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섹스의 기원(3) – 성욕과 폭력은 어떤 관계인가?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플라토닉 섹스의 기원(3)



– 성욕과 폭력은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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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출판인·본지 편집위원


 


지구상의 어떠한 동물도 인간처럼 섹스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성욕이 유별나게 강한 것으로 알려진 보노보조차 인간을 따라오지 못한다. 짝짓기 기간에만 짧고 단속적인 섹스를 하는 여타의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출산과 무관하게 섹스 그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심지어 출산을 성생활의 성가신 걸림돌로 여기기도 한다). 인간처럼 한 번의 출산을 위해 평균 수백 회의 성교를 하는 동물은 없다고 봐도 된다.


 


 


‘동물적인’ 섹스의 아이러니



섹스를 출산과 자기복제의 도구로 해석하는 진화론자들의 견해는 여기서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엄밀히 말해 생식을 위해서 하는 섹스는 인간적이기보다 동물적인 것이다. 만일 어떤 동물이 섹스 그 자체에 탐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성향에 ‘동물적’이란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붙이곤 있지만), 그것은 전혀 동물적이지 못하며 상당히 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섹스에 무관심한데다 후손을 남기기 위해 어쩌다 한 번씩 잠자리를 갖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동물적인’ 섹스에 가깝다. 섹스에 대한 인간의 충동은 통념과 달리 전혀 동물적이지 않으며, 도구나 언어의 사용처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속성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섹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된다면 병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된다.


 


 


육체적 쾌락의 박탈은 전쟁, 폭력과 밀접 연관



발달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코트(James Prescott)는 육체적 쾌락이 폭력과 양자택일의 관계, 즉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억제하는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머니와 유아의 신체 접촉시간, 다른 성인들의 신체 접촉량, 사춘기 성행동의 허용도 등에 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프레스코트는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육체적 쾌락의 박탈이 전쟁이나 폭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육체적 결속을 방해하지 않거나 사춘기의 성 표현을 금지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개인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도 훨씬 낮은 수준의 폭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섹스를 가장 억압했던 시대는 언제였을까? 1만 년 전에 농경이 시작됐다곤 하지만 전 지구 차원에서 급격히 진행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소수의 거점을 중심으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갔으나, 전파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못했으며 게다가 농경이 시작됐다고 해서 곧바로 일부일처제가 따라붙는 것도 아니었다. 수십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의 본성이 그처럼 쉽사리 변할 리는 없다. 앞에서 예로 든 모수오족처럼 농경을 하면서 난혼의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종족도 아직까지 존재한다. 로마의 카이사르가 남긴 갈리아 원정기에는 “열 명이 넘는 남자들이 아내를 공유하는 일도 있다.”며 개탄스러워 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원전후까지도 영국에 난혼 풍습이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습속은 심지어 기독교의 엄격한 지배를 받은 중세 유럽에서도 완전히 제거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구가하는 교황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교황 알렉산드르 6세(1492~1503)는 수많은 정부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본인이 인정한 것만) 8명이나 됐다. 이 사람 자신이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사생아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정적들이 날조한 낭설에 불과하지만, 인정된 사실들만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의 관점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성을 죄악시했던 중세 기독교권의 사람들조차 금욕의 단계에 이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성의 사유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금욕주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였다. 당시 영국의 관행과 사조는 곧바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유럽 국가들도 금욕주의를 따르게 됐다. 성욕의 억압이 유럽과 북미에서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시대에는 공개 석상에서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섹스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심지어 여성의 다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다리(legs)’ 대신 ‘사지(limbs)’란 표현을 쓸 정도였다. 피아노 다리까지 천으로 가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위행위조차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위’로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억압된 성욕의 병적인 분출



