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마을 민주주의를 통해 21세기 개벽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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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풀뿌리, 마을 민주주의를 통해


 


21세기 개벽을 이루자


 


윤호창|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본지 편집위원


 


장면#1 ; 작은 울림, 큰 공명



7살 준희가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글을 적고 그림을 그려서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그러자 아파트 주민들은 포스트잇으로 댓글을 달면서 준희가 이사 온 것을 축하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몇 년을 같은 공간에 살면서 누가 어떻게 사는지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사람들은 준희의 작은 글 하나로 이어지고, 아파트에는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준희네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이웃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 년간 아파트는 재산과 부의 상징어였다.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힘입어 사람들은 부동산을 사고팔면서 재산을 늘려 갔고, 부동산이 없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밀려 나갔다.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인 아파트에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사람들의 재산은 늘어 갔지만, 이웃과 공동체가 사라진 아파트 공간은 허허로웠고, 쓸쓸했다.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이 있었다. 준희의 작은 글과 그림은 허기를 채워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다. 


 


 



 


 


장면#2 ; 교육, 국가와 시장에서 벗어나기



35살 샛별이 엄마는 맞벌이 부부다. 5살 샛별이를 하나 둔 엄마는 혼자서 지내야 하는 샛별이가 안타까웠지만, 날로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와 치열한 경쟁 현실에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니 샛별이 하나만을 키우는 것으로도 힘들었다. 부부는 직장일로 쫓기는 생활을 해야 했고, 열악한 보육 현실에 발만 동동거려야 했다. 샛별이 엄마는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에 품앗이 육아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러자 몇 명이 관심 있다는 뜻을 밝혔고, 몇 차례 회합을 갖고 품앗이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팍팍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었지만, 대안을 찾는 것 또한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믿을 수 없는 어린이집 대신에 공동육아, 품앗이 보육을 하기로 하고, 일을 분담하여 육아공동체를 꾸려 나갔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은 여러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갈등과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이들은 이모와 삼촌을 얻고, 엄마와 아빠는 동네 친구들을 얻었다. 아이들은 함께 유년시절을 기억해 주고,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할 우정과 호혜의 벗들을 만났다.  


 


오늘날 미래세대를 키우는 보육과 교육은 국가와 시장에게 거의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국가는 국가에 요청하는 흔히 말하는 사회성을 갖춘 순응하는 아이들로 키우려 하며, 시장은 효율과 능률을 앞세워 아이들을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키우려 한다. 근대국가가 요청하는 인적 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인적자원부’란 이름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교육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다.



군대 못지않은 교육 관료 조직이 있는 한편에는, 시장에 의한 교육이 넘쳐흐르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장에 맡겨진 교육은 거의 생애 전반에 걸쳐 개인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고통과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배움이 새로운 것, 진리를 알아가는 즐거움과는 무관한 것이 되어 버렸다. 2월! 전국의 학교는 수많은 졸업식이 열리지만 그곳에서 졸업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저 그런 무덤덤한 통과의례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가져야 할 유년의 쾌활함과 즐거움, 성장통과 같은 슬픔은 국가와 시장에게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장면#3 ; 동학의 집강소에서 마을민주주의를 생각한다



120년 전 부패한 왕조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이 땅은 누란의 위기에 있었다.  민초들의 삶은 팍팍했고,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통스런 현실을 참는데 익숙한 민초들이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현실에 죽창을 들었고 봉기의 깃발을 올렸다. 이때 탐욕스런 외세가 두려워 부패한 왕조는 민초들과 타협을 했고, 그 결과 호남 땅에 집강소를 설치해 민초들에 의한, 민초를 위한 마을자치가 시작됐다. 우리는 프랑스 대혁명과 파리의 두어 달밖에 지속되지 않은 파리꼼뮨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고 있으나, 반년이나 지속된 민초들의 자치운동인 집강소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알려진 바도 많지 않다. 두 갑자 전 우리의 양반들이 동학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사는 민초들의 자치 역사를 알려고도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장면#4 ;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이 시작된 지 한 세대가 가까워지면서 풀뿌리 자치와 마을 민주주의에 대한 요청이 높아지고 있다. 엘리트 중심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민초들의 직접 행동이 시작되고 있다.



국가와 시장에 의존하지 않으며 민(民) 중심으로 보육과 교육을 만들어 가려는 공동육아와 대안교육, 마을학교의 움직임이 그것이며, 자본 중심의 자유시장에 반기를 들며 진행되는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경제 운동이 그것이며, 지역과 마을을 기반으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이 바로 그것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150년 전의 철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역사는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대부분은 현실에 절망하고, 극소수만 희희낙락하는 형편이다. 이미 낡은 언어가 된 듯한 ‘개벽’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시장과 국가의 폭력 앞에 엎어지고 넘어진 민초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다음세대를 키우는 돌봄과 교육을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되찾아오고, 형식만 남은 시장의 자유를 협동의 경제를 통해 실질적인 자유를 만들어 내고, 이름뿐인 민주주의를 풀뿌리, 마을민주주의를 통해 실현하는 것, 그것이 21세기 개벽이자 동학일 것이다. 반년의 실험이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라진 동학 집강소의 현대적 복원을 통해 그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윤호창님은… 생태·환경 분야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왔다. 지금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지역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들, 협동조합 창립과 운영,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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