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궁궁을을, 을의 반격이 시작됐다

3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반란이냐 혁명이냐, 아니면 개벽이냐

 

 

* 이 원고는 개벽신문 40호(2015년 2월호) 특집 ‘갑’ ‘을’에 실리는 원고입니다.

 

박길수 (본지주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대표)

 

 

 

*이 사진은 1895년 을미년 4월, 서울에서 재판을 받던 중 촬영한 것이다.

 


두 갑자 을미년


지금부터 60년 전, 1955년 을미년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맞이하였다. 특히 그해에는 봄비가 잦아 보리흉년이 들었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고난의 해였다고 기록은 전한다.

1895년의 을미년에는 을미사변(민비시해사건이토 히로부미를 정점으로 하는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낭인들을 내세워 민비를 시해한 사건), 을미의병(민비 시해사건의 책임을 묻고, 단발령 등에 저항하기 위하여 유인석, 이소응 등이 주도하여 전개한 의병전쟁, 동학농민군 잔여 세력이 대거 가담하였다), 을미개혁(을미사변 직후 일본의 개입에 의해 추진된 조선의 제도 개혁, 종두법 실시, 우체국 설치 등의 조치 외에 양력을 시행하는 것이 골자가 된다. 이는 조선의 정치 사회 체제를 일본의 것과 조화시킴으로써 이후 식민지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조처의 성격이 짙다.)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1895424(3.30), 서울 종로 부근의 전옥서와 시내 모처(未詳)의 감옥에서는 전봉준, 손화중, 성두한, 최경선 등이 처형(교수형)을 당한 해가 바로 을미년이다. 갑오년(1894)년 정월, 호기롭게 길을 나선 동무(同謀)들이 그렇게 스러짐으로써, 그 이후 오늘에 이르는 두 갑자 을미년의 역사는 질곡의 뼈대 위에 간간이 꽃을 피우는 고난스런 시절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두 번째 맞이하는 을미년, 시운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갑의 시대에서 을의 시대로


갑오년(2014)’에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화두 중 하나는 단연 갑질이다. 그렇다면 을미년(2015)’? 새해를 맞이하면서는 덕담 삼아, 을미년은 청양(=, =)이라 하여 양의 평화로움(온순함)이나 상서로움을 주목하여 기대 섞인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무리지어 생활하는 양의 습성에 주목하여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갑질에 주목하여 생각해 보면 을미년은 을의 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지난해 갑오년을 마감하며 대학교수들이 꼽은 사자성어는 ‘지록위마(말을 가리켜 사슴이라 한다)’는 말이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력을 좌우하는 세태를 일컫는 말이다. 갑오년을 시작할 때 대학교수들이 희망한 한 해의 전망은 전미개오였다. 그야말로 정면에서 희망을 짓문지른 한해였던 셈이다. 올해, 을미년을 시작하며 대학교수들이 내놓은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을은 본디 갑의 ‘아랫것’이 아니라 천심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민심의 그 민(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그 민조차 갈가리 찢기고 오염되었지만, 그 근본과 근원은 결코 훼상될 수 없는 것이니, 을의 시대를 여는 화두로서는 더없이 맞춤한 말이다. 

()’은 도약을 준비하는 사람


음양오행으로 볼 때 을은 나무(), 특히 동토(凍土)를 뚫고 갓 돋아난 새싹이며, 그래서 청()이다. 이를 두고, 극한으로 치달아 온 남북한 간의 갈등 기조가 올해에는 놀랄 만큼의 속도와 크기로 타개되어 갈 것으로 점치는 사람도 있다.

은 도약하기 위하여 무릎을 구부린 사람으로, 다시 말해 준비또는 공부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한다. 은 튀어 오르기 위해 눌려진 스프링 상태의 모습이다.

무릎을 구부린다는 것은 하는 것, 다시 말해 자기 겸양의 태도와 통하며, 또한 공부(독서)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이기도 하다. 무릎을 꿇고 하는 공부(독서)란 당연 지식의 축적 혹은 입시(과거)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수양으로서의 공부를 말한다. 준비란 막연한 미래를 대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눈앞에 닥쳐오는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를 지칭한다.

 

()’을 품은 집, 봉황각(鳳凰閣)


지금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봉황각(鳳凰閣)이라고 하는 집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1910년에 지은 집이다. 이 집에서는 1912년부터 1915년까지 전국에서 7차에 걸쳐 선발된 총 483명의 천도교(동학) 지도자들이 49일 수련을 통해 단련(鍛鍊)된다. 이들은 훗날 각 지역의 3.1운동을 이끌어가는 핵심 지도자들이 된다.


이들이 49일 수련을 통해 육신 관념을 성령 관념으로 바꿔나가는 수련(以身換性)을 하던 집, 봉황각의 평면도(위에서 본 모습)자형(乙 字形)이다. 이 집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주문 수련(呪文 修煉 : 동학시대 때부터 내려온 천도교의 수양 방법)을 통해 한울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부하는 집으로서 봉황각을 을 자형으로 지은 것은 탁월한 혜안, 심오한 영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봉황각의 정면 모습과 을 자형으로 드러난 평면도(왼쪽)

 

 

을의 반격, 반란이냐? 혁명이냐?


