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없이 나만의 멋진 인생을 산다, 김다소미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0호(2015년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스펙 없이 나만의 멋진 인생을 산다,


 


김다소미


 


임소현| 본지 편집장


 


문: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답: 어린시절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노동운동을 하신 분이었는데 그 일로 교도소를 여러 번 들어가셨습니다. 노동운동을 그만두시고 나서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서 여러 가지 사고가 일어나고, 또 다시 교도소를 들어가셨습니다. 더욱이 저희 아버지께서는 장녀인 저에게 굉장히 엄하셨습니다. 어린아이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실수도 저희 아버지에게는 죽도록 맞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짧았지만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 저는 아무 이유도 없이 ‘또 매 맞지는 않을까? 혼나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저희 집의 장녀로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여동생이 둘인데 둘째는 세살 터울이고 막내는 아홉 살 터울입니다. 아버지의 오랜 복역으로 어머니는 이미 지치실 대로 지치셨습니다. 어머니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셨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친척들께 도움을 받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턱없이 부족한 살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말없이 누워 계셔도 힘든 몸을 보살피셨고, 저는 동생들과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언제나 가난했던 살림과 아픈 어머니, 어린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아직 어렸던 저를 단련시켜 주기도 했지만 참으로 고된 생활들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많은 차별과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수많은 오해와 따가운 시선들은 어리고 작았던 저를 더욱 작게 만들었고, 그날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제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쓰러지면 저의 동생들과 부모님이 모두 쓰러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더욱이 동생들이 밖에서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것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선 아무것도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무료급식이나 기타 회비 면제 혜택들을 일절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혜택들은 곧 ‘나는 불우한 사람이다’라고 광고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괜찮은 척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울수록 저는 더욱 더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언제나 칭찬받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하면 저희 가족들을 향한 모든 억압과 불평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항상 저를 숨기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본래의 내 형편을 알면 모든 사람이 저를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솔직해짐으로써 드러내야 할 나는 아주 작았고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에게도 솔직해질 수가 없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언제나 밝고 씩씩하게 나를 포장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은 병이 들었고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그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했지만 언제나 제자리였습니다. 나를 편들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귀농을 결심하고 같은 지역의 귀농하신 분의 소개로 백일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 백일학교는 다소미 씨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답: 백일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모든 스승님들은 하나같이 저를 있는 그대로 봐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무언가를 잘해서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게 아니라, 저라는 생명 자체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나 입학생이 저 혼자뿐이었음에도 학교를 열어주신 저희 교장선생님의 넓은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백일학교는 제 안의, 참된 사랑받아야 마땅한 빛나는 ‘나’를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풍물을 배우든, 농사를 배우든 어떤 스승님께 배우든 간에 가르침은 똑같았습니다. 참된 나를 발견하고 그대로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풍물을 통해 진심을 내는 법을 알려주시고, 농사를 통해 세상에서 원했던 껍데기를 버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어떤 껍데기를 씌워야 성공한다고 유혹하든, 아주 멋지지만 진실되지 않다면 그 탈을 벗으라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탈속에 숨겨져 있던 상처받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괜찮다고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난날의 모든 상처와 억압을 날려 버렸습니다.


 


 


문: 구체적으로 백일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어떤 내용이었으며 어떤 분들을 만났나요?



