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그 사이 오뚜기로 살아가기

2 years ago by in Society



이상과 현실 그 사이 오뚜기로 살아가기

– 김지혜,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면서 오늘을 살고 싶어요

취재·사진| 이혜연·신아호

 

[편집실주] 신림동에서 21년째 살고 있는 서른한 살 아가씨. 14살 차이 나는 남동생 두 명이 있고, 독립심이 강한 가풍에 따라 발랄하고 즐겁게 독립적 삶을 즐기는 중. 친척들의 맹렬한 결혼 압박에서 벗어나 현재는 싱글라이프를 긍정적으로 만끽하는 중. 병원·학교 영양사, 패션 MD, 심리학 공부를 위한 편입 도전 등 풍부한 호기심과 행복을 충족해 줄 길을 스스로 찾아나서는 성격. 현재 새로운 도전인 ‘AIR BNB(일종의 숙박 공유업체)’를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에 찾아온 많은 외국인들과 소통·교류하길 꿈꾸는 중. 30분 이상 자기 생각 바구니 안에서 멍 때릴 수 있고, 스스로에게 누구보다 궁금한 점이 많으며, 딴생각 가득한, 재미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현실과 이상 그 사이,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외줄타기를 아주 재미지게 즐기고 있는 그녀의 즐거운 삶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을 쭉 보면,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일을 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먼저 ‘의(衣)’ 부분을 보면, 패션을 빼놓을 수 없죠. 그 누구보다 패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특히 ‘신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신발은 패션을 완성해 주는 부분이긴 하지만, 옷이나 다른 패션 아이템들보다는 조금 부가적인 아이템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특히 ‘신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혜 :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외동으로 있으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죠. 당시에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림을 불편해할 정도로 내성적이었어요. 그래서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냈죠. 그때 주로 엄마 물건들을 갖고 놀았는데, 특히 발에 맞지 않은 엄마 신발들을 꺼내 신어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신발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형광 연두색 하이힐을 보게 됐어요. 그때 엄마는 무채색 신발을 즐겨 신으셨던 터라, 어두컴컴한 무채색 신발들 중에서 그 하이힐은 단연 눈에 띄었죠. 그 신발을 꺼내서 몰래 신고 방안을 돌아다녔어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고 자연 주목받지 못한 아이였던 제가 그 독특한 연두색 하이힐을 신었을 때 어른이 된 느낌과 함께 누구보다 눈에 띄고 주목받는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하이힐의 높은 굽 위에 선 순간, 구름을 밟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느낌도 받았죠.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고, 그 경험이 제게 ‘신발’에 남들과는 다른 애착을 갖게 해 주었어요. 이후에 케이블 방송이 생기면서 통해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패션 프로그램을 즐겨보기 시작했죠. 방송을 보면서 멋진 구두를 신고 당당히 걷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시각적인 것에서 느껴지는 그 ‘멋짐’은 단순히 그것들이 명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멋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더 강렬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느낌을 계기로 초등학생 때부터 서점을 다니며 패션잡지를 섭렵하기 시작했어요. 여담인데, 5학년 때 한 여선생님이 쓴 모자를 보고 단박에 어떤 브랜드인지 맞추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은 어린애가 벌써부터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을 지으셨죠. 하지만 딱히 명품에 관심이 있어 그랬던 건 아니에요. 잡지를 보면서 다양한 브랜드를 접하다 보니, 그 사이에서 명품 브랜드 역시 알게 된 거죠. 이후 패션에 더욱 관심을 가지면서는 ‘옷’보다는 작은 소품 하나하나에 더 눈길이 갔어요. 어떤 옷을 입었냐보다는, 센스 있게 매치한 시계나 신발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할까요? 그 사이에서 다른 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 사람만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진짜 패션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신발은 더더욱 매력적인 ‘잇 아이템’이구요.

1

그렇군요. 그런 관심들이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Toms’ 브랜드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건가요? 지금이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Toms’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잖아요?

