그 후원자가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는다면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일까?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옮긴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 두사람은 바로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와 그의 물질적이며 정신적인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 백작이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의 최고 명물로 손꼽히는 ‘성 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건축했으며, ‘구엘공원’, ‘까사 바뜨요’, ‘까사 미라’ 등 유명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건축물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도 한, 한마디로 건축 역사에 한획을 그은 건축가이다.



‘성 가족성당’과 ‘구엘공원’은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이 건축물을 보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있다.



가우디의 작품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다른 건축물과는 차별화된 창의적인 디자인이 돋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가우디는 자연과의 조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모든 작품들에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을 관찰하여 응용해서 접목시킨 건축물들을 디자인했다. 그래서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들의 곡선에서 바람이 느껴지고, 물결이 느껴진다.


 
“성 가족성당”을 접한 후대의 많은 건축가들이나 평론가들은 “역사상 이런 건축물을 다시 찾을 수는 없다.”며 경이로움을 표하고는 했다.



하지만 가우디가 처음부터 그 천재성을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우디의 특이한 디자인 때문에 그는 건축사 자격증을 받을때 “천재이거나 미친 사람이거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었다.



처음 건축가의 일을 시작할 때 가우디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레우스라는 도시에서 활동하기를 원했었다. 그런 그가 건축가의 일을 따내기 위해서 응모했던 것은 레우스의 오래된 성당을 증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레우스 시에서는 가우디의 설계도면을 접하고는 괴기스럽다며 그의 도안을 거부하고 다른 건축가의 도안을 받아들여 여느 성당들과 다를바 없는 고딕 양식의 평범한 성당으로 증축했다.



그에 실망한 가우디는 자신의 진로를 바르셀로나에서 찾기로 결정하고 레우스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옮겨갔다. 만약 그때 레우스시에서 가우디의 도안을 체택하였다면 지금의 레우스는 단순히 가우디의 고향이 아니라 거장의 작품이 살아있는 북적이는 도시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도 그의 천재성을 인정해 준 것은 아니다. 그의 획기적인 도안은 건축주들의 반발을 샀고, 때로는 건물을 망쳐 놓았다며 멱살을 잡는 건축주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우디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를 후원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사업가인 에우세비 구엘 백작이다.



에우세비 구엘은 바르셀로나 외곽의 꼴로니아 지역에 방직공장과 주거단지, 병원, 식당가, 상점, 극장 및 교회 등 노동자들의 복지와 편의시설에 관련된 복합단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구상할 정도로 앞서가는 사업가였다. 예술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구엘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 건축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가우디의 작품에 매료되고 만다.



이 둘의 만남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가의 입장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을 사업에 연관시킬 법도 한데 에우세비 구엘은 그 반대였다. 주변에서는 과도한 공사비를 지출한다며 가우디의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에우세비 구엘은 “그정도의 금액으로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더 많은 지출을 할 수 있더록 허용하는 등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우디가 추구하는 예술적 시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예술적 공감대를 함께 형성한 사람으로 가우디에게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지금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는 가우디의 예술적 신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이 에우세비 구엘인 것이다.



이러한 구엘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가우디는 기존의 건축이 가지고 있는 틀을 깨뜨리고, 그가 추구하던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다 보면 가우디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은 에우세비 구엘에게 존경심을 갖게 된다. 그의 천재를 보는 안목이 없었다면, 경제적인 이유로 그의 건축비를 삭감하거나 건축주의 입장에서 관여를 했더라면 지금 세계가 감탄하고 열광하는 건축물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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