답: 제가 7기 청년백일학교를 할 때는 ‘동학 청년백일학교’였습니다. 100일 중 33일은 매일 새벽에 동학 경전을 읽으며 동학수련에 임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보은취회 120돌 행사에도 참가하여 진행을 도왔습니다. 나머지 기간은 전북 지역에서 이뤄졌습니다. 정읍에서 발효식품을 배웠고, 충북지역의 공동체를 탐방했고, 지리산 지역에서 건축 수업으로 제가 살 몽골식 집인 게르를 짓기도 했습니다. 전통의술인 쑥뜸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본래 백일학교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수업도 있지만, 저는 학생이 혼자여서 여럿이 해야 하는 수업은 하지 못하고, 이번 8기 백일학교 학생과 함께 그동안 못했던 강원도 원주의 풍물 수업, 부산의 본국검 수업을 함께했습니다. 7기와 8기의 수업 기간 동안 만나 뵈었던 많은 스승님들은 항상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시고, 진리를 갈구하시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세상을 바꾸려 한다기보다 살리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삶에 대한 자세가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세상의 밝음을 위해서 애쓰시는 분들이셨죠. 발효식품을 배우고, 건축을 배우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발효식품을 통해서, 건축을 통해서 인생을 일깨워 주시는 분들입니다.


 


 


문: 백일학교는 전국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만난다고 했는데, 가장 인상에 남고 감명 받았던 스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답: 저희 교장선생님이신 윤중 황선진 선생님이십니다. 아무래도 함께했던 시간이 가장 길기도 했고, 학생이 저 혼자뿐이었음에도 저를 위해 3년 동안 닫혀있던 학교를 기꺼이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도 말은 못했지만 ‘혼자 한다고 해도 과연 학교를 열어주실까?’ 하는 걱정이 내심 앞섰습니다. 재정적인 문제며 프로그램 진행 문제까지 이것저것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입학을 2주 앞두고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윤중 선생님께서는 한 명이 곧 전체라며 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함께 백일학교를 잘 시작해 보자고 서로 약속했던 그 순간 저에게 처음으로 선생님이 아니라 ‘스승님’이라는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고, 저를 크게 성장시키셨습니다.


 


 


문: 청년공동체 마을은 누구누구가 언제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현재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나요?



답: 백일학교의 커리큘럼 중의 하나인 성년식을 치르고 나서, 앞으로의 제 삶을 생각해 볼 때 도저히 백일학교를 떠나서는 생각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더 배우고 싶었고, 저보다 먼저 앞서 길을 닦아 주었던 선배님들과 함께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백일학교 출신 청년들과 청년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백일학교에 와서 키웠던 꿈은 밝은 빛들이 한데 모여 더 큰 빛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밝은 빛들이 상징하는 것은 모든 생명들입니다. 이 생명들이 자신이 참된 빛임을 깨닫고 함께 마을을 이루고 더 큰 빛이 되어 빛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기에는 선배들과 같은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선배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내서 군대에서 군복무 중이던 1기 선배님께 함께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드렸습니다. 본인도 군 제대하고 그럴 생각이셨다며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현재는 저와 그 선배만이 주축을 이뤄 뜻을 모았지만, 많은 선배님들께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저희가 초석을 다지고 기반을 닦으면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도, 그리고 마음으로 함께했던 선배들도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 달 말에 함께하기로 그 선배가 제대하면 그동안 서로 구체화시켰던 생각들을 나누고 터를 잡을 생각입니다. 일단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함께 일하며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뤄 내는 것을 첫 번째 순서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구상으로는 시골에 조그마한 찻집을 할 생각입니다. 차를 파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와 사상을 공유하는 장소로 쓰일 것입니다.


 


 


문: 다소미씨가 만들어 갈 청년마을에 기대가 큽니다. 청년마을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 저희 청년마을은 수행을 기반으로 삼으려 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닦고,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하나가 되는 것이 저희 삶의 목표입니다. 앞으로 함께할 많은 청년들과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짧습니다. 시작은 청년으로서 하지만 언젠가 마음만 청년일 때가 오겠지요. 그 기간 동안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하나하나 이뤄 낼 계획입니다. 스스로 살리는 것은 개인의 수행을 상징하고, 서로 살리는 것은 마을을 이뤄 생활의 전반을 함께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비생명적인 시스템에서 나와 새로운 대동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살 거라고 믿습니다. 그 대동의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도 겪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하늘이라 말했던 갑오년 동학의 뜻이 이루어지는 마을을 건설하고 나아가 새로운 참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적입니다.


