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 독감으로 인한 작은 깨달음

4 years ago by in Society

한명철 / 농부

 

* 이 글은 <개벽신문>에 투고된 글입니다. 

 

아직은 겨울이다겨울엔 눈이 내려야 겨울답다세상이 온통 하얀 설원으로 펼쳐진 이 산하는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준다하지만 올겨울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경북으로 이어지는 영동지방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과 함께 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뉴스보도를 보며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집과 건물이 무너지고축사와 비닐하우스가 주저앉고외부와 고립되고생사가 갈리는 모습을 보며 오죽하면 눈폭탄이라 불렀겠는가 싶다그렇다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누구 탓이냐고 물을 수도 없다하늘을 선(善)이냐 불선(不善)이냐 판단할 수 없다그래서 <도덕경>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지 않았는가?


겨울은 춥다그리고 추워야만 한다시골 속담에 겨울에 추워야 농사가 잘 된다라는 말이 있다이는 곧매서운 추위가 병해충을 예방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올겨울은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크게 춥지 않았다설 명절 때는 영상 17-18도까지 기록했다더워서 땀이 나고 반팔을 입었으며 심지어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에어컨마저 틀었다너무나 희한한(?) 경험이기도 했고 이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생각하게 되었다이러한 기후변화는 동시에 직접적인 재앙이기도 한다바로 조류독감이른바 AI가 창궐했기 때문이다.

 

나이 스물 셋에 이런저런 가축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키우며 살았던 시절이었다소득사업으로 닭을 입식하였는데 그해 전라북도 익산을 시작으로 조류독감이 크게 확산되었다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전남 곡성은 전북과 인접해 있지만 조류독감 청정지역으로 선정되어 강제 폐사하는 위기도 모면했고 되려 출하를 할 수 있었다엄청난 강제폐사의 살처분 폭풍으로 그 당시 전북에는 닭이 없다는 말이 나돌았고 그렇게 대목인 여름철닭 값이 폭등하여 얼떨결에 상당히 큰돈을 벌 수 있었다시골 살면서 농사로 목돈을 만지는 기회가 없었던 까닭에 밀린 사료값과 이리저리 신세진 돈농협 빚을 일부 갚고 나머지 돈으로는 70세가 넘으신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보일러를 바꿔드렸다.

 

꽤나 돈을 많이 들여 바꿔드린 보일러는 축열식 화목보일러였는데 어머니께서 살고 계신 집 평수보다 더 윗단계의 용량으로 설치했다어머니 집은 단열이 안 되고 웃풍이 있어서 겨울에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공기가 차서 입김이 서릴 정도였는데 이제는 더워서 홑이불 덮고 잘 정도였다어머니는 매일 찜질하는 기분이라며 너무 좋아 하셨다나는 내심 닭 키우길 잘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11월 말농장에서 일하고 있던 내게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셔서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명철아불이 낫씨야 불워매 불이 나붓써어찌까이 불~~~.”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일단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자초지정을 물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애타는 목소리였다나는 아이고 오마니보일라 옆쪽에 보믄 수도꼭지 달아 놓은 거 있자네요고거 한 번 틀어서 꺼 봇쇼!”하고 말씀을 드렸다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아이고 참말로 그 정도가 아니여너가 언능 와야글고 119도 불르고언능 싸게싸게 와야여그 불낫씨야!”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로 10분 넘게 걸리는 어머니의 집을 5분 만에 도착해보니 정말 집이 불타고 있었다대보름 때 달집 태우듯이 정말 활활 타올랐다긴 겨울을 대비해 두툼한 장작을 집 뒤안에 가득가득 쟁여놨는데 거기까지 불이 번져서 화력이 어마어마했다어찌나 잘 타던지 접근은커녕 7-8미터는 떨어져야 뜨겁지 않았다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불타는 집을 바라봐야했다

 

