宿命(運命)

4 years ago by in Thought

宿命(運命)


 


* 정신개혁시민협의회 이자현 상임대표님이 개벽신문으로 보내오신 글입니다.  

* 위 이미지는 http://www.morguefile.com/ (이미지 무료 제공 사이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1.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는《회남자(淮南子)》<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날,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노인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낙심하고 있는데 얼마 뒤에 그 말이 한 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와 노인이 좋아하였습니다. 이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목숨을 구하게 되어 노인이 다시 기뻐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입니다.

 

 

 

중국 전학(轉學)시대 경학가(經學家) 유향(向)(BC77~BC6)은 “宿命(運命)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자신을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숙명(운명)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며,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기 위해 점(占)을 칩니다. 그리고 부귀빈천(富貴貧賤)과 길흉을 가늠하기 위해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보고 나름대로 판단합니다. 점(占)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길흉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팔자는 각자 개개인의 타고난 숙명(宿命) 또는 운명(運命)의 부귀빈천 및 길흉화복의 장기적인 사항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숙명은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관계에서 내가 부모가 싫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근본을 바꿀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운명은 후천적인 성향이 가미되어 본인의 선택과 노력으로 변화가 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쉬운 예를 든다면 숙명은, 나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어 온 피할 수가 없는 것이며, 운명은 내 앞에서 전개되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막거나 피할 수는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팔자소관(八字所關)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사람의 운명은 타고난 팔자(八字 “年,月,日,時”의 간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숙명(宿命)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며, 운명은 사람들이 똑같이 태어났어도 팔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성실히 극복해 간다면 운명(運命)은 분명히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팔자를 고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바로알고  분수를 지키며, 자신의 능력에 맞게 자기개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어려움을 극복한다면 나름대로 성공하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수있다고봅니다.

 

 

 


2.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과 결실의 가을이 옵니다. 잡념을 버리면 일심이 생기고, 일심을 잃으면 망념이 생겨난고, 왕성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너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적게 먹으면 몸이 가벼워 집니다.

 

 

 

잃는것 하나와 얻는것 하나의 차이는? 잃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면 크면 클수록 좋을 것이며, 얻는 것이 내게 해로운 것이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얕은 계산법이 아닙니까? 그런데 잃은 것이 크든 작든, 얻는 것이 크든 작든 그 기준 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것은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내재된 과욕의 기준일 것입니다. 망자(亡者)가 입는 수의(壽衣)에 호주머니가 없듯, 태어나면서 갖고 온 내 손도 빈손이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 갈 때 빈손으로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욕심이 많을수록 그 영식(靈識)이 높이 솟지 못하고 악도(惡道)에 떨어지고 만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치 탁(濁)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라앉는 것과 같고, 욕심과 착심(着心)이 없을수록 그 정신이 높이 솟아 선도(善道)에 몸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해서 사람의 영식이 최후까지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구애(拘碍) 없이 떠나면 그 영로(靈路)에서 극락 장생한다고 합니다.

 

 

 

우주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여여자연(如如自然)합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으로 보면 한 때도 그냥 있는 법이 없습니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변화하고, 지구는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돌고 돌며,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생주이멸(生住異滅)로 변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은 길흉화복으로, 흥망성쇠(興亡盛衰)로 거듭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변/불변(變/不變)의 이치를 알면 인생살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옹지마의 한 촌로처럼 가면 간다고 슬퍼할 것도 없고, 오면 온다고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가면 잡을 것도 없고 오면 가랄 것도 없이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심신작용(心身作用)에 따라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 급(降級)으로 혹은 해(害)에서 은혜가 나오고, 은혜에서 해가 나오게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소우주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진리의 모습과 같은 “하날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리석은 인생은 이 진리를 본받아 심신을 수심정기하는 수행을 하며 참 진리를 깨우쳐 가는 공부를 지성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서 인생 최대의 만복인이 행복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이제 필요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이 바라는 사람다운 인간이 되도록합시다. 길흉화복, 흥망성쇠에 지나치게 마음 쓰지 않으면 인생이 여유로울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한 인간의 본 모습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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