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본 조선과 천도교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중국인이 본 조선과 천도교


 


김성순| 한국포도회 명예회장


 


 


[필자 주] 작년 가을 익산의 박맹수 교수댁에서 일박한 기회에 신인간 2호(1926년 5월) 영인본을 빌려와서 읽는 중, 이 제목의 글을 발견하였다. 소개한다.



“조선 안에는 무진장의 보배가 있다.  조선 청년아 정신을 차려라. 세계 사람을 살릴 무진장의 보배가 있다.”



3·1 운동 100주년이 눈앞에 닥친 이때, 중국 관광객은 해마다 40%씩 증가하여 머지않아 1,000만 명이 될 것이라 한다. 해월 선생은 중국에 포덕하여야 동학이 현도된다 하셨는데,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직도 한 밤인가 졸고 있는데, 사실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이 아닌지?



적지 않은 한문번역에 수고하신 경북대 이우철, 박현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세계사람 가운데 제일 불쌍하고 희망이 없는 자를 조선 사람이라고 누구든지 말한다. 심지어 조선 사람이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가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부인한다. 그러면 어떻단 말이냐?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사람 가운데 가장 부럽고도 희망 많은 사람은 조선 사람이라고. 왜? 조선 안에는 무진장의 보배가 가득 차 있음으로 써다. 세계 사람을 살릴 무진장의 보배가 있다는 말이다. 이슴에 따라 세계 사람이 이것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 조선 안에 있는 서양 사람이나 조선의 진상을 다소라도 아는 서양 사람이라면 이것을 알 것이며 아름에 따라 저마다 대안의 기반반인 물질의 되산을 당하여 애호하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도록 하였으리라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도리어 손으로 가리우고 왕하려 든다. 자기의 하든 버릇 개 주기 싫어서. 그러나 이것은 장구치 못하리라. 자기의 버릇 개라도 주고 오리라 믿는다. 글이 글제르 벗어났나보다. 가까이 있는 중국인은 어떠냐? 참으로도 그이들은 우리의 것을 알았다. 그 무엇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



… (중략) …



나는 (중국의) 어떤 잡지에 ‘現代朝鮮靑年敎育現狀’이란 題를 본 일이 있다. 그 대개를 초하야 여러분 앞에 드리오며 따라 그 거운데 불편한 말은 다 略하오니 下諒하옴을 바라나이다.


 


(이하 중국어 부분 번역)



나는 조선청년을 매우 존중하고, 조선청년이 일에 종사하는 것을 매우 감복하고, 또한 (그들의) 정신을 좋아한다. 이런 정신은 교육으로부터 온 것이지 결코 그들에게 (타의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종의 사회교육이다. (생략) 지금 그들(조선 청년)의 교육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학교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교육이다.



사회 교육. 본래 조선청년은 미신을 매우 반대하고, 기독교와 기타 종교를 반대하여 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숭신인조합(崇神人組合)을 만듦으로서 미신을 고취하고, 또한 백일장을 거행하여 이런 저급한 심리를 이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총독부의 사회교육방침이다. 그러나 조선청년은 이런 종류의 (억압) 아래 그들의 일체 활동을 일종의 사상계의 영향을 완전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들은 모두 조선의 동학당이 당신의 정치를 개혁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중국이 출병하여 (조선정부를) 원조하여 마침내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동학당의 혁명운동이 일대 좌절을 맛보았던 것이다. 우리들은 단지 동학당이 어떤 모반운동인 것으로만 알고 있으며, 그것이 평민혁명주의(平民革命主義)를 포함하고 있음은 모르고 있다. 또한 이런 주의가 창시된 역사도 모르고 있다. 1860년에 최수운(崔水雲) 선생이 하나의 학설을 말하였는데, 이 학설의 요지는 ‘인내천(人乃天)’이다. 이런 생각은 사람이 바로 상제(上帝)이며, 사람 밖에 따로 상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를 신앙하려면 자기 자신을 신앙하라는 것으로, 이는 우주 간에 자신보다 더 진실한 상제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학설이 나타난 후에, 조선 사상계는 완전하게 동요하게 되어, 마치 청천벽력과 같은 요동이 이러나게 되었다. 천주교와 야소교가 바야흐로 조선민간에 퍼져나갈 때에, 그(최수운)는 천당설의 황당무계함을 주창하고, 서양오랑캐의 침략 정책을 통렬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조선) 국내의 구(舊) 사상계는 오히려 그를 이교(異敎), 즉 천주교 예수교로 지목하였다. 당시의 정부 또한 그를 이교(異敎)로 백성을 현혹되게 하는 죄로 다스려, 1864년에 대구 장대에서 그를 참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그의 학도들은 남선(南鮮) 지방, 즉 조선의 남부지방을 풍미하였는데, 저 동학당의 영수 최해월(崔海月) 선생이 바로 그가 가장 신임하는 신도였다. 동학당의 혁명운동은 실패하였으나, 1904년 최수운의 학도 손병희(孫秉熙) 선생이 ‘천도교(天道敎)’라는 명의로 동지들을 모아 300여만 명이 서로 뒤따랐다. 1919년의 운동(3·1운동) 때에 주요한 인물이 바로 손병희 선생이다. (생략)



이런 천도교는 다른 특별한 교육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지에 교리강습소를 설립하여 최수운의 학설뿐만 아니라, 과학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사회교육의 가장 중요한 일단이라 할 수 있다.



근래 몇 년간 조선청년에게 특별하게 발달한 것이 바로 계급의식인데, 이런 의식은 실재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후에 세계적인 신운동이 이런 계급의식의 지배를 완전하게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번역 부분 끝)


이상의 쓴 것은 그의 대강을 초월한 것이다. 그것을 총괄하여 말하면 즉 조선 60년대의 운동이 동학당의 평민혁명주의 운동인 것과 따라서 이후 세계 운동이 여기에서 지배받아 나간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이것을 아는 것이 무엇이 그리 기괴하겠는가? 할 이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그런것이 아니다. 나는 말하기를 세계 사람이 이전에는 조선 사람을 겉만 보았지만 일후부터는 이면의 조직이 어떠한 것을 알게 되어간다고. 그러므로 조선 사람으로 조선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우리 것부터 알아양 하겠다. 참으로 마취에 최면에 걸려 천당 꿈 꿀 때가 아니다.



아 조선 청년아 정신 차려야 되겠다는 것을 제외이지만 부르짖노라. 우리는 상공업이 발달 못되어 수출물품 없는 것을 조금도 저어 말라. 조선 특산의 인내천 주의를 수출할 시기가 내도하였다. 이 시기를 잃으면 상천을 잃으리니 조선을 위하는 전장아이거든 천도교를 알아야 되겠다하고 붓을 던진다. 67.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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