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신문> 제호를 바꾸려 합니다(3)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개벽신문> 제호를 바꾸려 합니다(3)


 


임소현ㅣ본지 편집장


 


<의암성사법설>에서 찾은 개벽의 의미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받아보니 본지의 편집인이신 최명림 선생님이셨다. 멀리 지방에 계셔서 한 번도 뵙지 못했다. 거동도 불편하시다고 했다. 그런데 우연히 ‘제호를 바꾸려 합니다’ 기사가 눈에 띄었고, 부랴부랴 전화를 거신 거다.



“‘개벽’이란 제호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는 아나요?”
“네…. 일제시대 만들어진 선구적인 월간 잡지의 제목이었죠….”
“개벽신문의 ‘개벽’은 의암성사가 설법하신 법설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청신간결(淸新簡潔)’의 요체를 담고 있으며, 시(侍)·정(定)·지(知)·성령(性靈)으로 정신개벽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10%도 실천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뜻을 받들어 ‘개벽’의 정신을 이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하시고 최 선생님이 전화를 끊으셨다. ‘개벽’ 제호가 갖고 있는 역사적 중요성, 담고 있는 심오한 철학까지 생각해볼 때 제호를 바꾼다는 것의 난해하고 심각한 무게가 가늠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확인하고자 『천도교경전』을 꺼내들었다. 의암성사 법설 중에서 「인여물개벽설(人與物開闢說)」을 폈다.


 


개벽이라 함은 천추지함(天墜地陷; 하늘이 떨어지고 땅이 꺼짐)하여 혼돈일괴(混沌一塊; 혼돈한 한덩어리)로 합하였다가 하늘과 땅(子丑)의 양단으로 나뉨(分)을 의미함인가. 아니다. 개벽이란 부패한 자를 맑고 새롭게(淸新) 복합한 자를 간단하고 깨끗하게(簡潔) 함을 칭함이니, 천지만물의 개벽은 공기로써 하고 인생만사의 개벽은 정신으로써 하나니 너의 정신이 곧 천지의 공기니라. 지금 그대들은 불가능의 일을 생각지 말고 먼저 각자 고유의 정신을 개벽하면 만사의 개벽은 다음 차례의 일이니라. 그러나 정신을 개벽코자 하면 먼저 자존심을 모실 시(侍) 자로 개벽하고, 자존심을 개벽코자 하면 먼저 의구심을 정할 정(定) 자로 개벽하고, 의구심을 개벽코자 하면 미망념(迷忘念)을 알지(知)자로 개벽하고, 미망념을 개벽코자 하면 먼저 육신관념을 성령으로 개벽하라. (중략)
천지의 기수로 보면 지금은 일 년의 가을이요, 하루의 저녁때와 같은 세계라. 물질의 복잡한 것과 공기의 부패한 것이 그 극도에 이르렀으니, 이 사이에 있는 우리 사람인들 어찌 홀로 편안히 살 수 있겠는가. 큰 시기가 한번 바뀔 때가 눈앞에 닥쳤도다. 무섭게 죽이는 가을바람이 쌀쌀하고 쓸쓸하게 서쪽으로부터 동쪽에 불어오니, 우거졌던 푸른 초목이 아무리 현재의 모양을 아직 보존하고 있지마는 하룻밤 지나면 산에 가득 차 누렇게 떨어지는 가련한 서리 맞은 잎뿐이리니, 이제 이 유형의 개벽을 당하여 정신상으로 무형의 개벽을 하지 않으면, 천하로 옷을 입고 우주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반을 가는 그 사람이라도 한번 가지에서 떨어지면 문득 적막한 서리 맞은 잎과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이 사람과 물건이 개벽하는 때이니라.


 


 


지금 우리는 과연 개벽하였는가



이 법설은 1918년 8월 14일 지일(地日; 해월 최시형 선생이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 기념일에 두목들과 교구장들을 서울 가회동 저택에 초대한 자리에서 의암 손병희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인여물개벽’이란 사람과 물건의 개벽을 말하는 것으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함께 개벽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암성사법설』을 여러 번 되풀이 읽고 그 의미에 대해 여러 날에 걸쳐 숙고해 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거의 백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의암 손병희 선생의 말씀이 아직도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유효함에 놀라움을 감출 길 없다.



의암 손병희 선생이 처음 이야기하던 때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개벽하였는가? 이 질문에 누구라도 아직 ‘개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부패하고 혼란한 지금이 시대, 우리는 ‘개벽’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개벽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개벽이 이루어질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개벽’의 논의가 필요하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에 가장 시급한 것이 ‘정신개벽’이다. 정신을 개벽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



지금의 <개벽신문>이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갖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 제호를 바꾸려 하는 것인가?



그것은 “‘개벽’을 개벽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앞서(지난호)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개벽’이란 단어가 이제는 낡고 구시대적이고, 더 나가서는 증산도의 ‘개벽’과 혼동하기에 이르기까지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개벽은 더 이상 100년 전 ‘개벽’이어서도 안 되고, 수운 선생의 ‘다시 개벽’의 정신을 외골로 이어받았다는 증산도의 개벽이어서도 안 된다. 물론 천도교인들만의 개벽이어서도 안 될 것으로 본다.


 


 


지금은 한시바삐 미몽에서 깨어나 정신개벽을 이루어야만 하는 시기



무분별한 개발과 남획으로 생명의 터전인 대지가 신음하고 있으며, 생명의 원천인 물과 공기가 오염되어 더 이상 마음대로 숨 쉬고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 부익부 빈익빈으로 소수 자본 권력에 의해 가난과 절망의 나락에서 죽음에 이르는 무수한 생명들에 속수무책인 지금. 무한 성장, 무한 에너지가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고 무서운 핵 사고나 유전자조작의 실상은 은폐한 채 일부 독점 기업과 관료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열중하는 지금. 갑의 폭력과 피라미드 위계질서 속에서 다수의 약자인 을은 영원히 억압과 속박의 사슬에 매여야하는 가부장제 체제인 지금. 세계 단 하나 남은 분단국이면서 핵으로 포위되어 있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휴전 상태이면서 전쟁지휘권을 다른 나라에 반납한 한국에 사는 지금!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한시바삐 미몽에서 깨어나 정신개벽을 이루고 대동단결해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 온 생명과 존재들이 영원히 멸망에 이를 날이 곧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본지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영적 각성을 하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너도 나도 힘을 합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기여하며 앞장서는 매체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제호는 첫째, 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중적인 제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미래는 젊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최대한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원론에 반대하여 다양성과 참신성을 최대한 살리고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복고풍, 특정 집단이나 기호에 편향된 것, 너무 관념적이거나 어려운 말 등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디지털 시대를 맞아 종이매체를 지양하고 인터넷, SNS 등의 디지털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갈수록 제호 찾기가 어려워진다.


 


 


다음은 본지의 편집위원인 김성진님이 보내온 제호에 대한 의견이다;



“새로운 제호로 ‘움’을 제안합니다. 움은 1. 새로 돋는 싹 2. 추위와 비바람을 막게 한 곳. 겨울에 화초, 채소 등을 넣어 두는 곳으로 쓰인다. 3. womb 자궁, 사물이 발생 성장하는 곳. 이런 의미들을 갖고 있는데, 매우 신선하고도 앞서가는 제호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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