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한울님 – 동학의 비결(2-1)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어리숙한 한울님


 


-동학의 비결(2-1)


 


심국보| 천도교 진주시교구


 


 


대부분의 종교에 등장하는 신이나 절대자, 숭배의 대상은 모든 일에 완전무결 전지전능하고 도덕적 인격적으로는 지고·순수·순결하며 악한 것과는 담을 쌓은 착한 존재이자 때로는 엄한 벌을 내리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학의 경전에 등장한 신(상제, 천주, 한울님)은 능력 면으로 보자면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니 다른 신에 비하면 조금 어리숙한 편이고, 그리 착하지도 악하지 않은  존재다. 수운께서 득도할 때다. 한울님은 수운께 홀연히 나타나 고백하신다. 아래 인용의 ‘나’는 한울님이자 상제·천주이고, ‘너’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다. 


 


 


“내 또한 공이 없어 너를 세상에 내서 사람들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치 말고 의심하지 말라.”


 


 


한울님은 솔직히 그동안 공이 없었다고 수운께 밝힌다. 전지전능하지 못하니 공을 세우지 못했고 능력은 쫌 딸리는 한울님이시다. 또한 한울님은 지고지선한 존재가 아니다. 수운께서는 득도한 다음해 몰려드는 제자들의 물음에 친절히 답한다. 도(동학)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에게도 왜 ‘강령’이 내리냐고 어느 제자가 따지듯 묻는다. 수운은 ‘불택선악’이라 답한다.


 


 


“한울님은 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노이무공(勞而無功) 그리고  불택선악(不擇善惡)


 


강령은 동학의 주문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온 몸이 떨리거나 병이 든 것처럼 몸이 오싹해지기도 하는 현상이다. 무당의 신내림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된다. 강령은 ‘기화지신’, ‘접령강화’라 표현하기도 하는 것으로, 동학의 수행절차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접령과 강화로  한울님 모심을 체험할 수 있고, 이러한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몸에 기화지신(氣化之神)이 없으니 도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탁명교인(이름만 걸어놓은 교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의암은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영(靈)이 없는 것’은 ‘사람이 형상을 갖추었을 뿐’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단언1하였다. 



강령이라는 소중한 경험, 한울님 모심(侍天主)을 체험했음에도 도를 배반한 자에 대해, 수운께서는 한울님이 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한울님이 악한 사람한테도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울님이 스스로 능력부족을 고백하고 있으니 우리 사람에게는 친근하기는 하지만 절대자로서의 권위는 부족하고, 오로지 착하기만 하지도 않고 불택선악하니 어쩌면 자격미달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한울님의 체면을 살려주고 권위를 세워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다. 한울님은 자신의 뜻을 펴려고 애쓰는 과정에 있는 분이며, 완성자로서 초월해 있는 신이 아니라 생성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는 분이라고 해석2하기도 한다. 한울님은 온 천지의 생명체계 그 자체로서 자기조직력에 의해 생성 발전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며,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미완의 상태이다. 이렇게 변화 과정에 있는 한울님이다 보니, 인간 역시 창조적 주체로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부모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자식이 나서야 하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는 신의 예정설이나 역사의 결정론과 같은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주체적 노력과 책임 있는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람이 역사 창조의 주체가 되어 책임 있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한울님도 제대로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역사에 공적을 남기고 그 이름을 떨칠 수 있다. 한울님은 수운대신사를 만나 그동안 노이무공, 즉 애쓰고 노력했지만 실적이 없었다고 술회하면서, 대신사를 만나 비로소 성공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도 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 너도 득의 너희 집안 운수로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노이무공을 고백하는 한울님의 ‘무능력’을 제외하면 동학의 신은 기존의 다른 종교의 신과 별다르지 않다. 한울님은 주문외고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에 감응하니 충분히 인격적이며, 한울님은 스스로 귀신마저도 자신이라 했으니 한울님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만, 한울님은 모든 사람의 몸 안에 존재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시천주(侍天主), 즉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을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


 


 


수운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한울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몸 안에 모셔져 있으니, 가까운 곳을 외면하고 멀리서 취하려하지 말라(捨近取遠)고 수운은 누누이 강조한다. 한울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그 소재를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한울님이 내 몸에 계시니 따로 천당 지옥이 있을 리 없다. 수운께서는 천당 가고 지옥 가는 그런 영혼을 부정하였다. 그러니 죽은 뒤의 내세도 있을 리 없다.


