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년 3.1절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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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1절 기념행사를 하며

 

==식후, 의암성사 동상 참례 행렬 선도 풍물 — 어느 동아리에 맡겼다. / 심정이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2시 30분에 출발하려던 올레길을 3시에 출발 — 1시간 30분만에 종료

–사람은 적었지만, 느낌은 좋았다. 특히 이틀 전, 전문가들을 모시고 진행한 올레길 이야기를 전하면서 스스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이 길은 오늘날 천도교 포덕의 가장 선진적인 길이 될 것입니다.”

–>관련 소감은 별로 포스팅

 

==돌아와서 신인간이사 – 대주주 간담회(뒤끝에 참석)

 

==간담회 후 편집장과 3월 1일자 신문 (12면 구성과 3.1절 기사를 넣을 것인지 여부)

 

==편집회의 말미에 용담축제 얘기 (편집장과 얘기하는 동안 사장실에서 김정호, 윤태원, 최용근 얘기 – 왜 나를 부르지 않을까?)

 

==결국 오늘도 4개의 회의를 진행한 셈이 됐다. 회의 결과에 따른 일은 밤에 해야 하고… /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최은석에게 왈 “청년들에게 섭섭한 것이 많다. 청년들의 말랑말랑한 머리가 필요한데”라고 ‘아쉬운 듯’ 말했다. 

—그러나 사실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청년들이 “청년회 발전”을 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청년들의 활동이 중앙총부에 피드백되지 못하고, 청년들끼리 기획하고 마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청년회장 왈 “요즘 애들이 ‘보상/대가’ 없이는 (청년회/천도교) 활동을 못한다/안 한다” 

—맞는 얘기긴 하지만, 그러면, 천도교는 누가 어떻게 일구고 이끌어 가야 하는 건지?

 

==그러나 오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3.1운동과 천도교, 3.1절의 천도교의 위상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풍물 대오를 만들어서 인사동 거리를 행진할 때는 제법 주목을 받는 듯하였지만,

–그건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인사동과 종로 일대라는 “면”의 차원에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바로 인접한 인사동 거리는 발붙일 데조차 없을 만큼 사람이 박작거리는 데도 불구하고,

–대교당 마당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이러고도 천도교중앙대교당이 3.1운동의 원동력을 제공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교당을 중심으로 하는 이벤트(독립선언서 인쇄하기 등), 삼일대로를 꾸미는 이벤트(궁을기와 태극기의 거리)

–결국은 예산이 문제가 된다. — 예산을 마련하는 이벤트(성금 모금)

–대교당 전시실을 이용한 전시회

–공모 또는 스티커, 또는 안내전단 나눠주기 이벤트. 

–얼마 전에 만들었던 3.1올레길 책자 증보판 제작

 

———–

–3.1올레 이후, 동학올레와 천도교올레 행사도 꾸준히, 정기적으로 시행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새로운 스토리 발굴을 위한 답사여행 성격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

–주제별로 심화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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