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4 years ago by in 개벽과 뉴스
– 역사란 무엇인가(1)
 
(어제), 오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청태종(皇太極)이 묻혀 있는 베이링공원(北陵公園)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어제), 오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청태종(皇太極)이 묻혀 있는 베이링공원(北陵公園)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 앉아 이 글을 쓴다.</p>

<p>청태종은 조선 인조 정권 당시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잇따라 일으켜, 마침내 인조 임금으로 하여금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만든 그다.</p>

<p>그런데, 이 청태종을 한국(조선)은 역사적으로 이상하리만치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조선 국왕인 인조를 악역 취급하고 청태종을 징벌자 역할로 배정할 정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하는 대체 역사소설인 박씨전, 임경업전 등에서도 침략자인 청태종을 직접적으로 비하한 묘사는 별로 없다고 한다.</p>

<p>그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청태종이 적의 군주라고는 하지만 치세 기간 동안 (중국의) "명군"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는 점, 병자호란의 참혹한 결말이라는 것도 그 특성상 "무능한" 군주 인조와 서인들의 뻘짓과 김자점의 매국 행위가 더해져 벌어진 결과라는 점 때문이라고.</p>

<p>청나라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승리한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과는 달리 병자호란 이후 명을 대신한 새로운 상국이 되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p>

<p>또 하나, 조선에서 "적당한 수준(?)"에서 물러났다거나, 적장에게조차 관대한 '대인배적 풍모'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포로가 되어 끌려온 임경업 장군이 갑자기 청나라 병사의 칼을 빼앗아 위협을 했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담력을 높이 사서 호위 무사들에게 임경업을 해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경업 장군은 청태종의 이런 대인배적인 행동에 스스로 칼을 내려놨다고.</p>

<p>청태종은 중원 진출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청의 행정제도를 개편하고 팔기군제를 확립했으며, 조선을 쳐서 배후를 안정시키고 몽골과 동북 지역을 석권하여 중원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로 청의 기초를 굳건히 확립한 문무겸비의 명군이다.</p>

<p>한때 적성국가(?)였던 러시아에 귀화하여, 한국이 땄을지도 모를 금메달을 따간 '안현수'에 대한 지지와 찬사가 나라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가 예전에 '한국인'이었다는 '유사 민족주의'보다는 현재의 '한국(빙상연맹)'의 희생자라는 이유(와, 그러므로 한국(빙상연맹) 사회에 대한 반감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겨난 열기라는 점이 예전에 보지 못하던 일이다.</p>

<p>'인식'에 선행하는 이러한 '존재'들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해 나가는 안목이 필요하다. ... 공부꺼리가 또 하나 늘었다.</p>

<p>(아래 사진은 북릉공원의 청태종 황태극의 동상, 동상 아래 두 분은 중국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무도(?)를 즐기시는 어르신들 중의 한쌍. 동상 주변으로 100쌍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분들이 쌍쌍이 혹은 열을 지어 무도를 즐기고 계셨다.)
 
 
 
 
 
 
 
 
 
 


(사진은 북릉공원의 청태종 황태극의 동상, 동상 아래 두 분은 중국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무도(?)를 즐기시는 어르신들 중의 한쌍. 동상 주변으로 100쌍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분들이 쌍쌍이 혹은 열을 지어 무도를 즐기고 계셨다.)
 
1. 
 
청태종은 조선 인조 정권 당시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잇따라 일으켜, 마침내 인조 임금으로 하여금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만든 그다. 

그런데, 이 청태종을 한국(조선)은 역사적으로 이상하리만치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조선 국왕인 인조를 악역 취급하고 청태종을 징벌자 역할로 배정할 정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하는 대체 역사소설인 박씨전, 임경업전 등에서도 침략자인 청태종을 직접적으로 비하한 묘사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청태종이 적의 군주라고는 하지만 치세 기간 동안 (중국의) “명군”으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다는 점, 병자호란의 참혹한 결말이라는 것도 그 특성상 “무능한” 군주 인조와 서인들의 뻘짓과 김자점의 매국 행위가 더해져 벌어진 결과라는 점 때문이라고. 

청나라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승리한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과는 달리 병자호란 이후 명을 대신한 새로운 상국이 되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또 하나, 조선에서 “적당한 수준(?)”에서 물러났다거나, 적장에게조차 관대한 ‘대인배적 풍모’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포로가 되어 끌려온 임경업 장군이 갑자기 청나라 병사의 칼을 빼앗아 위협을 했는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담력을 높이 사서 호위 무사들에게 임경업을 해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경업 장군은 청태종의 이런 대인배적인 행동에 스스로 칼을 내려놨다고.

청태종은 중원 진출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청의 행정제도를 개편하고 팔기군제를 확립했으며, 조선을 쳐서 배후를 안정시키고 몽골과 동북 지역을 석권하여 중원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로 청의 기초를 굳건히 확립한 문무겸비의 명군이다. 

2. 


한때 적성국가(?)였던 러시아에 귀화하여, 한국이 땄을지도 모를 금메달을 따간 ‘안현수’에 대한 지지와 찬사가 나라 안팎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가 예전에 ‘한국인’이었다는 ‘유사 민족주의’보다는 현재의 ‘한국(빙상연맹)’의 희생자라는 이유(와, 그러므로 한국(빙상연맹) 사회에 대한 반감에 대한 반대급부)로 생겨난 열기라는 점이 예전에 보지 못하던 일이다. 

‘인식’에 선행하는 이러한 ‘존재’들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해 나가는 안목이 필요하다. … 공부꺼리가 또 하나 늘었다. 


(추가) 역사의 진실을 고수한다는 명분으로, 한가지 사실 혹은 하나의 사관을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질적인 오류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역사에 스스로를 옭아매어 나름 ‘배수진’을 치는 것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결국 자기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다는 ‘게으름뱅이’ 내지 ‘(결과적으로)보(고)수주의’에 지나지 않는 행위이다. 

나라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고 자벽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변화 그 자체 위를 걸어간다. 나는 안 변한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오직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일 뿐. 

동학의 역사, 동학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 동학(천도교)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기여의) 가능성도 물론 변화한다. 그 변화의 방향이, 현재 동학(천도교)인들이 바라는 방향이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대안을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도, 동학에 대한 또하나의 이해의 방식일 뿐, 그것이 그러한 이해(해석)의 성공을 보장하는 그 어떤 결정적인 이유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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