 


 


“우습다 저 사람은 저희 부모 죽은 후에 신도 없다 이름하고 제사조차 안 지내며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唯願速死) 무슨 일고, 부모 없는 혼령혼백 저는 어찌 유독 있어 상천하고 무엇하고 어린 소리 말았어라”



“한나라 무고사가 아 동방 전해 와서 집집이 위한 것이 명색마다 귀신일세. 이런 지각 구경하소 천지 역시 귀신이요 귀신 역시 음양인줄 이같이 몰랐으니 경전 살펴 무엇하며…”



“귀신 역시 나(한울님)니라(鬼神者吾也)”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 계시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닐런가”


 


 


이상의 인용은 수운께서는 한울님 이외에 어떤 귀신이나 영혼은 없으며, 천당·지옥 등 내세를 부정하시며 하신 말씀들이다. 한울님·상제·하느님·천주·하나님이 저 세상에서 성스럽게 계신다는 것을 단호히 부정한 것이다. 수운에게는 따로 내세관, 사후관이 없다. 굳이 사후관이나 내세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수운께서는 “나의 나 된 것을 생각하면 부모가 이에 계시고, 뒤에 뒤 될 것을 생각하면 자손이 저기 있도다” 라는 말씀으로 허전함을 달래준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설로는 묵암선생의 아래 말씀3이 제격이다.


 



“영혼은 자식들에게 간다. 내가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이 나를 생각하니 부모의 영혼이 자손에게로, 또 그 뒤의 자손에게로 전하여 간다. 도하는 사람은 그 생각이 제자에게 간다. 그래서 도를 닦으면 장생의 길이 있고, 도를 닦지 않으면 멸망의 길 뿐이다.”


 


 


‘종교미신’에 대한 비판, 조롱 그리고 풍자 



마르크스가 종교에 비판적이었지만 그리 적대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비판함으로써 종교가 뒷받침하는 착취와 억압의 사회체제와 질서를 제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단순한 의식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를 포함하는 정치적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종교비판을 통해 억압적 사회체제와 대결하려했다. 오래 전에 『자본론』을 읽어 그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구절이 있다.


 


 


“이 소녀(10세)는 God(하느님)을 Dog(개)라고 썼다”


 


 


마르크스가 영국의 아동교육과 노동의 실태를 서술하면서 아동노동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인용한 구절4이다. 이 구절이 아니더라도 1860대 영국 자본주의 하에서 어린이들이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으로 혹사당하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하나님(God)을 개(Dog)’라고 하는 소녀의 사례를 각주에 집어넣은 것은 신을 조롱하고 풍자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이란 우수계급이 자기의 계급을 영원히 옹호하기 위한 술책이며, 소수의 현명한 사람이 자기이 불완전을 번민하던 끝에 자기의 상상으로 뭉쳐놓은 완전의 상징이며, 다수의 무지자가 자연계의 광대 숭엄을 경악한 나머지 오라! 하며 함부로 추정한 아호이다.”5


 


 


이러한 발언을 한 소춘선생은 동학·천도교의 많은 수행자 중 가장 빼어난 한 분이다. 일제말기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폐병을 주문수행을 통한 신앙으로 극복한 후, 소춘은 자신의 수도경험을 통해 아래와 같이 고백하기도 했었다.


 


 


“우리 몸에 지기(至氣)가 훨씬 내리어, 기화의 넘침이 없으면 한울님 스승님의 영파(靈波)가 우리 몸에 통하지 못하는 동시에 한울님 스승님의 그 자세한 가르침(啓示)를 받을 수가 없다. 마치 라디오의 수화기에 전류를 통하지 않으면 방송국으로부터 오는 말을 받아 들을 수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들 도를 닦는 사람, 특히 천사(天師)의 뚜렷한 감응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완전한 기화를 얻어, 천사의 신령을 교통할 터전을 장만하는 것이 그 첫째이다.”6


 


 


지극한 신앙인이기도 했던 소춘이었지만, 그의 신관은 다분히 무신론적이고 반종교적이다. 이것은 수운의 가르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때의 사회적 분위기 영향이기도 하다. 신의 계시라고 할 수 있는 ‘천사문답(天師問答)’을 통한 수운의 강렬한 한울님 체험이 천도교 경전에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학하는 사람들의 신에 대한 관념은 일정부분 무신론적이고, 신에 대해서 적대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한울님은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생각지 않으면 없는 것입니다.”7라고 한 월산선생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인들의 이려한 경향은 전적으로 기존의 군주적, 제왕적이며 계급적인 신개념의 오류에 대한 반발이라 보면 된다.


