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해 용담정을 찾았던 수상한(?) 여성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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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갑오년 새해 용담정을 찾았던

수상한(?) 여성들 이야기


고은광순| 한의사(솔빛한의원 원장)

 

2010년께던가 부산 한살림회에서 강연을 끝내고 회원들과 후속담을 나눌 때 나는 한살림의 뿌리가 동학이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박맹수교수의 『개벽의 꿈』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바로 사서 읽어보았지만 그것이 어떤 인연이 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2012년 명상 스승의 인도대로 공동체마을을 위해 충북 옥천군 청산면 산속에 한의원을 겸한 집을 짓고 있을 때 지인이 공사현장에 애써 찾아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정순철 평전』. 책 안쪽에 지은이 도종환 씨는 청산에서 살게 될 내게 덕담을 적어 보내주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도 아닌데 어찌 일부러 사람을 시켜 책을 보냈을까? 책의 앞 쪽 삼분의 일 정도는 동학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정순철이 누군데 동학이야기가 이리 장황하지?’ 이마를 찡그리며 책을 보다가 뒤로 가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와우!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런 이야기는 널리 퍼져야 하는데….

 

 

동학을 통해 상남자들을 만나다

대학에서의 내 첫 번째 전공은 사회학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공부한 것이 한의학이었다. 넷째 딸로 자라며 남녀차별이 심한 세상에 분노했다. 아들 낳는 한약을 찾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다시 분노가 일어났고 차별의 원인이 호주제라는 것을 알고 나서 거대한 괴물과 싸움을 시작했다. 여성운동은 남성을 밟고 서겠다는 게 아니다. 남녀가 모두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자는 인권운동일 뿐인데 그에 대해 쏟아지는 남성들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설득하려 해 보았지만 후에는 절망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유전자가 원래 이렇게 찌질했던가?

호주제폐지운동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것이 양반흉내놀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이·박 3성이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기이한 대한민국의 성씨 문화는 일제시대에 조작된 결과이며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족보도 일제시대에 조작된 것이다. 양반흉내놀이가 만들어낸 거짓의 삶. 그것이 남성들을 찌질하게 길들여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고개 너머에 전혀 다른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학하던 농민들, 동학하던 양반들…. 멋진 상남자들이 거기에 있었다.

 

 

하늘이 등을 떠밀며 시키신 일

『개벽의 꿈』을 다시 꺼내어 읽고 유투브에서 박 교수의 동영상을 찾아 몇 번을 반복해서 보았다. 동학이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보고 죽는 게 소원이란다. 박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가 청산에 이사 와서 정순철을 알게 된 사연을 말하고 소설로 쓰게 되면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 ‘좋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답신을 받고 나는 곧 원광대로 그를 만나러 갔고 전폭적인 도움을 약속받았다. 나는 작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글솜씨 좋은 선배를 찾아갔으나 암울한 정치상황으로 우울무드에 젖어있던 선배는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다른 작가를 물색하는 동안 반년이 지나갔다. ‘에라이, 그러면 내가 쓴다!’

동학혁명은 전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혼자 25년 이상의 집필로 수직구조의 대하소설을 완성했던 토지의 박경리처럼 할 것이 아니라 십여 명의 작가를 모아 지역을 나누어 수평구조의 다큐소설 십여 권을 짧은 시간 안에 쓰는 것은 어떨까? 여성의 시각으로, 묻혀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얼개로 창작을 가미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라도 능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10월에 나카츠카 교수가 인솔해 온 일본인들과의 동학답사 여행을 했다. 동아시아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에는 남북한의 대립 말고도  일본의 반성 없는 자기중심적 역사관도 포함될 터. 일본에도 양질의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두어 달에 걸쳐 인연이 닿는 대로 십여 명의 재주꾼을 모았다. 연말에 강도 높게 공부를 한 뒤 다음해인 갑오년 중후반기에 소설을 완성하고 갑오년이 끝나기 전에 출판을 마쳐야지!

