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하늘로 받드는 세상을 꿈꾼다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너도 나도


 


하늘로 받드는 세상을 꿈꾼다


 


박흥선| 서울 경동고 교사


 


 


성적이 권력이 되는 교육 현장



갈수록 신자유주의의 자본과 권력의 횡포가 심한 요즈음 학교 현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어린 학생들에까지 그 폐해가 번지고 있다. 몇 년 전 반에서 1등을 하는 학생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다. 수련회 갈 조를 짤 때 은근히 한 친구를 왕따시키려 하고, 수시로 청소할 때 사라지는 순발력을 발휘해 속을 끓이게 했던 녀석에게 반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리고 청소도 같이 하라는 얘기를 한 끝이었다.



“샘, 대학 간 선배가요, 1등급 아닌 아이들과는 말도 섞지 말랬어요.”



어느새 성적도 권력이 되어 못된 어른들의 행태를 닮아가는 아이와 수없이 면담을 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으나 이미 굳어진 생각을 바꾸게 하기에는 역부족을 느꼈다. 성적만이 살 길이라고 몰아치는 부모와 교사와 사회 환경 속에서 수학과 영어 문제는 기계처럼 척척 잘 풀었으나 욕설 없이는 친구들을 대하지 못하고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야비한 말을 멈추지 않아 친구들을 불편하게 하는 학생도 보았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꾸려갈 세상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해 봄 오전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새로운 소식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샘, 세월호라는 배가 물에 빠졌는데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 태운 배래요.”



이후 점점 더 아이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던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고 선체는 물속에 잠겨서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경이다. 현대 문명으로 해결되지 못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가 싶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작가와 관련된 시대 배경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이야기를 하게 된다.


 


“서시를 쓴 윤동주는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의 후쿠호카 형무소에서 죽었단다. 왜 그랬을까?”


 


로 말문을 열었다. 저항시인과 식민지 시대, 마루타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설을 시대적으로 고전소설과 현대소설로 나누는데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나누게 된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생활도 바뀌고 글 쓰는 형태도 바뀌게 되지. 몇 년에 일어난 일이지?”



아이들은 “어, 몇 년이더라.” 하면서 몇 번을 갸우뚱거리다가 반에서 몇 명 정도는 맞추기도 한다.



“그래, 1894년. 맞아. 그런데 그 해에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났는데 무슨 일이었을까?”



이번에도 아이들은 한참을 갸웃거리다가 힌트를 주고서야 몇 명 정도 대답을 한다.



“동학농민운동이요.”



몇몇 역사마니아를 제외하고 역사는 다섯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맞추면 안다고 해 주는 오지선다형의 산물로 취급된다.


 


 


해월선생의 삼경사상



우연한 기회에 동학 소설을 쓰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동학에 대해 강의를 듣고 답사를 하였다. 시천주, 사인여천, 유무상자, 삼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두 갑자 전에 언급된 그 말들의 깊은 의미가 현대에도 얼마나 놀라운 혜안이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인간은 하늘을 모신 존재이니 모든 인간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말은 양반과 상놈의 신분과 남녀의 차별이 존재하던 조선 후기에 얼마나 천지개벽할 일이었겠는가? 조선에서 태어나 하늘로부터 도를 받았으니 ‘동학’이라고 명명한 자주적인 발상, 있는 자와 없는 자들이 서로 돕는 유무상자의 정신, ‘접’이라는 수행 공동체 조직은 정신적 혁명의 발현이었다.



깨달음을 얻고 동학의 정신을 알리던 수운이 유생들의 상소로 처형되고 제자 해월은 무려 38년간 쫓기는 신분이면서도 도를 계승하여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삼경사상이 해월로부터 나온다.



“사람은 첫째로 한울을 공경해야 하느니라. 한울을 공경하는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니, 왜 그러냐 하면 한울은 진리의 중심을 잡은 것이므로 그렇다. 그러나 한울을 공경함은 결단코 빈 공중을 향하여 상제를 공경한다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을 공경함이 곧 한울을 공경하는 도를 바르게 아는 길이니라. 사람은 한울을 공경함으로써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알게 될 것이요, 한울을 공경함으로써 모든 사람과 만물이 다 나의 동포라는 전체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요, 한울을 공경함으로써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과 세상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한울을 공경함은 모든 진리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움켜잡는 것이니라.”


