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는 해와 지는 해는 보기로 합시다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보기로 합시다


 


심국보|  천도교 진주시교구


 


겨울은 가고 봄이 다 되었다. 봄바람은 세찬 겨울바람과는 다르다. 남녘의 매화꽃은 핀지 오래고 춘분을 앞두고 양지바른 곳에는 진달래, 생강나무, 목련 등은 뒤질세라 피어나고 있다. 오면 가게 되고, 가면 오는 법이다. 수운께서는 ‘천령(天靈)이 선생께 강림하였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다.’


 


 


무왕불복(無往不復)!


 


가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다. 돌고 도는 순환을 의미한다. 세상만사가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그렇게 천령, 한울님의 영이 수운께로 강림하였다는 것이다. 가면 반드시 오는 천령의 이치는, 집나간 멍멍이가 밤 되면 집으로 오는 이치이기도 하고, 낮이면 바람은 산으로 불고 밤이면 마을로 불어오는 이치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천령, 한울님의 영은 수운께 강림하신 것이다. 그러면 수운께 강림한 한울님의 영은 그간 어디를 행차한 것인가.



한울님은 상제님이고 알라이고 하늘님이며 하느님이기도하고 하나님, 야훼이기도 하니 오래 전 유대인들과도 함께했고, 무하마드에 강림하기도 했다. 가까이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유명한 홍수전에게도 한울님은 어김없이 함께하였지만, 자신의 뜻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한울님은 스스로의 능력과 한계를 절감하며 수운께 강림하여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수운께 희망을 의탁한다. 무소부재(無所不在)! 한울님은 없는 곳이 없다했으니 한울님은 보이는 듯 들리는 듯 하며 세상 만물과 더불어 존재하였지만, 수운께 강림한 한울님은 오히려 수운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노이무공! 힘써 노력했으나 제대로 이룬 공은 없었다! 이 한마디에서 우리는 집 나가면 고생이듯, 온 세상을 헤매었던 한울님의 처량한 모습을 목격한다. 세상사람들에게 이용당할 만큼 당하고도 지상천국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한울님을 만난다. 한울님이 당한 그간의 고초를 살펴보자. 


 


 


“잘 다듬어진 체계적인 미신”



이해할 수 없는 숱한 자연현상과 재해, 사나운 맹수들 앞에 사람들은 늘 불안했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한울님은 ‘나를 돌봐줄 큰 형님’같은 믿음직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자연에서 비롯되는 생명에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했고,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했고, 유한한 삶을 안타까워하며 불멸을  희구했으니 과대망상까지도 한울님께 가탁한 셈이다. ‘나를 돌봐줄 큰 형님‘같던 한울님은 어쩔수 없이 전지전능한 절대자로 변모한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종교의 경전들에 반영된 터무니 없는 개념들은 오래 옛날 미개한 야만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다. 대부분의 종교는 “잘 다듬어진 체계적인 미신”이다.



기성종교를 ‘미신’1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불편해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신의 이름을 걸고 종교재판소를 설치하고 마녀사냥을 했던 게 무슨 수천 년 전의 일도 아니고 우리로 치면 조선시대 때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만 유럽에서 50만명 이상의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화형 당했다. 당시 사람들은 마녀들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것은 교황청의 공식입장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전에는 사람이 날아다닐 수 있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다가 1480년 이후부터는 정반대로 사람이 날아다닐 수 없다고 믿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리포터의 마법사』에도 빗자루가 등장하니 소설의 한 장면인 듯하지만, 교황청에서 빗자루를 마법의 도구로 여겼다는 것은 우스운 사실이긴 해도 결코 허구는 아니다. 『해리포터의 마법사』는 제법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인 셈이다. 마녀사냥의 실상을 그린 그림에는 ‘살아있는 여성의 복부를 칼로 가르고, 눈을 뽑고, 도끼로 손목을 자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마녀고문실의 광경을 직접보고 그린 화가는 말한다.   


