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고 일어서는 순간, 우린 모두 젊은 청년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이 글은 개벽신문 40호(2015년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틀을 깨고 일어서는 순간,

 

우린 모두 젊은 청년

 

김다소미| 백일학교 교사

 

지금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20대 청년들은 ‘88만원 세대’이다. 88만원 세대란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는 20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올해로 스물네 살이 되었고, 나 역시 88만원 세대이다. 열여덟 살이던 때에 첫사랑의 추천으로 단숨에 읽었던 『88만원 세대』라는 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청년문제에 꾸준히 관심 갖게 해 줌과 동시에 불안 속에서 20대를 맞게 해 주었다. 아직 십대이던 때에 그 책을 읽으며 ‘아직 난 20대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위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현재 스물네 살이 되었고 20대 중반인 지금, 나는 어김없이 88만원 세대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언어가 젊은 청년들에게 주는 인상은 긍정적이진 않다. 주로 앞으로 계속 불안할 미래를 연상케 하거나, 이곳저곳에서 쪼들리며 여유롭지 못한 현재 생활을 연상케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젊디젊고 푸르고 푸르러야 할 20대가 불안 속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의욕이 솟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계속해서 넘어지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내가 가진 외형적 스펙이 미래의 나와 내 가족의 삶의 방식까지도 결정짓게 만드는 말도 안 되는 틀 속에서 살고 있다.

모두들 이것(스펙)들을 가지려 안달이 나 있다. 해외 어학연수 갈 돈은커녕 생활비도 모자라지만 대출을 받아서라도 다녀와야 하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외모가 면접 볼 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하여 성형을 하기도 한다. 물론 본인들이 선택하여 행해지는 것들이지만 모두 다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한 가지 묻고 싶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이고, 그 안에 진짜 내가 있는가?”라고 말이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사회’라는 진짜 학교에서 배우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더 이상 학교엘 다닐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중국에 갔고 그곳에서 4년 동안 먹고살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한국어 선생도 해 보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밑천을 만들어, 직접 가게를 운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한국에 나와서 2년 반 동안 사회단체에서 일을 했다. 중국에서 4년, 한국에서 2년, 총 6년 동안 나는 나름 사회인으로 살았다.

열다섯 살에 학교를 자퇴할 때 내가 가족들을 설득하고 주변 선생님들을 설득했던 명분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싶은데 내가 그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구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고, 둘째, 잘못을 하면 화장실 청소나 기타 힘든 노동을 벌로 주는 선생님들의 방법이 싫었다. 내 친구어머니는 먹고살려고 건물 청소를 하며 사시는데, 나는 그것을 잘못한 벌로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다. 모두들 싫어하는 벌을 내 친구 어머니는 생계를 위하여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부는 너무나도 달랐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의 방식이나 해야 되는 목적이 나는 무척이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이 세 가지 이유에 답을 찾아서 제시해 주지 않았다.

격렬히 반대하시던 어른들은 모두들 똑같은 말씀뿐이었다. “열다섯 살이면 당연히 학교를 다니는 게 맞아!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인생을 안 살겠다는 거나 똑같은 거야.” 등의 말씀은 더더욱 학교에 남아 있던 그나마의 정도 떼어 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려고 학교를 그만두려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20대가 되고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서 만들어야 할 삶이 학교의 성적, 집안의 경제력, 부모님의 학벌로 좌지우지 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왜냐하면 나는 나로 태어났는데 그 안의 진짜 나를 봐주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그냥 성적으로 평가되고 그에 따른 차별을 받아야 하고, 집안의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없음으로 어떠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그 틀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난 지금 스펙을 갖추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학업을 포기하고 6년 동안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사회인으로 살면서 참으로 많은 경험들을 했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갈 동안 나는 낯선 타지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진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귀농이라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지난 6년간 나는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고 그리고 또 작아지고 하는 광경들을 내 친구들, 내 주변사람들을 통해 보고 같이 울었다. 그들이 좌절하고 우는 이유는 똑같았다. 어차피 소수만이 권력을 잡고 굴러가는 틀 속에서 내가 아무리 대출받고 성형하고 노력해 봤자 우리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짜 ‘나’로서 살고 싶다

 

결국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방송이나, 책, 언론을 통해 ‘모든 사람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거짓된 자심감을 심어주면서 자신들의 상품을 팔지만, 최후에 이 모든 혜택을 보는 것은 상품을 산 자도 아니고 판 자도 아니며 소수의 제3의 자본가들뿐이다.