지혜 : 사실 앞서 말한 것처럼 패션에 계속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일단 직업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바로 영양사로 근무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내게 꼭 맞는 일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꿈이 명확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내 직업,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종종 교보문고를 찾아 자기계발서들을 탐독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린 때였는데, 다른 친구들은 꿈을 갖고 있는데 난 분명한 꿈이 없다는 것이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10대에서 20대, 그리고 30대까지도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항상 들르는 단골손님 같은 주제잖아요? 당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순순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스스로의 꿈 강박증을 키워가는 것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일본작가의 『인생 프로젝트』라는 책을 읽고, 책에서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고 가지치기 작업을 거치면서 4가지 큰 관심 카테고리를 추릴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나온 4가지는 패션, 유엔, 행복, 심리학이었어요. 그리고 때 마침 분명한 ‘흐름’이 있는 것처럼, 우연하게 잡지에서 ‘Toms’ 슈즈를 보게 되었죠. 그 잡지를 보면서 어렸을 적 엄마의 구두 위에 올라가 느꼈던 황홀감이 떠올랐어요. 잡지에 적힌 회사 스토리를 읽고, 무턱대고 한국지사 사장님께 메일을 보냈어요. 당시 정말 일하고 싶었기에, 구체적인 채용 계획이 있는지,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자격을 갖춰야하는지 간절함이 담긴 마음으로 메일을 썼죠. 메일을 보내고 나서 얼마 뒤 직접 전화가 왔었는데, 회사에 대해 관심을 보여준 건 고맙지만 채용 계획은 아직 없다는 답을 받았죠. 하지만 상관없었어요. 당장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여기저기서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일해 보고 싶은 패션 관련 업체를 세 군데로 압축했죠. MMMG와 Toms, 그리고 대구의 의류쇼핑몰 이렇게요. Toms에서 연락을 받긴 했지만 일단은 그중 한 곳에서 근무하겠다는 마음으로 채용을 준비했죠. 그렇게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Toms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8개월 전 제가 보낸 메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아르바이트’였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면접에 응했죠. 너무 기대되는 마음에 면접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합격하여 첫 출근을 하게 됐어요.

 

사장님께 직접 채용 문의를 해서 입사하게 된 경우라니 독특하네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을 때 들었던 느낌이 궁금해요. 어땠나요? 지금은 Toms에 들어가고 싶은 친구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혜 :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의 꿈만 같은 기대가 그리 오래가진 않았어요. 제가 너무 이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죠.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상태로 이상만을 바랐기 때문에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갖고 있던 환상들이 박살나는 걸 느꼈어요. 패션 쪽에서 일한다고 하면 화려한 삶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전혀 화려하지 않았죠. 말도 안 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줘야 하고, 막내로 들어갔으니 눈칫밥을 먹으면서 일하기도 했고…. 제가 유통 분야에서 일해서 디자인 부서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직접 일을 하면서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환상의 껍데기를 벗겨내는 혹독한 과정을 거쳤죠. 스스로도 계속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구나 하는 자괴감을 계속 느꼈어요. 그래서 전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무엇보다 이 분야에서 꼭 며칠이라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일을 하면서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이면도 알아야하고, 그 속에서 내 꿈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지, 그저 이상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알아야 하구요. 다만 그 과정에서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거나 스스로의 부족한 점만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너무 이상만 갖는 것도 좋지 않고요. 한마디로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해요.

 

그렇군요. 그래서 그때 패션 분야를 떠나 또 다른 일을 찾게 된 건가요?

지혜 : Toms에서 일하다가 빅토리아 MD의 분야로 옮겨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일하면서 다시금 저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됐어요. 또 Toms 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다시 숨어 버리곤 했는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심리학 관련 도서를 찾아 읽었죠. 그때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심리학 강좌를 듣게 됐어요. 이때 다시금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하고 싶은 것을 만나게 됐죠. 때마침 회사의 재편과 함께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 보고 싶단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어요. 제 나이 29살 때 일이죠.