이렇게 숨 막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아마도 워커홀릭이 되는 길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경기가 좋지 않아 실업자가 늘어나고 워커홀릭이 되는 길마저 차단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인되고 강제된 대규모의 폭력, 즉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온 세상 사람들이 억압된 성욕의 굴레에 빠져 있다면 아마도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의 금욕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약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것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억압적인 성윤리가 몸에 밴 인간들이 성장해 기득권층이 되면서 부와 권력의 쟁취로 성욕을 대리 만족하는 병리적 문화가 자리 잡는다. 이런 문화권 속의 인간들은 욕망이 사그라질 줄 모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부를 일궈도 만족을 못 느끼며, 소시민들의 푼돈마저 우려먹으려 안달을 한다. 게다가 한번 이렇게 자리 잡은 문화는 쉽사리 바뀌지도 않는다. 20세기 들어 병적인 억압이 풀렸다곤 하지만 잔재는 남는 법이다. 약간의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빈부격차로 인해 병리현상에 빠진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 거대 집단을 이루게 되면 그 파괴적인 에너지를 내부에서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외부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분출을 시키게 된다. 이것이 결국 전쟁인데 이때 상대편 여성들에 대한 강간은 거의 필수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폭력성에 기인한 비극이 아니다. 유구한 인류 역사에서 극히 최근에 일어난 병리현상일 뿐이다. 전쟁은 모든 병리현상의 거대한 집약체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생물과 사물의 중간 존재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방금 설명한 병리현상의 중심엔 소외된 남성 집단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성의 성욕은 성욕이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담론에서 여성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유인과 노예의 중간, 심한 경우엔 생명체와 사물의 중간쯤에 속하는 존재로 취급된다. 감금과 감시의 대상일 뿐 인격적으로 어떤 고충을 갖는지, 더 나아가 성욕이 제한받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등은 아예 고려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근대의 유럽에선 여성에게 성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되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산부인과 의사였던 윌리엄 액튼(William Acton)은 “최상의 엄마, 아내, 가정의 관리자들은 성적 방종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여자는 자신을 위한 성적 만족은 거의 바라지 않는다.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그를 기쁘게 하는 일만 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러한 관점은 다윈을 비롯한 진화론자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심리학자 도널드 시몬즈(Donald Symons)는 『인간 성생활의 진화』(1979)에서 “모든 사람에게 성교는 여성이 남성에게 바치는 서비스나 호의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침팬지 vs 보노보



 



남성의 성욕은 억압이 됐지만, 여성의 성욕은 존재 자체가 부정됐다. 그러한 사회적 억압의 극단에서 대규모의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병리현상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어떤 설명을 해왔을까. 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란 식의 설명을 해 왔다. 인간은 태초부터 끊임없는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리현상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교육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진화론자들도 과학자들인데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다. 그들이 제시한 근거는 바로 침팬지였다.



보노보는 연구가 가장 안 된 포유류 중의 하나이다. 한 때 침팬지의 아종으로 여겨져 피그미 침팬지로 불리기도 했지만, 행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인간의 DNA는 침팬지와 거의 비슷하다. 약 1.6%만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이는 인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의 차이보다 더 작다. 침팬지는 진화론자들에게 무척 반가운 동물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들은 권력 지향적이고 질투심이 많은데다,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살해, 조직화된 전쟁, 강간, 영아살해도 한다. 다윈주의자들은 침팬지의 행동에서 인간의 폭력성에 관한 진화론적 증거를 발견했다고 믿었다. “선사시대의 인간에겐 침팬지와 같은 폭력성이 존재했으며, 그것이 전쟁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우리는 500만년 동안 줄기차게 지속된 치명적 공격 습관의 생존자이다.”(리처드 랭엄과 데일 피터슨)



그러나 다윈주의자들은 보노보의 존재를 간과했다. 보노보도 인간과 별 차이 없는 DNA를 지닌(침팬지와 거의 비슷함) 영장류 동물이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깊은 정글 속에서만 살기 때문에, 침팬지에 비해 연구가 훨씬 늦게 시작됐다. 이것이 안타까운 이유는 보노보의 행동 양식이 침팬지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침팬지가 인간의 기원에 관한 홉스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동물이라면, 보노보는 루소의 관점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보노보는 암컷이 주도권을 잡으며, 폭력성이 거의 없고 갈등과 긴장을 섹스로 해소한다. 암컷 보노보는 수컷 침팬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권력을 행사한다. 힘으로 윽박지르는 대신 보살핌으로 존경을 얻으며 리더십을 발휘한다. 따라서 수컷 보노보는 복종적인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수컷 침팬지들보다 처지가 오히려 낫다.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우리가 만일 침팬지보다 보노보를 먼저 알았다면 ‘초기 인류는 여성 중심 사회였으며 섹스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고, 전쟁은 드물거나 없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침팬지가 정말 그렇게 폭력적인 동물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침팬지 사회를 처음 연구한 사람은 그 유명한 제인 구달(Jane Goodall)인데, 구달이 보고한 침팬지의 폭력성은 자연 상태에서 관찰된 것이 아니다.


