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곡(검등골)을 거쳐 용담으로

2 years ago by in History Tagged: , , , , , , , ,

검곡(검등골)을 거쳐 용담으로
– 대구동학연구회 동학기행 네 번째

김정수| 천도교 대구대덕교구

 

 ‘대구동학연구회(대표 추연창)’에서 매월 떠나는 <동학기행>의 네 번째 여정은 8월 2일(일) 대구법원 앞에서 시작되었다. 집결시간에 맞추어 법원 앞에 도착하니 연암 추연창, 인암 방상언 직접도훈, 정지창·박현수 교수님, 김창환·정연하·김상목 선생님 이렇게 일곱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부부를 포함 총9명은 간단한 인사와 함께 모닝커피를 한 잔씩 나눈 뒤 방상언 도훈님과 박현수 교수님의 차량에 나눠 타고 출발하였다. 1시간여를 달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포항시 신광면 ‘신광중학교’ 입구에 있는 ‘해월신사(최시형)’의 <대인접물> 법설이 새겨진 기념비. 인암 직접도훈님은 여러 해 전에 어느 밭 가운데 있던 것을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사람을 대할 때에 언제나 어린아이 같이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스승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검곡(검등골) 옛 집터를 찾아간다.

차량을 산아래 마지막 마을인 마북리 마을 어귀의 주차장에 주차한 일행은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천도교 유적지(검곡)>가 2km 남았다는 안내판을 확인한 후 10여 분을 가니 우측에 ‘마북저수지’가 보이고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철조망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는다. 다행히 약간 우회 통과하여 간신히 진입을 할 수 있었다.

다시 10여 분간 전진하니 스승님 옛 집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일행은 상세히 적혀 있는 설명을 자세히 살피지 못해 30여 분 동안 무더운 날씨속에 산속을 헤메게 되었다.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시던 직접도훈님께서는 여러 번 일행에게 송구하고 미안한 심정을 표하셨다. 스승님의 옛집터를 여러 차례 찾아왔지만 일행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해서 당신 스스로 적잖이 많이 당황하신듯 해보였다. 한참만에 박현수 교수님이 마지막 안내표지판을 발견하여 겨우 옛 집터를 찾을 수 있었다. 일행은 청수를 봉전한 후 집터 주변을 둘러보며 스승님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답사, 혹은 여행을 가리켜 얼마 전 읽은 책에서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곳을 찾아 옛 성현들의 ‘얼과 정신’을 본받는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며 생활을 하시던 해월 스승께서는 1861년 용담정으로 수운대신사를 찾아 뵙고 입도한 후, 한달에 서너 번씩 용담정을 찾아가 대신사의 설교, 강론, 도법을 배웠다. 이후 용맹 수련을 거쳐 영해, 영덕, 상주, 흥해, 예천, 청도 등지를 순회하여 많은 포덕을 하여 ‘검악포덕’이라는 별칭을 얻기까지 이곳에 거주하였다. ‘검곡’은 해월 스승님의 생애에서나 동학 역사에서 매우 유서 깊은 곳이 아닐 수 없다.

단체사진을 찍고 난 후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하며 마음속으로 일 년에 한번 씩은 꼭 ‘검곡’을 방문하기로 다짐해 보았다. 하산 후 과일과 간식을 나눠먹은 뒤, 용담정으로 향한다.

40여 분을 달린 차량은 용담성지 입구 식당에서 멈춘다. 벌써 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용담정’ 방문이 처음이신 두 분과 추연창 선생님께서 용담정을 방문하기로 하시고, 나머지 인원은 식당에서 조용히 쉬면서 다음 일정을 준비하기로 했다. 30여 분 후 추연창 선생님 일행은 용담정 방문 후 ‘보은취회’에서 만나뵈었던 남자 분 두 분을 모시고 내려오셨다.

다함께 인사를 나누고 다음 답사 장소인 ‘대신사님 묘소’로 향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신사님 묘소를 참례한 후 김창환 선생은 대신사께서 순도하신 대구 관덕정 터에 1930년경에 세워졌다가 1960년경에 자취없이 사라진 비석의 행방을 찾기 위한 ‘대구에서 수운선생님 비석찾기 100일 1인 시위’의 취지로 비오는 궂은 날씨 속에서 삭발식을 감행하셨다.

이어 해월 스승님의 따님이자 ‘졸업식 노래’의 작곡자 정순철 선생의 모친으로, ‘용담 할머니’로 알려진 근수당 최윤 어르신의 묘소를 참례하였다. 최윤 어르신은 대신사님 순교 후 역적이 살던 곳이라 아무도 돌보는 이 없던 용담에 단신으로 들어가 조그만 집을 짓고 혼자서 용담성지를 지키며 수도생활과 포덕활동을 하시다가 휴전 3년 후인 1956년 향년 78세로 환원하셨다. 그런데 묘소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시는 분이 없어서 빗속을 10여분간 헤메었다. 알고 보니 대신사님 묘소 좌측 뒤편에 대신사님의 모친, 대신사님 아드님이신 세정 내외, 근수당 최윤 어르신의 묘가 모셔져 있었다. 또 한번 동학연구회 분들에게 면목이 없었고 스스로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성지, 유적지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다음 답사 장소인 수운대신사 생가로 향했다. 수운대신사께서 20세 되시던 무렵 화재로 소실되어 그동안 ‘유허비’로만 보존되어 오다가 최근 경주시에 의해 생가가 복원되었다. 생가뿐만 아니라 주차장 시설,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황성공원에 위치한 ‘해월스승님 동상’ 참배는 시간이 허락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대구동학연구회> 일행들은 다음 <여정>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구로 출발한다. 처음 참여한 이번 동학기행을 통해, 현재 나의 ‘천도교 신앙’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떻게 해야 포덕에 도움이 될지 많은 반성과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The author didnt add any Information to his profile yet

  • Published: 403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