2

본인이 원하는 것을 계속 찾고,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묻는 것은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보고 싶은 것을 찾고서도 나이 때문에, 아니면 안정적인 현실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잖아요. 지혜 씨는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본인을 이끌어 주는 명확한 기준이나 원동력이 있나요?

지혜 : 명확한 기준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왜냐하면 과거에 제가 꿈이라는 것에 강박을 느꼈던 것처럼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 혹은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전 그저 저 자신에게 관심이 참 많았어요. 내가 누구인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이런 것들에. 이 관심이 항상 절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힘 역시 이 ‘관심’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저는 현재 꿈 강박증에서 벗어나 “꿈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더 이상 꿈은 없고 현재를 즐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요. 왜냐면 요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는데, 전 죽음이 그리 멀지 않다고 느끼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내일을 위한 것이라는, 미래지향적이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 순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자 해요. 유세윤 씨 노래 가사 중에 ‘난 꿈이 없는 게 내 꿈이야.’라는 가사가 있어요. 물론 목표를 잡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죠. 노력하지도 않고 얻으려는 거지 심성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노력이 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그리고 오늘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보여주기 압박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봐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남에게 밀린다는 느낌 때문에 어떻게든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분명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빨리 누군가가 내 문제를 결정해주기 바라죠. 하지만 일단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줄여야 해요. 그리고 남의 기대보다는 내 스스로에게 관심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죠. 경상도말로 하자면 ‘내 쪼대로 해야겠구나.’ 싶어요. 그러면 어느 순간,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리라 느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 속에서 분명한 ‘느낌’을 갖죠. 그때는 그 물길에 몸을 맡겨야 해요. 물론 그것이 정확한 느낌이라는 걸 알기까지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만,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면 그 순간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원동력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짐을 찾아가는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 그 자체에요. 예전에는 보여주기 식의 생활이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재미짐’을 주는 게 어떤 것일까, 지루했던 부분을 재미있게 바꿀 수 있을 건 없을까 생각하며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그 즐거움,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제 원동력이에요.

 

즐거움, 행복. 잘 알고 있지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더 잘 잊는 것들이죠. 스스로를 알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 그 과정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있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지혜 씨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혜 : 이상만 생각하면서 환상만을 꿈꾸었던 삶에서 벗어나 현실을 중시하고 동시에 앞으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또 그 속에서 작년보다 올해 스스로를 더욱 잘 알게 되었죠. 그만큼 아직 궁금한 점도 많아요. 출근길에 느낀 점인데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지? 이 정도면 괜찮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껴요. 또 앞으로 도전하려는 부분에 가슴 두근거리는 재미짐을 느끼고 있죠.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 그저 제 현실을 즐겁게 보내고 있고, ‘이상’에 대해서는 꿈 강박증을 버렸기 때문에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또 알고 싶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죠. 음, 굳이 말하자면 중간? 딱 그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모두 중간 지점에 있죠. 그 속에서 스스로를 궁금해 하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멋져요. 현재 관심 갖고 하는 일은?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는?

지혜 : 현재 ‘헬로우헬로우 서울’이라는 계정을 만들었어요. AIR BNB 사업을 하려구요. AIR BNB는 일종의 홈 쉐어링인데, 살고 있는 집에서 남는 방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빌려주는 거예요. 이번에 한류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 친구가 오기로 해서 아주 기대 중이에요. 또 막상 외국인 친구를 맞이한다 생각하니 서울에 대해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음식이나 문화재 등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 친구에게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니 부족해서요. AIR BNB처럼 현재 무언가를 전파하고 알리는 것에 재미짐을 느끼고 있어요. 또 그 속에서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그러면서 공허함을 느끼기도 해요.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서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렇게 말하면, 앞으로의 포부가 ‘사랑’이 되는 건가요? 하하. 좋은 사람 만나 사랑하면서 더 즐겁고 행복한 오늘을 살고 싶어요.^^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