 


“둘째는 사람을 공경함이니 한울을 공경함은 사람을 공경하는 행위에 의지하여 사실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니라. 한울만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함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이치는 알되 실지로 종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으니, 도 닦는 사람이 사람을 섬기되 한울과 같이 한 후에야 처음으로 바르게 도를 실행하는 사람이니라. 도인집에 사람이 오거든 사람이 왔다 이르지 말고 한울님이 강림하셨다 이르라 하셨으니, 사람을 공경치 아니하고 귀신을 공경하여 무슨 실효가 있겠느냐. 어리석은 풍속에 귀신을 공경할 줄은 알되 사람은 천대하나니, 이것은 죽은 부모의 혼은 공경하되 산 부모는 천대함과 같으니라. 한울이 사람을 떠나 따로 있지 않는지라, 사람을 버리고 한울을 공경한다는 것은 물을 버리고 해갈을 구하는 자와 같으니라.”


 


“셋째는 물건을 공경함이니 사람은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최고 경지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물건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천지기화의 덕에 합일될 수 있느니라.”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한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해월의 삼경사상은 나에게 엄청난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두 갑자를 지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말이 아닌가. 한 마디도 덜어낼 수 없고 더할 필요도 없는 실천의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있다. 현재의 난제를 푸는 열쇠의 역할, 바다를 항해하는 배로 말하면 키와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메시지다. 두 갑자가 지난 현대사회의 모습이 조선시대의 그 때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120년 전 한반도는 청일전쟁의 싸움터였고 미국과 영국, 러시아, 독일과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동아시아 전쟁에 휘말린 조선의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에 바빠 백성들을 지킬 여력이 없었다. 개항 이후 자본의 힘을 빌려 밀려오는 외세에 조선의 경제는 힘없이 스러지고 그들의 터무니없는 강권과 배상금 요구에 백성들은 허리춤을 졸라매야 했다. 동학도들이 1892년 공주집회에서 충청감사에게 제출한 의송단자는 당시의 어려움을 상상하게 한다.



“왜국 상인은 각 항구를 통행하며 무역의 이익을 제멋대로 하여 돈과 곡식이 말라 백성들이 지탱하기 어려우며 좋은 땅과 중요한 지역의 세관과 장터의 세금, 산과 연못의 이익이 모두 오랑캐들에게 돌아가고 있으니 저희들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바입니다.”



그때나 120년이 지난 요즈음이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새삼 ‘역사를 통해 깨닫지 못한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호주 국립대 교수 테사 모리스는 한반도를 갈라놓은 휴전선이 전체 동아시아 지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고, 지난 150년간 동아시아의 큰 전쟁들이 모두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열강의 야욕 때문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장래가 세계 전체의 앞날을 좌우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냉전적 분열의 마지막 유물인 한반도 분단을 어떻게 해소하는가에 따라 제 2의 냉전으로 갈 것인가와 극복으로 갈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하늘이다



1년 전 2014년 갑오년 새해는 동학 소설을 쓰는 모임에서 스터디를 하며 경주 용담정에서 맞았고 올해 을미년 새해는 백두산 천지에서 맞았다. 천지 아래에 있는 휴게소에는 한겨레신문사 광복 70주년 백두산 새해맞이 일출행사에 참여한 한국사람, 신년 운을 점치는지 마작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는 중국사람, 그리고 조선족 연변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새벽이 되자 단단히 여며 입고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거센 돌풍과 눈보라를 맞으며 천지가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모두들 떠오른 해를 향해 말없이 서서 각자의 소원를 빌었다. 나도 해가 떠오른 천지를 향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에 하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모두가 자신이 하늘처럼 귀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빕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다른 존재들이 더 환하게 빛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새 학기에는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간다. 맨 처음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해월의 삼경 사상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리고 각자의 종교에 맞게 명상가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하셨다는 말을 흉내 내어 말해주고 싶다.
“네가 하늘이여! 그러니 하늘처럼 살어.”
“네 친구들도 하늘이여! 그러니 하늘처럼 모셔.”


박흥선님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국어교사로 학생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두려움에서 왔다고 생각하며 우주적 사랑으로 연대할 때 세상은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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