 


 


문: 다소미씨는 백일학교에도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백일학교는 어떻게 운영될 계획입니까?



답: 조직 내부의 사정으로 3년간 휴교한 상태였던 백일학교를 3년 만에 단 한명의 입학생과 졸업생으로 7기 청년백일학교를 열어 제가 대를 이어 받았고, 얼마 전 또 한 명의 졸업생이 8기 청소년 백일학교의 대를 이어주었습니다. 올해부터 9기와 10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9기 백일학교는 기존 백일학교와는 조금 다른 커리큘럼으로 진행됩니다. 과목의 종류도 더 많아졌고 이전의 커리큘럼은 의·식·주, 예술에 기반을 뒀다면 이번에는 기반은 똑같지만 세부 과정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천연염색, 시민운동, 감수성을 찾는 시쓰기, 연극, 전통놀이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7기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8기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졸업까지 무사히 하였습니다. 제가 백일학교를 졸업하며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껏 쏟아온 많은 스승님들의 정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정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할 사람과 정성을 받을 사람과 쏟을 사람 이렇게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조금씩 그 조직을 정비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선은 청년 인력이 부족함을 느꼈고, 어떻게 채워 나갈까 고민한 끝에 아무래도 백일학교의 역사를 체감하고 알고 있는 지난 기수의 선배들이 적합할 듯 싶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께 일일이 연락을 드렸고, 모두들 백일학교의 새로운 부활을 반가워하셨습니다. 함께할 수 있을지는 지난 기수의 선배들과 의논하는 중입니다. 각자 백일학교를 졸업한 후에 학교에 남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직이 활동을 멈추는 바람에 개인적인 길을 찾아 떠났던 상태입니다. 이제 점점 다시 모아지고 있어요.



  백일학교에서 청년들의 역할은 실로 큽니다. 기성세대이신 스승님들과 아직 어린 청소년들 사이의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학생으로 들어온 청년이라면 쉽게 가까워지고 인생을 함께할 도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청년 교사 및 실무자들의 신선하고 생기 있는 기획, 활동과 장년 스승님의 지혜 있는 연륜이 합쳐져서 꾸준히 이어간다면 최고의 조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은 참으로 방대하고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젊을 때에 대동세상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희들에겐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길을 찾는 청소년들과 청년들, 그리고 저희를 다잡아 주실 길 위의 스승님들과 함께하기 위해 계속해서 꾸준히 후배들을 길러 내야겠지요.


 


 


문: 개인적으로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아쉬운 것 몇 가지만 적어주세요.



답: 저는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가지고 있는 것 외에 필요한 것은 없네요. 아쉬운 것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 가진 것 그대로 활용하며 살려고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방법이 있고 있으면 있는 대로 또 다른 방법이 있고….  제 삶의 좌우명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 힘들 때 그 손을 놓지 말자.’이고 또 하나는 안 벌고 안 쓰는 삶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가진 거라곤 옷 몇 벌과 책이 전부이지만 그것마저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다 주고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곳저곳에서 버린 옷들을 모아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장터를 열어 판매하여 수익을 낸 적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리싸이클링을 매우 좋아합니다.


 


 


문: 백일학교와 청년공동체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답: 사실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큽니다 저희가 자생력을 키우려면 경제적인 자립이 먼저라고 봅니다. 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새롭게 청년 공동체를 조직하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백일학교에서 청년공동체의 역할은 정말 크고 많을 것입니다. 실무의 역할과 경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저희 청년 마을은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찻집도 그 중 하나이지요. 단순히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공공의 뜻한 바를 위하여 돈을 벌고, 소비자에게 진실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입니다.


 


 


▣ 멋지고 신나는 청년사업을 돕고자 하신다면
    후원계좌: 농협 / 사단법인 밝은마을 / 301-0028-49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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