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 살림의 ‘전환’운동가, 주요섭 – 폭주하는 설국열차의 창밖을 보라!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모심과 살림의 ‘전환’운동가, 주요섭



 


– 폭주하는 설국열차의 창밖을 보라!


 


임소현| 본지 편집장


 


인터뷰를 하러 주요섭 사무처장의 일터인 장충동 한살림연합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마침 꽃샘추위로 바람이 불고 몹시 추운 날이었다. 사무실을 구경하고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인터뷰하기 좋은 방이 있는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인터뷰에는 마침 철학자 김용휘님과 본지 편집위원인 도연명님이 합석하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소현(이하 임) : 필자에게 사인 받으러 여기 『전환이야기』 책 가져왔어요. 네임팬도 준비했고요.^^



주요섭 : 쑥스럽군요.^^


 



주요섭 사무처장은 책 첫 장에 ‘나비혁명’이라고 쓰고 “임소현 님께 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임 : 아! 제가 앞으로 출간하려는 동학 소설도 나비가 모티브가 되는데, 공교롭네요?



주요섭 : 그런가요? 나비가 애벌레에서 나비로 탈바꿈하듯, 전환(transformation)이 절실한 시기라서요. 지구촌이나 한국사회나 ‘애벌레의 삶’에서 ‘나비로의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장에서 성숙으로, 애벌레의 경제에서 ‘나비경제’로, 물질적 풍요에서 정신적·사회적 풍요로의 전환이 필요하단 말이죠.


 


 


임 : 그러한 전환의 열망이나 필요성이 ‘아니다’라는 깨달음, 즉 ‘각비(覺非)’에서 출발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각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주요섭 : 각비라는 말 자체는 중국 동진시대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처음 나오고, 수운 최제우가 오랜 방황 끝에 귀향을 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이때 각비는 오랜 체험과 사유 끝 깊은 성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각비는 “이렇게는 아니다.”라고 하는 생명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생명적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 또는 초의식적 ‘저항’인 것이죠.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출산율 저하도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온전하게 키워낼 수 없다는 생명의 본능적 자각, 즉 각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장 예민한 생명감각을 지닌 청소년들이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절망과 공포 속에서 죽어갔던 현실….


 


 


임 : ‘세월호 사건’ 말고 각비의 사회적 경험들이 또 있었나요?



주요섭 : 역사적으로 보면 반외세투쟁, 반독재투쟁도 각비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만, 최근엔 귀농귀촌, 힐링, 협동조합 열풍도 각비의 결과인 듯합니다. 이를테면 도시적 삶, 물질적 삶, 경쟁적 삶에 대한 각비에서 비롯된 생명의 사회적 응답인 것이죠. 패스트 라이프에 대응해 슬로우 푸드, 슬로우 패션, 슬로우 시티, 슬로우 라이프가 뜨는 것도 이를테면 사회적 각비의 한 모습이죠.


 


 


임 : 근래 한국에서의 전환운동의 시발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주요섭 : 사회적 운동으로써의 전환적 탐색은 80년대 초, 원주의 장일순 선생과 김지하 시인에 의해 작성된 한 문서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문명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밝힌 바 있었습니다. 이후 1989년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를 내걸고 ‘한살림선언’이 발표됩니다. 여기에서는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새로운 양식의 창조’라는 말로 의식의 전환과 삶의 전환, 나아가 문명의 전환이 천명되었습니다. 


 


 


임 : 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주요섭 :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환마을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고 문명전환 담론도 구체화되고 있습니다만, 사회운동사적으로 볼 때 68혁명이 출발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 서유럽에서 생태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이 확산되고 환경, 평화, 여성 등 이른바 신 사회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넓은 의미에서는 이런 흐름들이 나중에 본격적인 전환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 : 그렇다면, 전환운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주요섭 : 책의 1장 제목으로도 썼습니다만, ‘깨어나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비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 물질중독, 성장숭배에서 깨어나는 것이 전환의 출발점입니다. ‘나는 주체 너는 대상’이라는 존재론적 오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다 알아’라고 하는 인식론적 오만으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의식의 전환, 혹은 세계관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임 : 작년 12월에 출범한 <생명학연구회>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도 창립회의에 갔었지만, 생명의 정의도 그렇고, 생명학연구회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모르겠거든요?



