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봄이다!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1호(2015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특집 봄 봄


 


바람이 분다, 봄이다!


 


이광호| 시인·본지 편집위원


 


 


1. 바람은 나그네가 아니다



어디선가 선뜻 바람이 불어옵니다. 지나는 객처럼 처음 보는 듯이 스산하게 바람은 불어오지요. 아직 삭풍이 여전한 듯도 보입니다. 허나 이제 그 중심에는 훈훈한 기운자락이 꼼지락꼼지락. 이렇게 포근한 매화바람이 산등성을 넘어오면 나무와 풀들은 일제히 기지개를 켭니다. 해토머리로 흙의 살결이 녹아내리면 풀들은 살뜰히 모아온 뿌리 창고의 녹말을 한 모금씩 꺼내 분주하게 움싯거리지요.



뿌리로부터 올린 자양분으로 두터운 흙의 입자를 녹이기 시작합니다. 녹말이 산화되며 열을 발산하고, 나아가 식물들은 드디어 생의 탄력을 받지요. 아래에서는 든든한 뿌리가 있고 지상에는 따스한 햇윤살이 돕습니다. 매화바람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어와 식물의 피부조직을 자극합니다. 살랑살랑 햇살이 골고루 비치도록 도우며 어디 외로운 가지가없나 살핍니다.


 


 


2. 바람의 애정



바람의 애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다에서부터 혹독한 시련을 이기며 자신의 의무를 짠물에 담금질했답니다. 세상의 중심은 바람입니다. 버겁지 않게 서로 도우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바람처럼 자신을 풀어놓고 다녀야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말고, 품행의 잣대로 재지 말고,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너무 헐겁다고 비웃지 마세요. 너무 매몰차다고 피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입술이 마르고 목도 마르지요. 허나 불어오는 사이에 틈새는 메워지며 습기를 머금은 물기는 잎잎마다 촉촉하게 젖은 이슬을 내려놓습니다.


 


 


3. 벌레들을 깨우다



그 사이 벌레는 어떠할까요? 한가하게 노니는 벌레가 어디 있으리오. 저마다 살 길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겨우내 참았던 식욕을 채우기 위해 정지된 관절에 피돌기를 시작합니다. 바위틈에서 나무의 밑동에서 보냈던 겨울은 순탄하지는 않았답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혹독한 버림을 받았으며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욕구를 몸서리치게 체득한 나날들이지요. 이렇게 어느 종이나 세상에 순일한 종은 없으며 바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종도 없습니다. 종일 기다리고 종일 쏘다니며 온종일 짝짓기와 먹이를 찾아 서식지를 벗어나 생의 방황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풀잎에 왼쪽 어깨를 기대고, 나무의 그늘에 숨으며 무서운 천적의 숨소리를 피하려 숨을 죽입니다.


 


 


4. 바람은 노을로 저녁을 물들인다



바람은 성성하게 불기도하고, 조밀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디에 귀를 기울여도 야생의 바람은 생생한 변주곡입니다. 바람은 어쩌면 자신을 찾아 헤매는 진정한 보헤미안이지요. 나무와 부딪치면 나무의 옷을 입고, 바위와 스치면 바위의 옷을 입습니다. 시내를 따라 흐를 때면 시냇물의 음정을 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한없이 낮추는 미덕을 갖습니다. 서로 고개 숙여 안아주는 초저녁. 땅속의 자갈들이 무심하게 자리를 내어주곤 합니다. 재잘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서 듣습니다. 서걱이는 갈잎에서 듣습니다.



바람에 의해서 나무마다 여울지는 물 샘이 생기고, 나아가 겨울눈이 자신의 움을 비로소 틔우기 시작합니다. 훈풍이 기별의 닻을 내린 탓이지요. 바다의 깊은 소문을 안고 와서는 갯터의 소식을 전하는 자리. 저마다 자라던 탯자리와 양수의 출렁거림을 기억하며 서로의 태초와 청정을 가름하지요. 저녁 물결은 어제처럼 물비늘의 여운으로 물들입니다. 붉은 노을은 산 아래 숨으며 언제나 붉게 수줍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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