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4 years ago by in Opinion

* 이 글은 <개벽신문> 28호(2014년 1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필자(김시완)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된 글입니다.[편집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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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시완(金時完).

 

아직 명사(名士)의 대열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름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내가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는 우선 나의 뿌리인 성(姓)이 신라(新羅) 왕가(王家)의 성이자 선비 집안의 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면 때를 나타내는 시(時) 자와 완전(完全)하다는 뜻의 완(完) 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름의 의미를 그대로 풀어보면 “때가 완전하다”는 뜻이다. 때가 완전하다는 것은 언제나 제때에 이르게 됨으로써 매사에 지각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흔히 신용사회라 부른다. 그런데 신용의 출발도 따지고 보면 시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제때에 돈을 갚고, 제때에 물건을 넘겨주고, 제때에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신용이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이름은 신용사회의 정착을 위하여 반드시 이행하여야 하는 완전한 때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어느새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일부분이 되었다. 

 

이름이 가져다주는 정체성은 좋은 의미가 많이 담겨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굴레에 가두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지각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내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늘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하여 바삐 서둘러야 하며, 서둘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안절부절 못하며 동동거리게 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보다.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하나가 좋으면 좋지 않은 하나가 있듯이….

 

그런데 너무나 어이없게도 내 이름은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이 원해서 지으신 이름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내 이름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바뀌고 다듬어진 이름이란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의 뿌리인 족보상의 이름이며, 또 하나는 국가와 사회가 공인하는 호적 및 주민등록상의 이름이다. 먼저 족보상의 이름을 보면 시택(時澤)이다. 여기에 쓰인 택자는 저수지를 뜻하는 못 택(澤)자이다. 

 

나는 시택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이름은 내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이름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나는 이 이름으로 인하여 주위의 놀림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택이란 이름을 거꾸로 부르면 택시가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를 아는 사람들, 특히 친구들은 나를 놀리려고 내 이름을 택시라고 불렀다. 그런데 내가 이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음을 하늘이 아셨음인지 언젠가부터 내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그것은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고, 입학 수속을 위하여 제출한 호적등본에 등재된 내 이름은 족보에 기록된 이름과 달리 집 택(宅)자인 시택(時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바뀐 이름도 여전히 별 뜻이 없는 이름임은 물론이고 여전히 택시로 불리니 이름이 결코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한자로 쓰기에는 못 택(澤)자보다 집 택(宅)자가 더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못 택자가 집 택자로 바뀌었을까?

예전에는 출생신고를 제때에 하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고, 또 부모들이 직접 신고한 경우도 그리 많지 않았다. 출생신고를 제때에 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에는 어린아이의 생존율이 매우 낮아서 아이가 태어났다 할지라도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얼마간 성장해서 안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고,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따라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도 먹고살기가 빠듯한 판국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출생신고를 하러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출생신고를 받아주는 읍면동사무소도 집에서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들의 출생신고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던가 보다.

 

결국 부모들이 출생신고를 직접 하지 않음으로 해서 출생신고에 얽힌 웃지 못할 일이 비일비재했다. 호적상에는 형과 동생의 이름이 바뀌기도 했고, 오누이의 성별이 바뀐 경우도 허다했으며, 나아가 출생 연월일이 잘못 기재된 경우도 허다했다. 아마 내 이름 한자가 바뀐 것도 그러한 일련의 사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 부모님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부지런히 일해야 했기에 내 출생신고를 집안의 어르신께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의 어느 장날에 부모님은 면소재지에 장보러 가시는 집안 어르신께 나의 출생신고를 부탁하셨다. 평소 술을 좋아하시던 그분은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막걸리를 드시다가, 장이 파할 무렵에는 대취하시게 되었다. 

댁으로 돌아가려던 길에 문득 부탁받은 일이 떠올라 허겁지겁 면사무소를 찾아가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면서기를 붙잡고 나의 출생신고를 대신하시게 되었는데, 먼저 성은 당신과 같은 김(金) 씨이고, 시(時)자는 집안의 돌림자이니 잊지 않으셨으리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름의 나머지 한 글자인 택 자까지도 기억해 냈지만 한자로 무슨 택 자를 써야 하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퇴근이 급한 면서기가 택자 가운데 가장 쉬운 집 택(宅)자를 임의로 써넣었을 것은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때 제출한 나의 호적등본상 이름은 김시택(金時宅)이었고, 그 이름은 초등학교 6년간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의 수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 원서를 제출하기 위하여 발급 받은 호적등본에는 내 이름이 지금 사용되고 있는 시완(時完)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택이란 이름이 시완으로 바뀌었으니, 우리 부모님은 펄쩍뛰셨지만 나는 바뀐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에게는 이미 별명 아닌 별명으로 택시라 불려졌으니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중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로부터는 택시로 불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시택이란 이름이 시완이란 이름으로, 다시 말해서 집 택(宅)자가 완전할 완(完)자로 바뀌었을까? 

 

1960년대 당시에는 필기구와 잉크가 오늘날의 것에 비하여 성능과 질이 매우 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잉크를 사용하여 쓴 글씨라 할지라도 쉽게 번지기 일쑤였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색이 바래서 알아보기 힘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 쓰여진 이름이 번지거나 색이 바래 있었기 때문에 면서기가 글자를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이고, 급기야 호적 원본의 글씨를 좀더 좋은 잉크와 펜을 사용하여 이름을 알아보기 쉽게 고쳐 쓰는 과정에서 집 택(宅)자가 완전할 완(完)자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집 택자와 완전할 완자는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다같이 갓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집 택(宅) 자는 갓머리 밑에 탁(乇)을 쓰고, 완전할 완(完)자는 갓머리 밑에 으뜸 원(元)자를 쓰다보니 면서기의 눈에는 택(宅)자가 완(完)자로 보였던가 보다.

 

그리하여 내 이름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다른 몇 사람의 손에 의하여 시완이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나를 택시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나를 아는 사람 모두에게 나는 김시완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내 이름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시간은 완벽한 사람”이란 의미로 남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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