 
전지전능한 신, 불멸하는 영혼, 천당 지옥이라는 내세관 등은 모두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다. 사회구조에 있어서도 귀족과 평민, 노예라는 신분제가 정당화되었고 중앙집권제와 가부장제도 등 여러 형태의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가 이러한 이원론적 틀 위에 구축되었다. 이 세상과 저 세상, 성스러운 세계와 속된 세계라는 도식으로 감성적인 세계와 초월적인 세계가 이중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왔다. 이러한 이원적 세계관은 헛된 생각이고 잘못된 믿음, ‘종교미신’이다.


 


 


반(反)종교운동과 창생



‘종교미신’이란 표현은 페이스북에서 어느 과학자8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 생물학자인 그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종교가 자본주의의 탐욕과 아집과 강자의 논리와 결합하여 절대화되고 사회악으로 전락하는 현상들을 열거하고,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적,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자연관, 과학적 자기이해 그리고 과학적 세계이해이다. 종교미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택받고 특별하고 절대적인 ‘나’가 아니라, 시공간과 지구화학적 과정의 부산물로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환상에 불과한 ‘나’를 깨달아 에고의 덫(ego-trap)으로 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과학적 깨달음’이 최고의 영성(spirituality)이며, 자유이며, 평화이며, 안식이며, 모든 것을 정상화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종교미신의 유일한 장점이다. 종교집회를 모두 비종교적 친목집회로 바꿔라. 재래 장터 모임 형식이라도 좋다. 기존의 정기집회에서 일체의 허구와 거짓말과 종교미신을 제외하고, 사실과 역사적 진실과 과학과 문학 예술과 우호와 협력과 정의를 진지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나누는, 즐겁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창의적 교제 모임으로 거듭나라.”


 


 


이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종교 인구가 줄고, 특히 20~30대의 젊은층에서 종교를 믿지 않는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는 ‘종교미신’의 잘못된 세계관에 대한 거부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 더불어 천도교하는 사람들 역시 줄고 있는데, 천도교가 극히 반성해야 될 일다. 동학·천도교가 선천종교와 비슷해지고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일이다.



1930년대 초반, 일제치하의 조선사회에 ‘반종교운동’이 고조되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반종교운동의 주된 대상은 천도교로, 실상은 좌익언론의 ‘반천도교운동’이었다. 좌익논자들은 대부분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도식이나 ‘종교투쟁은 계급투쟁에 종속되어야한다’라는 레닌의 반종교 이론을 근거로 천도교의 활동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 김형준9은 종교발생 및 계급적 기반과 관련하여 레닌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천도교의 민중성을 강조한다.



즉 ‘종교는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과의 투쟁에서 자기의 무력(無力)을 위안하려는 데에서 생긴다’고 본 레닌의 견해를 비판하고, 김형준은 ‘모든 종교적 신념은 그 창시기에는 하층계급이 그 시대의 사회적 조건을 벗어나서 좀 더 높고 새로운 사회적 생활을 실현하려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밝힌다. 그러면서 그는 ‘레닌이 본 종교는 세계말적 발악을 하고 있는 기성종교에 불과’하며 천도교는 이와 달리 ‘창생(蒼生)계급’을 기반으로 발생했고, ‘민중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려는 정신적 도구’라며 천도교를 적극 옹호한다. 김형준이 고군분투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옹호했던 천도교와 지금의 천도교는 안타깝게도 많이 다르다. 의암성사의 시 한 구절을 외어본다.


 


 


我生誰爲生(아생수위생, 내가 사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인가)



我生爲蒼生(아생위창생, 내가 사는 것은 창생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
 
 
1  <명리전>, ‘활동장’
2  표영삼, 『동학1』, 113-114쪽.
3  묵암 신용구, 『회암 하준천 천도강론』, 140-141쪽.
4  마르크스, 『자본론1(상)』(비봉출판사), 제3편 제10장, 331쪽.
5  소춘 김기전, 『개벽』(1921.6)
6  소춘 김기전, 『신인간』 (1944.9) <천사 감응의 수도>
7  월산 김승복, 『천재하방 : 한울은 어디에 있는가』, <천재하방>, 236쪽.
8  facebook : Ung-Jin Kim
9  김형준(1906~?), 『신인간』지에 천도교철학 관련 많은 글을 게재했다. 필명으로 오성(午星)등을 사용하였다. 위 반종교운동 관련한 글은 1931~1932년간의 『신인간』 57호, 『당성』6호 등에 실린 것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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