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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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의 꿈

최정순| 전주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정을두레 대표

 귀농 4년차, 직장 생활 30년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지 4년째. 지금은 농촌생활에 적응하고 농부로서 제법 농사일에 익숙해졌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밭에 나가 고추를 따거나 풀을 뽑고 땀을 흠뻑 흘리고 목욕을 하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땀을 흘려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도시생활에서 찌든 나의 몸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직장생활 30년, 그것도 기업에서 여성으로서 임원을 한다는 게 얼마나 긴장을 주는지 모른다. 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무한경쟁에 내몰리면서 나의 정신과 육체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퇴직을 하는 다음날부터 3개월간 잠에 푹 빠져들었다. 30년간 부족한 잠을 다 자겠다는 심산으로 출근 걱정 없이 무한정 늦잠을 잤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다

3개월간의 잠의 날들에서 깨어나자 새로운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슬픔과 좌절과 절망의 의식에서 헤어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무작정 귀농한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청양으로, 거창으로, 김제로, 부안으로, 정읍으로 다니면서 농촌생활을 배웠다. 그러나 말로만 듣는 것으로는 농촌을 알 수 없었고 직접 살아보기로 했다. 전북 부안 남편 고향에서 빈집을 빌려 농촌 생활을 시작하고 농사를 지었다. 집을 얻자마자 동서가 빌려준 땅에 서리태를 심었다. 보름 후 밭에 가보니 콩을 새가 다 먹어버려 싹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심었는데 한 개도 안 나다니…. 처음부터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 농사를 계속했다. 퇴비를 뿌리고 마늘과 양파를 심었다. 동네할머니들이 함께 심어주었다. 다음해, 밭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동네할머니들 밭은 깨끗한데 우리 밭은 왜 저럴까? 친환경 농사는 풀과의 싸움이었다. 동네 밭은 제초제를 써서 깨끗하지만 내 밭은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까 풀을 수시로 매야 했다. 새벽마다 풀을 뽑았다. 손에 괭이가 박였다. 동네할머니들은 내 밭을 지나갈 때마다 풀약(제초제)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할머니들은 나를 농사를 모르는 바보로 취급했다. 친환경 농사는 새내기의 모험의 연속이었다.

올해는 고추 농사를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모종 500주를 심고 정성을 다하고 있다. 매년 2번만 따면 탄저병이 왔는데 올해는 모종 심을 때는 현미식초를 매주 주고, 고추가 열리면서 현미식초와 매실 엑기스를 섞어 뿌렸다. 벌써 네 번째 고추를 땄다. 이렇게 간다면 올해는 여섯 번은 딸 것 같다. 태양에 말린 친환경 고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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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런 고구마밭.  여기 고구마꽃은 보기 힘들게 핀 꽃.

 

환갑인 내가 막내로서 농촌으로 정착하다

우리 마을은 남편이 태어난 곳이라 91세, 85세, 68세 동서와 77세의 조카며느리가 산다. 이들은 나의 농사 선생님이다. 때가 되면 무엇을 심어야 하고 깨는 어떻게 베어야 하고 모종은 언제 내어야 하고 김치는 어떻게 담가야 하고 꼬치꼬치 가르쳐 준다. 참깨를 베어야 한다 해서 베어 왔더니 익지도 않은 것을 베었다고 야단이다. 익은 것만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익은 것인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우리 마을에는 35명의 할머니와 8명의 할아버지가 계신다. 할머니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쉬기도 하고 체조도 한다. 마을회관이 대화와 정보 교환의 산실이다. 회관에 가면 할머니들이 무척 좋아하신다. 환갑인 나는 이곳에서 막내다. 젊은 것이 농촌에 와서 산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이 할머니들이 김치를 담글 때, 땅콩을 깔 때, 고구마순을 벗길 때 도와주신다. 많은 양을 할 때는 이 할머니들이 나의 구세주다. 우리 마을에는 독특한 김치가 있다. 고구마순 김치. 고구마순을 까서 부추와 양파를 넣고 갖은 양념을 하여 담근다. 안도현 시인이 극찬했듯이 고구마순 김치는 여름의 별미다. 김치 담그는 비법은 조카며느리가 가지고 있다. 김치를 담글 때면 이 감독자가 오케이 해야 마무리가 된다.

무작정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선 지 4년, 밀월기간은 끝난 것 같다. 비닐하우스도 있어야 하고 저온저장고도 있어야 하고 예초기도 있어야 한단다. 농촌에서 농기구나 장비를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든다. 소농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손으로 한 알 한 알 까는 땅콩, 한 개 한 개 벗기는 고구마순, 이 모든 게 정성 들인 손작업이다. 얼마나 많은 땅콩을 깠던가, 얼마나 많은 고구마순을 벗겼던가. 손은 보물이다. 손으로 하는 소농의 꿈은 맛있는 김치, 고소한 땅콩, 농약 없는 고추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먹여 도시인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추구하는 소농의 꿈은 천지인의 상생과 도농상생에서 출발하지만, 막상 안팎으로 어려운 농촌 현실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야 할지 앞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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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밭

 

농촌과 도시의 건강함을 되찾고 싶다

50대 후반에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을 결심했을 때가 내 개인적인 개벽의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지개벽의 4년을 지내고 보니, 약간의 자신감과 희망도 보이지만, 또 다른 거대한 벽도 보인다.
다시 오기가 생긴다. 진짜 개벽의 시간이 시작된 것 같다. 우리 마을의 다정한 이웃들과, 내 손길과 정성 닿아 자라나는 생명들과, 나를 사랑하는 이화민주동우회를 비롯 많은 벗들, 친지들과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내 앞에 마주한 거대한 벽을 허물고 싶다. 생명을 갉아먹고, 자연을 거슬리는 지금 이 시대 모든 악취 나는 것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건강함과 푸릇한 생명성을 되살리고 싶다.
이제 다시 개벽이다!

 


최정순 님은…
웅진그룹 인재개발원장(전무)을 지냈다. 현재 정치학박사, 전주 우석대 초빙교수, 정을두레 대표, 이화민주동우회 회장직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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