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전국화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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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시론)
 
 

*사진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지금 어린이 전시실 개관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볼꺼리가 참 많다.140127 촬영)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의 해를 맞으며, 

가장 의의 있는 성과 가운데 하나는, 오랫동안 소원(疏遠)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천도교와 동학진영이 서로 연대하여 120주년을 준비하고 기념하며

나아가 이러한 연대의 틀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동학의 계승과 선양, 기념을 해 나가기로 잠정 합의한 점이다. 

 

어느쪽이든 그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고, 

또 그런 만큼, 필요에 부응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의지 또한 확고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산과 골짜기, 격류 흐르는 강물의 장애들은 만만치 않다.

 

며칠 전에는 천도교 동학농민혁명12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실행위원으로서

전라도 정읍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관계자들을 만나 

몇 가지 사안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또 더불어 정읍시에서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 관련단체(정읍관내) 간담회를 참관했다. 

 

공식 논의의 주제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좀더 진척이 된 후에,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공지하고,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으며, 

우리들이 풀어나가야 할 고리들 중의 하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천도교와 동학진영(기념재단)이 

올해를 맞이하며 목포로 내세운 구호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라는 세 가지로 “공통적”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며칠 전의 정읍 지역 순방을 통해 그분들이 하는 말씀을 통해서

그분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였겠으나, 그분들이 생각하는 “전국화”와

우리들(천도교)이 생각하는 전국화의 의미조차 그 사이의 간극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였다.

 

좀 거칠게 재단하여 말하자면, 그분들이 생각하는 “전국화”란, 부지불식간에,

전라도에 국한된 동학의 열기와 관심에 전국저인 호응이 일어나서, 

전국 각지에서 전라도 지역에 찾아와 동학 행사에 참가하고, 전라도 지역을 순례하는 것이

왈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분들도 통상적인 의미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

 즉,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들이 봉기하였음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국화란 첫째,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지역에 국한에서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

그리고 오늘날의 북한 권역에서까지 ‘동학농민’들이 봉기한 사건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국민 다수는 ‘전봉준’과 ‘고부’ ‘만석보’ ‘조병갑’ 정도를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키워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국화의 두 번째 의미는,

동학농민혁명의 참된 의미를 전국적인 단위를 아울러 조명하고 구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 1894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사건으로 국한하는 시간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860년의 동학창도에서부터, 1890년대 초의 동학 조직의 폭발적 증대,

1892년 이후의 일련의 취회, 1893년의 동학집회들을 계기적으로 이해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을 전면적, 종합적으로 이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1894년 이후 동학농민혁명의 발전적 흐름과 그 결실로서의 천도교 대고천하까지를 아울러 이해해야만

동학농민혁명이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시기에만 존재했던 국부적 사건이 아님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다. 그러나, 그래도 동학 하면 전봉준 아닌가”라는 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하면,

결코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국화의 세 번째 의미는, 나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다.

“내가 신앙하는 종교(의 교리)만을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종교간 대화, 또는 종교다원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말이다.

현재의 동학농민혁명 진영의 많은 분들은 오랫동안 ‘동학’이 탄압 받아온 데 대한 보상 심리와

동학이 ‘충분히 평가되고 조명받고 있지 못하다’라는 데 대한 트라우마에 가까운 심리적 방어기제로 인하여

“우리 지역의 동학”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한계에 봉착해 있다.

다른 지역의 사건들은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종속 변수이거나 부차적 사건으로 치부하는 심리가 완강하다.

심지어는 충청도 동학(그분들이 볼 때는 ‘종교’적 사건)의 흐름과 해월 최시형 중심의 교단적 움직임은

동학농민혁명의 본류와는 일정 정도 거리가 있는 부차적인 사건인 것으로 이해하거나,

아예 무지한(무관심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것만 알아서는 결코 내 것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내가 가진 사과가 큰지 작은지는, 다른 사람이 가진 사과의 크기를 이것 저것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내가 가진 사과는 큰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진 사과는 알 필요(여유)도 없거니와,

설령 그것이 더 크더라도, 그것은 맛이 없거나 색깔이 안 예쁜 것이라는 식의 선입견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

그래서, 그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말이다.

올해 겨우 새로운 한 발을 떼었다.

함께 길을 가며, 부대끼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하는 사이라면, 설령 실수와 못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신뢰가 없다면, 설령 잘하는 일이 있더라도 질시와 트집이 우선할 것이다.


천도교의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은 단순히 기념행사 하나를 치러는 일이 아니다.

와해되어 버린 동학 천도교의 역사를 복원하고, 갈가리 찢긴 동학의 몸집을 재생시키고 부활시켜 가는 과정이다.


그 험난한 길 위로, 오늘은 촉촉히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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