 


 


침팬지에 투사한 인간의 본성



제인 구달은 탄자니아의 곰베에서 처음 4년 동안 행한 관찰에서, “침팬지들이 인간보다 훨씬 평화롭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구달과 그녀의 학생들이 캠프 주변으로 침팬지들을 유인해 관찰을 보다 쉽게 하려고 매일 수백 개의 바나나를 공급했을 때 상황이 일변했다.



일정 시간에만 열리는 콘크리트 박스 안의 먹음직스러운 과일 더미가 침팬지들의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좌절한 침팬지들은 박스를 부수기 시작했다. 구달은 수년 뒤에 이 시기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먹이를 주기 시작한 뒤 침팬지들의 행동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들은 과거에 했던 것보다 더욱 자주 큰 집단으로 모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캠프 주변에서 잠자고, 아침 일찍 시끄러운 무리를 이루어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어른 수컷들이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싸움이 있었을 뿐 아니라 많은 침팬지들이 매일 여러 시간 동안 캠프 주변을 서성였다.”



어이없게도 침팬지의 폭력이 바나나 박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 제기는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무시되었다. 침팬지의 폭력성이야말로 이들이 찾아 헤맨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 귀한 증거가 기각되는 것을 아무도 원치 않았던 것이다.



1991년에 구달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한 영장류 학자 마가렛 파워(Margaret Power)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서로 싸워 얻을 만한 대상이 아무 것도 없다면 왜 싸우겠는가? 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바나나를 제공하기 전까지 식량은 정글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침팬지들은 매일 먹을 것을 찾아 널리 분산된 상태로 살았다. 침팬지는 열매를 발견하면 종종 다른 침팬지들을 부른다. 숲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은, 콘크리트 박스의 바나나 얻기와 전혀 다르다. 어느 한쪽이 이익을 얻는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매일 같은 장소에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존재하지만, 그 양이 제한적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침팬지들은 점점 더 공격적이고 시끄러운 무리가 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침팬지들 사이에서 지금은 유명해진 전쟁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침팬지들은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싸움의 대상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규칙적이고 집중적으로 제공되는, 그러나 제한된 식량이 바로 그것이었다. 갑자기 그들은 제로섬의 세계 속에 살게 됐다.



그러나 곰베가 아닌 다른 장소, 예를 들어 코트디부아르의 타이에서 관찰된 침팬지들은 달랐다. 영장류 학자 크레이그 스탠포드(Craig Stanford)에 따르면, 타이의 침팬지들은 곰베처럼 권력 지향적이 아니며 평등하게 고기를 분배한다고 한다. 


인류도 마찬가지로 가진 게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았으므로, 전쟁을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학자 패트릭 놀란(Patrick Nolan)은 수렵채집 사회나 단순한 원예경제 사회보다, 발전된 원예경제 사회와 농업사회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는 선사 시대의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수천 점의 유물 중에 무기가 단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류학자 더글라스 프라이(Douglas Fry)도 『전쟁을 넘어서』에서 보편적인 전쟁에 관한 홉스주의적 견해를 논박한다. 프라이는 “‘항상 전쟁이 존재해 왔다’는 믿음은 그 문제에 대한 고고학적 사실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썼다. 인류학자 레슬리 스폰셀(Leslie Sponsel)은 “전쟁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은 전쟁이 선사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드물거나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영국의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아트(James Mellaart)는 카탈 후유크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를 발굴한 결과, 가옥의 크기나 그 안의 내용물, 무덤 속의 부장품 등에서 계급의 차이를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초기의 농경 사회는 평등했던 것이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위계질서와 폭력성이 분출



정리를 해보자. 진화심리학자들은 침팬지 같은 유인원들이 원래 폭력적인데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그 폭력성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유인원들의 폭력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그 보잘 것 없던 폭력성마저 한 단계 순화되었다. 인간은 유인원보다 훨씬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그런데 1만 년 전에 농경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위계적인 사회질서가 구축되었고, 유인원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폭력성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실에 근접한 시나리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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