주요섭 : 생명학연구회도 아직은 확정된 이름은 아닙니다만, 그 뜻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인간학이나 사회학이 아니고 ‘생명학’, 즉 생명에 대한 배움이란 말이 붙은 까닭을 생각해 보았으면 하고요. 나아가 그 배움이란 결국 생명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서자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로병사의 ‘생애’에 갇힌 생명이 아니라, 사회로 확장되고 지구생태계로 관계하고, 우주로 존재하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한살림선언에서는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임 : ‘한살림선언’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생명운동은 이 시대 전환운동이고, 그것은 동학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도 썼다시피 ‘전환’이 곧 개벽운동이라고 하셨는데, 오늘의 전환운동이 수운 해월시대와는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분명 달라야만 하고요. 그러자면 수운 해월시대 개벽은 어떤 의미였으며, 결국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환운동이 동학에서의 개벽운동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주요섭 : 해월선생은 개벽의 때가 언제 오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길바닥에 비단이 깔리고 산이 검어지고 만국이 교역을 할 때’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지구적으로 물질문명이 충분히 성숙했을 때라고 해석해 봅니다. 이제 공동체적 삶, 생태적 삶, 영성적 삶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터넷과 정보기술 등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는 조건, 모든 존재가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성장과정과 고치라는 과도기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행, 생활, 정치 등 활동의 모든 부문에서 차원변화가 필요합니다.


 


 


임 : 현시대 개벽운동에서 ‘음 개벽’을 이루자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 좀더 질문해보겠습니다. ‘음 개벽’은 특히 강증산에 의해 주창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증산교 계열에서조차 여성이 중심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에도 여러 의견이 분분한 것 같구요. 여성이 진정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요섭 : 사회적 조건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제 생각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여성 스스로가 주인공이라는 자각입니다. 그런데 자각의 내용이 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성들의 자각이 네거티브 자각이었다면 이제 포지티브 자각으로의 심화, 혹은 해방의 관점에서 창조의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질풍노도의 여성운동에서 성숙한 여성운동, 얕은 여성운동에서 깊은 여성운동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음개벽은 하나의 메타포입니다. 그러나 메타포가 현실을 만듭니다. 세계관이 세계를 창조합니다. 남성성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국가, 시장, 가족, 생활 등의 재균형이 필요합니다. 


 


 


임 : 『전환 이야기』가 작금의 시대 요청에 부응한 ‘전환’에 대한 핵심들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거대 담론들을 열거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전환은 가치, 생활, 체제에서의 중심이동이라고 했고, 새로운 사회=공동체, 생태계, 영성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동체, 생태, 영성, 이것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거대담론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주요섭 : 그런 점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거대담론이라고만 생각지 않습니다. 공동체, 생태, 영성은 각각 사회, 자연, 생명에 대한 세 가지 각성에 기초합니다.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공동체로써의 사회로, 자원이 아닌 살아있는 시스템으로써의 자연으로, 그리고 마지막이 이것이 중요한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은 현실을 바꾸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적 삶과, 생태적 삶과 영성적 삶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슬로우 라이프 운동도 그 중 하나이고, 이러저러한 공동체, 힐링 수행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과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창조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임 : 저에겐 차라리 마지막으로 제시한 나들 살림마당, 전환의 플랫폼이 훨씬 신선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요. 저희 개벽신문이 지향하는 점이기도 하구요. 사실 이제부터 전환운동, 개벽운동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작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전환운동의 다양한 시도와 실천이 자유롭게 오고 갈수 있는 전환의 플랫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주요섭 : 정보기술 분야에서 플랫폼은 범용 운영체계를 말하고, 흔히 기차가 오고가는 정거장을 떠올립니다만, 저는 그냥 ‘마당’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와 사람과 꿈과 메시지가 오고가는 마당 말입니다. 먼저 삶의 전환, 사회의 전환의 이상과 실천을 나누는 미디어플랫폼이나 공론장이 절실합니다. 개벽신문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잘 되면 학습플랫폼, 연구플랫폼 등도 만들어지는 때가 오겠지요.


 


 


임 : 마지막으로 주선생님이 『전환이야기』를 통해 꼭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주요섭 : “폭주하는 설국열차의 창밖을 보라.” 1장 첫 번째 글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꼬리칸과 머리칸으로 구획된 세계관, 이를테면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상극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삶과 세계를 창조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차원에서 보면 좌도 우도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에 주목해야 합니다. 애벌레의 차원에서 나비의 차원으로의 전환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의 비전은 이미 우리 안에 열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이매지널 셀(imaginal cell)이라고 하는, 우리 안의 상상하고 있는 세포가 그것을 상징합니다. 헤겔의 표현을 빌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다.”(헤겔은 ‘이성’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理想)’은 이성과 감성과 영성의 차원을 포함하는 깊은 마음의 결정이라고나 할까….)


 


 


임 :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극단적 대립을 일삼으며 반생명적 성장 논리에 매몰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주 선생님의 『전환 이야기』를 통해 많은 분들이 깨어나 전 우주 존재가 하나이고 서로 의존 관계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생명운동으로 전환되길 기원합니다.



주요섭 : 저 역시 이렇게 시간 내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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