 


“나는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손과 발, 머리통에서 빠져 나온 눈알들, 다리에서 떨어져 나온 발목들. 부풀린 동맥, 천장까지 끌어 올려졌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져칠려고 빙글빙글 회전시키고 머리를 거꾸로 하여 공중에 매달리는 희생자들을 보았다. …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만큼 폭행당할 수 있는가를 목격한 대로 묘사 하면서 이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마녀사냥의 희생양은 누구였나? 1562년에서 1684년까지 남서 독일에서 일어났던 1258건의 마녀처형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마법사의 82퍼센트가 여자들, 무기력한 노파나 하층계급의 중년여인들이 그 지역에서 민중반란이 있을 때마다 희생되었다고 한다.2



혹자는 기독교에서 고문과 마녀들의 화형을 실행했을 정도로 잔인했던 이유를 신약성서 속에 나타난 예수의 언행에 일정 부분 책임을 돌린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려거든 부모,형제, 자매를 버릴 각오를 하라 했고 제철이 아닌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화과를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하게 했으며, 성령을 욕되게 말하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의 말을 남겼다. 이러한 예수의 언행의 상당 부분이 훗날 기독교의 무관용과 잘못된 근본주의 종교관의 제1의 원인이라 지적한다.3



마녀사냥이 시들해지면서 서양은 ‘식민지사냥’(서양 입장에서는 식민지개척이겠지만)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식민지사냥의 길라잡이는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어떤 계급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분쟁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의 가톨릭 선교사례는 피로 물든 최악사례의 하나다. 18세기 이래 2백년에 걸쳐 동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된 결정적인 이유는 ‘조상 제사 금지령’이었다.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에서 서구 제국주의가 함포를 앞세우고 침략할 때 교황청이 제사 금지령을 내린 것은 문화와 종교 차원에서의 제국주의적 행패였다. 이로 인하여 조선에서 1만 명 전후의 무고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교황청의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잘못된 선교정책으로 순교자가 생기자 프랑스 군대를 불러들여 조선을 정복할 것을 요구(황사영 백서사건)했고, 1866년 프랑스함대가 조선을 침략할 때 프랑스신부와 조선인 신자는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수운께서는 서양사람들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말씀하였다.


 


“서양사람들은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고 그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고 하므로 내 또한 그것이 그럴까 어찌 그것이 그럴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수운께서는 당신의 나라가 미국 등 서양을 등에 엎은 왜놈들에게 유린되어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지 못했기에 서양세력을 의심하는 정도였지만,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프리카의 한 지도자4 는 이렇게 말한다.


 


“선교사들이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합시다’라고 해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우리는 성경을,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신과 종교를 조롱하고 비판할 자유



올해 초 프랑스 파리에서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대한 테러를 두고 언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가 우선하는 것인지, 인종차별 금지 또는 종교모독 금지가 우선되는 가치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때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을 핑계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아랍인 테러분자들을 비난하면서도, <샤를리 엡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종교와 관련해서는 한계가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도발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종교를 모욕하거나 놀릴 권리는 없다”라고 하였다. 교황의 이 발언은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어떤 측면에서 전통적인 절대신 관념은 시대착오적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몇몇 인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반면 가장 저질 행위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저질러졌다.”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이지만, 다른 사람의 종교를 모욕·조롱하면 안된다는 것에서 교황 역시 종교라는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종교업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교가 저지른 잔혹한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철학자, 과학자들의 몫이었다. 이들이 제대로 신과 종교를 조롱, 모독, 비판했기에 세상은 그나마 나아졌고, 이를 통해 처량한 신세가 된 ‘한울님’의 권위는 오히려 높아졌고 따라서 한울님은 기력을 조금씩 회복중이다. 무왕불복의 이치다. 잠시 살펴본다.