한편 눌려진 스프링은 또한 분노가 응축된 민중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그야말로 의 천지다. ‘노인(조부모) 세대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천대 받는 데 대한 응어리진 분노가, ‘부모 세대는 과도한 주거비(전세난, 집값)나 교육비에 대한 스트레스(분노), ‘자식 세대오포[연대, 결혼, 출산, 연대(인간관계), 내집]세대라는 저주스러운 호칭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다. 거대한 마그마를 품은 휴화산에서 삐져나온 용암 줄기가 최근의 갑질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다.

이 정도에서 그칠 것인가? 이제 겨우 을미년이 시작된 것이고 보면(실제 음력으로는 아직도 갑오년이지만), ‘을의 반격역시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을의 반격은 어떤 모양으로 전개될 것인가? ‘민란을 예기(豫期)하는 사람도 있고, 선동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최근 연말정산을 둘러싼 정책 혼선은, 국민을 을은커녕 ()’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저지른 일을 잠시 거둬 들이는 잠정 후퇴로 귀결되는 듯하지만, 그건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증세란 없다는 말은 여전히 견고하게 유효하다. 다만, 그건 부자에 대한 증세가 없다는 말이었음이 드러난 점이 씁쓸할 뿐. 을인 납세자들의 반격이 먹혀든 것인가? 글쎄다.

칼바람 속에서 고공 농성 중인 쌍용차 문제밀양 할머니들의 사례로 보건대 상황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더군다나 “81”의 압도적인 스코어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정당하나쯤은 순식간에 공중분해 시켜 버리는 슈퍼갑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을의 반격이 한낱 찻잔 속의 미풍에 그치고 말 것으로 점치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대 회전(會戰)의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일 뿐이다. 승리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반란이다.

 

너는 누구에게 인 적이 없느냐?


이 세상에 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역시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갑질을노릇이다. ‘이 넘쳐나고 그에 따라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는 세상이지만, 세상에는 의 숫자만큼의 이 존재한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이 되는 것이 세상사 이치 아닌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있다. 하다못해 한강삼아 갑질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란 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4대강 살리기란 정치/경제의 권력자이 자연에게 대대적인 갑질을 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도 (자연)’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지구촌 차원에서는 기상이변기후온난화가 임계점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해 가는 이상기후의 징표들은 갑으로서의 인류(人類)의 장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조금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연탄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중에서)”라는 시에 빗대어 말하자면, “갑질 함부로 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을이었던 적이 없느냐!”란 말도 성립되고, “갑질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갑질 안 한 적이 있느냐.”라는 말도 성립된다. 양비론으로 사태를 얼버무리자는 게 아니다. 좀 더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말이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라는 노래는 1894년 갑오년에 불리던 노래(참요)라고 알려져 있다. 갑오년(1894)에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을미년(1895)까지 질질 끌다가 병신년(1896)을 맞이하면 새 세상(甲午世)는 영영 이루지 못한다는 예언(豫言)을 담고 있다고 풀이한다.

그도 맞다. 그러나 한 걸음 나아가, 이 노래는 백성(시민)이 홀로 배 부른 자(권력자)들에게 대들며 서로를 격려하는 노래이며, 조선인(3세계민중)이 일본(제국주의) 세력의 발호에 대항하는 저항의 노래이며, 후천 세상의 주인이 선천 세상의 낡은 세력에게 호소하는 우주적 차원의 을의 노래이다.

문제는 찌질한 을에서 우주적 차원의 을로 거듭날 수 있는가, 아닌가이다. 방법은 없는가?

 

궁궁을을 시호시호


궁을(弓乙) 혹은 궁궁을을(弓弓乙乙)은 동학(東學)이 내세우는 후천 세상의 비결(秘訣)이다. 이는 한울님이 수운 선생에게 주신 영부(靈符)의 형상(形狀)이기도 하고, 그 영부가 이 세상에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해월 선생의 글에는 산도 이롭지 않고 물도 이롭지 않고 이로운 것은 화살을 당기고 있는 그 사이에 있느니라(山不利 水不利 利在挽弓之間)”는 시()가 있다. 궁과 을의 글자 모양 그대로, 화살을 쏘아 낼 수 있는 에너지를 담은, 도약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자세이다.

준비를 마친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처자(妻子) 불러 효유(曉諭, 遺言)까지 마치고 마음의 죽창을 꼬나들며 전장으로 떠나는 전사(戰士)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의 입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이때로다! 이때로다!(時乎時乎) 다시 못 올 이때로다!(不再來之 時乎)”이니, 지금이야말로, 궁궁을을, 그의 시대이다.

반란이냐, 혁명이냐, 아니면, 개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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