소방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어머니의 안위를 살피며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내용인 즉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때다가 장작이 조금 튀어나와 아궁이를 채 닫을 수 없어서 어머니는 잠깐 텔레비를 보고 와서 닫아야겠다고 생각하고선 방에 들어가셨다드라마를 너무나 좋아하신 어머니는 그만 그 연속극이 끝나고서야 밖으로 나오셨고 그 때 이미 보일러에서부터 불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고…… 

 

소방차가 오고 진화채비를 하는 소방관들에게 나는 이미 이만치 꼬실라진 집마저 싹 꼬실라져 부러라고 서두르지 마씨요불 끄다가 다치믄 안 됭께.” 이렇게 당부했다벽돌이 새빨갛게 달군 쇠처럼 벌게지는 웅장한 불구경을 또 언제 하겠나 싶기도 하고 어설프게 불난 집보다 아예 다시 집을 짓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그날 밤어머니는 부락에 친한 아주머니 댁에서 주무시게 하고 나는 읍내 여관방으로 가서 지치고 심란한 몸을 누였다자정을 넘겨도 잠은 얼른 오지 않고 홀로 깡소주를 쪼로록 따르며 긴 하루를 보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내 인생에 이 일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곰곰이 생각하며 이런 결론을 내리며 잠이 들었다우선은 닭의 희생을 마음아파 하지 않은 죄내가 키웠던 닭은 나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었는데 나는 이들을 위해 전혀 마음아파하지 않았다소위 돈 벌라고 닭을 기른 것인데 어찌되었던 닭 값이 올라서 나 돈 벌었으니 그만이다 싶었다더 나쁜 마음이란 때마침 조류독감 때 닭을 키웠던 것이 행운이었다 싶은 심보였다기실닭 값이 크게 오른 것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이웃의 닭들이 억울한 생매장을 당한 까닭인데…… 또한 그 작고 귀여운 병아리 때부터 키워왔던 축산농가의 찢어지는 심정을같은 일을 하는 농민으로서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지는 못할망정 가축을 기른다는 사람이 이를 행운이라 좋아라하고 그 돈으로 어머니께 좋은 일 했다고 뿌듯해 함은 마땅히 벌을 받을 일이리라그렇기 때문에 내게 이렇게 강한 시련으로써 깨닫게 함이리라.

 

세월이 많이 지난 일이긴 하나 지금도 당시의 일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어떻게 보면 20대의 순진한 발상이기도 하겠거니와 불심 깊은 불자집안에서 자라온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명을 다루는 농민으로서 내 마음가짐이 옳지 않았음이다그리고 큰 아픔과 시련이긴 했지만 어머니께서 화마로부터 무사하셨고 나는 가축을 기르는 일을 그만두면서 뭇 생명들에 대하여 깊은 사랑과 관심그리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 값진가!

 

닭이나 오리들의 생매장하여 살처분하는 모습이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기 때문에 텔레비에서는 세세히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또한 그 찢어지는 심정의 농민들의 아픔과 고통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오늘도 감정하나 전달하지 못할 건조한 살처분 숫자와 발생지역확산의 경로와 범위농가보상을 뉴스에서 보도할 것이다비상사태라고 국민들을 세뇌하여 살처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박을 할 것이며 농림부나 농촌진흥청 혹은 홈쇼핑대형마트 어딘가에서는 우리 닭고기오리고기 안심하고 드세요하고 생긋 웃으면서 허멀건 얼굴을 들이 밀 것이다.

 

또랑또랑한 산 생명의 눈 한 번을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면애지중지하며 가축을 길러 본 적이 있었다면혹은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교회나절이나성당교당에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글귀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읽고 실천했다면 우리의 삶이나 이 세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리라끝으로 인간으로부터 길러진 까닭에 아무것도 모른 채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차가운 땅속에 산채로 묻혀야하는 뭇 생명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까워 글 몇 자와 눈물로 속죄한다.


“畜犧人悲 難得解之事 汝犧由我們而利 故感悲以作書”(짐승의 희생을 사람이 슬퍼함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너희의 희생은 인간의 이익으로 말미암은 까닭에슬픔을 느끼어 이 글을 쓰다).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