지금 내가 노력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 안정된 곳에 취직하여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때가 되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려 자녀까지 있다면 그 자녀는 또 내가 걸어온 길을 갈 것이다. 왜냐?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은 똑같기 때문이다. 내가 10대이던 때에 20대로부터 들은, 걱정스럽고 불안한 미래를 나 또한 20대에 경험을 했고, 그리고 또 다른 10대가 내 20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20대를 준비하고 있다. 희망 없는 미래가 현실이 되었고 걱정했던 미래가 그대로 지금이 되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가 없다. 결국엔 낙오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껏 우리가 그렇게 살아 왔다. 나와 내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사회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는 가족이 아니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먹고 살려면 가족이라는 관계조차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1등만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당연하다 배워 온 이런 삶이 과연 우리를 인간답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나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마음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안에 진짜 ‘나’로서 살아야한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대부분의 유행과 시스템은 진짜 ‘나’로서 인정받지 못하게 한다. 우린 더욱더 강한 화장과 패션으로서 진짜 나를 감춰야 예의라 생각하고 그것이 유행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기 일쑤다. 여기서 한번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나’로 태어났는데 왜 내가 다른 것이 되어 그것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선택한 귀농

 

내가 6년간의 사회생활을 마치고 나서 새롭게 선택한 삶의 무대는 시골이었다. 귀농을 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욱 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이다. 지금껏 계속 도시에 있으면서 나 자신에게 한계를 느껴 왔고, 진심을 나누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 너무 싫었다. 더군다나 나는 스펙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일을 같은 시간 동안 해도 스펙이 있는 사람보다 월급이 적었다.

서럽지 않았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후회가 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돈을 벌지 않고 살아 보고 싶었다. 돈을 벌려면 행해야 하는 수많은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내면의 나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전원생활을 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바쁜 사회에서 잠시 멈춰서 진정한 쉼을 얻고자 하는 마음.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든다. 왜냐면 그것이 인간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충청도 토박이인 나는 전라도 땅을 찾아 왔다. 차비를 제하고 나니 수중에 17만원이 있었다. 그것으로 살 곳도 마련하고 먹을 것도 마련할 계획이었다. 본래 돈도 없었지만 일부러 적게 가져온 이유도 있다. 진짜 자급자족을 원한다면 자리가 잡힐 때까지 어떤 수고도 불편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에 나를 던져 보고 싶었다.

한번에 보기에 살아 보고 싶은 마을로 들어가서 마을 어르신들께 무작정 텐트 칠 수 있는 곳을 여쭈어 보고, 텐트를 치고 그냥 며칠을 보냈다. 도시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밥이 지어지고 불이 켜지고 변기의 물이 내려갔지만 야영의 생활은 생각보다 더 수고스러웠다. 나무를 모아다가 불을 지펴 두 시간에 걸쳐 밥을 해 먹고 땅을 파서 임시 화장실을 만들었다. 가을이어서 밤이 되면 추워서 아래위로 4겹씩 껴입고 장갑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잤다.

가끔씩 야영 생활이 궁금해 마을의 할머니들이 방문해 주셨다. 젊은 아가씨가 와서 고생한다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다. 그러면 나는 밥을 얻어먹고 할머님들 농사일을 도와드린다. 할머님들은 나의 정체가 못내 궁금하셨는지 이것저것 여쭤보셨지만, 나는 그저 학교를 그만둬서 가방끈이 짧은 아가씨로 기억되었다. 시골에서의 학벌에 대한 편견은 도시보다 더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마을 분의 도움으로 작은 시골집을 무상으로 얻어서 생활할 수 있었고, 간간이 동네 농사일을 거들며 약간의 생활비를 벌 수도 있었다.동네 이장님께서 혹시 도망자가 아니냐며 조심스레 물어보신 웃지 못 할 추억도 있다.