10월의 여행에서 알게 된 김용휘님이 연말 워크샵 장소로 용담정을 추천하면서 하루에 얼마간씩 수련을 하는 시간표를 만들어 주었다. 12월 말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채로, 동학에 대한 아주 약간의 관심만 가졌을 뿐인 교사, 명상지도사, 인권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우리들은 용담정에 모여 낯선 동학수련과 빡빡한 공부 일정 속에서 점점 동학에 빠져 들어갔다.

박맹수 교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흘 간 혼신의 힘을 다해 동학의 속살들을 낱낱이 보여주려 애를 썼다. 조선시대의 사회 일반과 역사소설쓰기에 관한 강연도 들었다. 그러나 과연 전문작가가 아닌 우리들이 1년 안에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저질러 보자는 무모한 용기가 가끔 일을 성사시키기도 하더라.’는 다소 엉뚱한 뚝심에 기대어 웬만큼 동학의 가닥을 잡은 뒤 15명이 담당할 지역을 나누었다. 전라도 넷, 경상도 하나, 강원도 하나, 충청도 여섯, 서울 하나, 북한 하나, 만주 하나. 모두 열다섯 지역이 선정되었고 담당자가 결정되었다. 강원도 출신과 경상도 출신 작가를 구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끝내 구할 수 없어 다른 지역 출신이 맡았다.

조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수련시간이 너무 많이 배치되어 있어 다들 힘들어했다. 그 와중에도 주문의 신비한 효과(?)를 경험하기도 했고 후에 총무를 담당하게 될 은숙 씨는 혼자 쉬는 시간에 용담정에 올라갔다가 신묘한 일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본인이 추후에 개벽신문에 기고할 기회가 있기를…). 여성들의 시각으로 전국의 지역을 동시에 망라하는 동학다큐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0년대 말부터 6-7년간 호주제폐지운동을 할 때 늘 어떤 큰 힘이 내 등을 떠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또 다시 시계 톱니바퀴가 돌고 있는 듯한 느낌.

 

 

초보 여성들 16명이 14권의 소설을 완성하다

일주일간의 용담정 일정을 마치고 곧바로 인터넷에 비공개 까페를 만들어 자료실, 질의 응답실, 15개의 작품방 등을 만들어 박맹수교수로부터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과 각종의 자료공급을 받았다. 함께 하는 전체답사와 해당지역의 답사, 해당지역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각자 애를 썼다. 서너 달의 자료탐색기를 거쳐 10장의 제목을 정하고 봄부터 한 달에 두 장씩 써서 게시판에 올렸다. 대부분 소설은 처음 쓰는 처지인지라 두렵고 막막했지만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용기를 북돋웠다. 매일 SNS로 서로의 진행사항과 안부를 묻고 월 1회 1박의 워크숍을 통해 박맹수교수로부터 궁금사항을 채워갔다.

SNS에는 동학소설쓰기에 참여하게 된 것이 운명인 것 같다는 이야기, 동학을 깊게 알게 된 것이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 답사를 다니며, 자료를 뒤지며 알게 된 사실들을 서로 공유했다. 스마트폰은 대체 얼마나 스마트한지.

중간에 다섯 명이 포기를 선언하여 새 인물로 교체 되었다. 오전에 한 사람이 포기선언을 하면 오후에 대체인물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하늘이 급하신 모양이다.”라고 말을 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해졌다. 아쉽게도 전라도 김제·정읍은 담당한 사람이 너무 늦은 시기에 포기선언을 하는 바람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다행히 전봉준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사실이 많으니 크게 상심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지역별로 보면 전라 2.5, 경상 1.5, 충청 6, 강원 1, 서울 1, 북한 1, 만주 1 모두 14권의 초고가 완성되었다. 용담정에 참석한 인원 중 총무와 자문을 포함한 11명에 새로 충원된 5명 등 총 16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서둘러 갑오년에 출판하려고 했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숨을 조금 돌리기로 했다. 지금 각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작업이 한창이다.

출판사를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보다가 ‘모시는 사람들’로 정했다. 14권을 한꺼번에 출판하는 것은 요즘 출판사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4월경부터 인터넷에 조금씩 각 편을 연재하면서 펀드를 모을 예정이라고 한다. 홍보와 함께 일정량이 공개되면 펀드를 닫고 곧 출판할 수 있도록 할 모양이다. 출판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느긋해지려 한다. “하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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