 


–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기독교는 계시 종교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수많은 우화, 설화, 전설이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계시 종교와 뒤섞여서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부른 종교를 만들어낸 것일까? /존 애덤스



– 구약성서의 신 야훼는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 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유아 때부터 그의 행동양식을 주입받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행위들이 빚어내는 공포에 둔감해졌을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



– 성경은 악을 정당화한다. 성경이 없다면, 우린 지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스미스


–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볼테르 



– 기독교는 야만적인 개념과 가치로 중무장하고 필요하다면 주위의 민족을 야만인이라 단정하고 정복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동한다. 아직 유럽은 불교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불교는 문명의 종말과 피곤함 때문에 생긴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문명의 맹아도 아직 보지 못했다. 기독교는 필요하다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 /니체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보기로 합시다



동학은 종교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동학은 ‘무극대도’ 즉 지극히 커다란 ‘도’라고 했으니, 단순히 ‘종교’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 학문’이기도 하고, 종교일 수 도 있고, 동학하는 사람들은 그 역사가 보여주듯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혁명집단이기도 했다.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꿀 때, 의암성사께서는 이런 점을 가장 고심했다. 동학혁명이후 일진회의 친일행위로 동학은 친일의 오명을 뒤집어 쓴다. 일진회와 동학을 분리하면서 의암성사는 동학이라는 이름 대신 천도교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 동학을 세계 표준에 맞추어 천도교라는 ‘종교’로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그러나 고육지책이었다. 특별히 ‘교정쌍전’을 강조한다. 교정쌍전(敎政雙全), 종교와 정치를 함께 병행해야 온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종교’로 포장하지만 동학창도 이후 45년 동안 이루었던 광제창생의 역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열강 러시아를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조선을 집어삼킨다. 일본의 뒤에는 미국이 든든한 백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의 시류는 일본이었고 미국이었다. 수운께서 ‘순망치한’으로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었고 서구열강의 동네북이었으니, 해월께서 강조한 중원(중국)포덕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방향전환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고, 서양세력을 등에 업은 왜놈들과의 타협이었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저항을 포기했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3.1운동으로 천도교는 저력을 보였다. 계절의 전환기는 항상 어수선하다. 절기는 어김없이 다가오지만 날씨는 절기를 앞서기도 뒷서기도 하니 혼란스럽다. 냉철한 판단은 쉽지 않다. 이런 견해는 어찌 보아야 하나?


 


“1945년 8.15 해방 후 남한청우당의 일부 지도층이 미·소 냉전의 20세기 후반의 시운을 오독했다. 구소련을 배경으로 한 북한체제와 미국 등 서방 세계의 노선에 선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그 시운의 성쇠가 분명했지만 이미 천도교 지도층은 큰 시운의 흐름을 읽을 지도력이 부족하고 미약했다.”5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돋는 해와 지는 해는 보기로 합시다”라고 했다. 어린이들의 부지런함을 강조한 것만은 아닐게다. 중국이 잠자고 있던 150년간 골목대장 노릇을 한 것은 일본이다. 중국은 150년간의 굴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다시 거인으로 돌아왔다. 미국과 일본은 서로 손잡고 중국을 봉쇄하고 대아시아를 건설하려한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것도 그 일환이나, 몽상이고 헛꿈이다. ‘돋는 해’는 중국이다. 동학에서 천도교, 천도교에서 다시 동학으로 전환할 때이다. ‘중원포덕’의 기회이다. 서구의 미개하고 미신적 유일신에 물든 한울님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춘삼월 호시절을 즐길 때이다. 수운께서 노래하셨다.
 
서산에 구름 걷히고 모든 벗 모이리니(雲捲西山諸益會)
처변을 잘못하면 이름이 빼어나지 못하리라(善不處卞名不秀)


 



1 기독교를 “잘 다듬어진 체계적인 미신”이라 한 사람은 마르퀴 드 콩도르세 (1743 ~ 1794. 프랑스 수학자·철학자). 토마스 제퍼슨 (1743-1826. 미국 3대 대통령, 독립선언문의 저자)도 비슷한 표현을 한다. “나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신(신화)들을 살펴보았지만 우리의 특별한 미신(기독교)이 다른 것에 비해 더 낫다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미신들은 한결같이 우화와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2 마녀사냥에 관한 것은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를 참고
3 버트런트 러셀(1872-1970,영국의 수학·철학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위의 ‘나를 돌봐줄 큰 형님’이란 표현 역시 러셀의 것.
4 조모 케냐타 (1889-1978. 케냐 초대 대통령)
5 신일철, 신인간 (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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