그러다가 유목형 대안학교인 ‘백일학교’라는 곳에 오게 되었다. 백일학교는 100일 동안만 이뤄지는 학교이며 청소년학교와 청년학교로 나뉜다. 나는 청년 백일학교를 7기생으로 졸업했다. 2014년 7월에 졸업하여 얼마 전 8기 청소년 백일학교 청년 교사로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2015년의 9기와 10기를 준비 중이다. 백일학교는 내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100일 동안 전국에 계시는 당대의 스승님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받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스승님들은 무엇을 가르쳐 주시든지, 예를 들면 구체적 커리큘럼에는 풍물, 농사, 건축, 요리 등이 있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를 찾게 하시고 그대로 사는 법을 보여주신다. 내가 거쳐 온 100일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벅찼던 순간들이기에 계속해서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남는 것을 결정하고 현재는 청년 백일학교 선배들과 청년공동체 마을을 준비 중에 있다.

 

내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젊은 청년들이 조금 더 젊을 때, 모든 껍데기와 허례허식을 던져버릴 수 있는 패기가 있는 20대 청춘시절에, 우리가 배워 왔고 당연한 것이라 믿어 왔던 틀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비록 남이 보기에 없어 보일지라도 그 어느 것으로 나를 포장하지 말고 날것의 나 자신을 찾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정말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적이 우수하고,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곳에 취직하고, 외모가 출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자체로 아름답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생각하고 살면 우리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백일학교에서 꿈을 구체화하고 청년공동체를 만들다

 

나는 감히 확신한다. 우리는 본래 아름다운 존재이며 그 사실을 믿고 지금의 시스템에선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신념을 갖고 나 자체로 살아간다면 우린 분명 진짜 행복할 수 있고 진짜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이미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백일학교를 통해 만나뵈었던 많은 스승님들께서는 바로 그 점을 더욱 확신하도록 해 주셨다. 똑똑한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닌, 학벌과 경제적으로 나를 평가해 주시는 것이 아닌, ‘나’라는 인간 자체를 사랑해 주셨다. 우리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기성의 틀을 깨고 새로운, 우리 모두를 위한 틀을 개척해야만 한다. 어느 한 사람만을 뽑는 시스템에서 모두 다 개성으로 존중 받고 각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서 인정받고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진실된 마음을 나눠도 거리낌 없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진정성 있게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고, 옆 사람과 손잡고 가는 것, 그것이 우리 20대의 할 일이 아닐까?

주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그만두었을 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서 나는 내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고 6년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며 계속해서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려 귀농을 했고, 그 꿈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 백일학교를 다니고 졸업하였고, 현재 그 꿈의 실현체인 청년공동체 마을을 현실화시켜 가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믿는다. 사람은 나름의 생명 가치를 부여받은 존재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진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다 밝은 존재로서 함께 세상을 비춰야 할 책임이 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과 차별 속에서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은 좌절할 필요가 없다. 슬퍼할 필요도 없다. 진짜 ‘나’로 살면 된다. 그리고 그 틀을 깨고 나오면 된다. 새로운 틀을 개척하면 된다. 돈과 권력이 우리에게 어떤 옷을 입히더라도 내가 아름다운 나 자신이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우리에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패기와 젊음이 있고, 모든 진정성 없는 껍데기를 벗어던질 용기 또한 가지고 있다.

청년들과 진정성 있게 함께 할 수 있는 꿈의 무대에서 흥겹게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날이 코앞에 닥친 지금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의 진짜 영원한 스펙은 나 자신, 아름다운 나이다. 이 땅을 물려주신 선조들은 피와 땀으로 젊음을 불살라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셨다. 이제 우리가 젊음을 불살라 아름답게 살려내고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린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기에, 젊기에, 진심을 담아낼 수 있기에 그 어느 것도 침범치 못할 스펙을 가지고 있다.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