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내는, 잊지 말아야 할 일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2호(2015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잊고 지내는, 잊지 말아야 할 일


 


권복기| 본지 편집위원·(주)롤링스토리CEO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 현대인



우리는 많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 너무도 복잡하게 얽힌 현대사회가 많은 것을 기억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번 적어보자. 주민번호, 핸드폰, 집 전화, 사무실 전화, 사번, 은행계좌, 가족 생일, 제삿날, 사무실 전자키 비밀번호 등등. 살면서 이 정도는 외울 수 있다 치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짝지어진 기억거리들도 너무 많다. 네이버, 다음, G마켓, 옥션, 알라딘, 교보문고, G메일, 공인인증서, 철도카드, 아시아나항공, CGV… ‘내 것’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일과 관계를 위해 만나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은 물론 그 사람과 소통을 위해 기억해야할 것들도 적지 않다.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알고 있지만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회피한다.



대표적인 것이 죽음이다. 우화등선의 전설을 예외로 하면 지구를 다녀간 사람 가운데 죽지 않았다는 사람의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이 있고, 장자에 등장하는 팽조가 800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영생을 누렸다는 사람에 대한 기록은 없다. ‘집 나서면 황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바로 그것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위키백과)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반드시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죽음을 기억해야 죽음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99.999999999%의 사람은 죽음 이후를 알지 못한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그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두려움은 그로부터 나온다. 죽음이 두려우니 삶에 대한 집착이 커진다.



다행히 죽음에 대해 알려준 분들이 있다. 불교, 기독교, 선도, 요가 등의 성자들이 그런 분들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살았던 스웨덴의 엠마누엘 스베덴보리처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직접 보고 기록으로 남긴 이들도 있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죽음 이후에는 또 다른 삶이 펼쳐지며, 우리는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사는 존재이고, 지구에서의 삶 자체는 찰나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몸은 비록 썩어서 흩어지지만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는 또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로 따지면 그 무언가는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일 것이다. 나는 반야심경에서 얘기하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하는 무엇을 그렇게 이해한다.



죽음 뒤의 심판을 얘기하는 기독교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심판이 있으려면 그 대상이 존재해야 하므로 죽음이 끝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장 19~21절)


 


 


모든 존재를 하늘처럼 섬겨라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고민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로 이끌어 준다. 불교 간화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인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태어나기 전에 어디서 왔으며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 것인가?



대부분의 종교는 그에 대한 답을 갖고 가르침을 준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적고 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6~12절)


 


불가에서는 우리 안에 부처의 씨앗이 있으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고유의 수행법인 선도나 동양의 요가에서도 우리 안에 하늘이 있다고 했다. 진인, 진아, 금선, 참나, 하늘사람 등 무엇이라고 불러도 그 말이 가르키는 바는 하나다.


동학에서는 보다 분명하게 모든 존재 안에 한울이 있으니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하늘처럼 섬기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니 중요한 가르침 대신 현세구복과 신비한 현상에 매달린다. 자신이 하늘인데 그를 잊고 주인이 아닌 종의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 믿는다면 걱정할 일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에서 믿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과정을 일컫는 말에 믿음을 넣어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했고,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가운데도 믿음은 소망, 사랑과 함께 있다.


 


 



 


 


 


 


권복기님은…
1993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한겨레신문사 자회사인 웹툰 수출회사


(주)롤링스토리 CEO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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